사실, 아류작이나 짝퉁 영화인 줄 알았다. 제목하며 포스터 비주얼하며 윌리암 프레드킨의 <엑소시스트>를 아니 떠올릴 수 없으니 뭐 어쩌겠는가? 허나, 이건 사소한 오해였을 뿐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근래에 선보인 할리우드 주류 호러물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라 평할 수 있겠다.
당대 공포영화의 대세라 할 수 있는 피범벅 사지절단의 하드 고어나 슬래쉬 무비와는 멀찍이 떨어져 있는 오컬트 호러무비(기독교 세계관을 축으로 신비주의 혹은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악령 혹은 악마를 숭배하는 사교집단을 소재로 한 호러 영화)의 명맥을 이어 간만에 등장한 영화는 이 장르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엑소시스트>와 포개짐과 동시에 거스르는, 전형성과 차별성을 아우르며 또 다른 지평을 구축한, 기특한 영화다.
꽃다운 나이 19살에 뭔 일인지는 몰라도 정신이 나간 듯한 증세에 시달리는 에밀리 로즈, 그녀의 기이한 발작이 병원 치료로는 감당이 안 되자 악령이 들었다고 판단한 부모는 절친한 신부에게 도움을 청하고 엑소시즘을 행하던 중 에밀리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신부의 가혹한 엑소시즘의 제의가 그녀를 사망으로 몰고 갔다는 혐의로 신부는 재판을 받게 되고, 이 사건은 당시 TV로 생중계돼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섬뜩한 호기심이 급상승하는 이 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앞서 말했듯 <엑소시스트>의 기본적인 설정인 음습한 저택, 소녀와 신부 악령 간의 치열한 사투 등을 빌려 말초적 신경보다는 심적인 은근한 소름끼침에 방점을 둔다. 종래의 오컬트 무비의 구조를 답습하는 듯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자신의 영역을 넓히며 진화한다. 에밀리를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이라며 살인혐의로 기소된 신부로 상징되는 종교와 이성적인 논리로 엑소시즘을 반박하는 과학, 이 상이한 두 가치관이 충돌하며 숨막히는 흥미진진함을 자아내는 '법정 신'이 종래의 그것들과는 다른 특별한 위치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에 부여하게 되는 지점이다.
자칫 고루하고 지루하게 와 닿을 수 있는 영화는, 양측의 살 떨리는 공방과 끝내 참혹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에밀리의 그 섬뜩한 찰나들을 절묘하게 배치하는 비범한 전개방식을 선보이며 눈과 귀를 화면에서 쉬이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전해준다. 신과 악마의 존재를 공고히 했던 기존의 오컬트 무비를 따르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부정!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고 남기는 것이 당 영화의 미덕이다. “관객들이 ‘실제 악마는 존재하는가?’ 스스로 자문하도록 만들고 싶었다”는 스콧 데릭슨 감독의 연출의도가 꽤나 성공적으로 먹혔다 볼 수 있음이다. 한편, 에밀리 로즈로 분한 제니퍼 카펜터의 귀신들린 연기는 말 그대로 신들린 듯 스크린을 장악하며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끔찍한 신체훼손의 시각적 공포는 덜하지만 그 반대급부로서의 섬뜩한 면모들이 다층적 구조 속에서 스멀스멀 살아 숨 쉬며 묵직한 의구심을 던져주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지난해 가을 개봉, 미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크나큰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보시면 알겠지만 오컬트 호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제낀 당 영화, 마주한 순간보다, 보고 난 후 고단하지만 그 의미심장한 질문의 잔상이 자꾸만 떠오르는 기이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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