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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에 ‘앙코르’를 벤치마킹해라!
2006년 3월 11일 토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자니 캐쉬’란 남자가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통기타 하나 덜렁 메고 미국 전 지역을 유랑하며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와 함께 가장 인기 많은 가수였다고 한다. 또 그의 ‘풀섬 감옥의 라이브’ 앨범은 1968년 비틀즈의 음반 판매고를 제쳤고 항상 검은색 옷만 입고 다닌다하여 쟈니의 별명은 ‘man in black'이었다. 이렇게 얘기해도 한국에서 그의 이름은 낯설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알아도, 비틀즈 노래는 아직까지 들어도, 우린 ’쟈니 캐쉬‘란 남자를 기억에서조차 찾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으로 칭송받고 있으며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수많은 팝스타를 양산했다. 하지만 음악에 지대한 관심 있지 않는 이상 그의 음악이력 설명은 “그러냐?”식의 의례적인 대답만 이끌어낸다.

‘쟈니 캐쉬’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끊임없이 자기 존재에 대한 회의에 휩싸여 가수로서의 성공한 삶을 살아도 마약 없이는 하루를 버티기 힘들었던 남자. 그가 위대했던 이유는 단순히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라도 그를 안 이상, 우린 쟈니 캐쉬와 함께 ‘준 카터’라는 이름을 함께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팝 역사상 위대한 러브스토리로 회자되는 쟈니 캐쉬와 준 카터 간의 로맨스.

쟈니 캐쉬가 뮤지션으로 성공해 많은 돈을 벌고 준에게 가기 위해 이혼을 해도, 정작 준 카터 본인은 쟈니 캐쉬의 프로포즈를 매번 거절했다. 준은 어릴 적부터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 인기 가수였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다. 보수주의가 팽배한 시대 그녀의 이혼 경력은 경멸 받아 마땅한 치부였다. 준이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쟈니는 공연을 제안했고 그녀는 그와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수많은 공연을 쟈니와 함께 했다. 공연 도중 기회가 닿는 대로 쟈니는 준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준은 당연하다는 듯 거절했다. 이런 식으로 쟈니가 준에게 프로포즈한 건수만도 40번이다. 준은 40번째에야 못 이기는 척 쟈니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쟈니에게 준은 특별한 여자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몰래 숨어듣던 라디오 음악프로에서 준은 그때부터 -마치 쟈니만을 위한- 노래를 했고 그가 군대에 복무할 때는 유명 음악잡기 가십난을 준이 채우면서 쟈니에게 첫사랑의 쓴맛을 안겨줬다. 음악에의 꿈을 어렴풋이 가슴 속에 품을 때부터 준은 쟈니에게 ‘동반자’로서 삶을 공유한 존재다. 음악으로 맺어진 인연, 그러나 그 인연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왜 준은 잘 나가는 뮤지션이자 얼굴도 잘생긴 순정파 쟈니 캐쉬를 매번 거부했을까? 역설적이게도 그건 결혼 실패와 진실한 사랑에의 두려움 그리고 쟈니가 무슨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이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 때문이었을 게다. 쟈니는 유부남인데다 마약까지 손을 대, 재기불능 상태까지 이른다. 사랑도, 남자도, 이쯤이면 넌더리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날 만도 한데 준은 쟈니를 돌보고 마약까지 가족을 총동원해 끊게 만든다.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으로 쟈니의 곁에서 그와 함께 노래 부르는 준은 공연장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쟈니의 프로포즈를 받는다. 물론 결과는 톡 쏘는 충고와 함께 거절이다.

쟈니가 공연장에서 만난 미녀 팬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도, 술을 진탕 퍼마셔도, 아내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도, 마약을 하는 순간에도 오직 쟈니의 마음은 준의 것이었다. 하지만 갖은 방법을 동원한 그의 프로포즈는 40번 만에야 겨우 효력을 발휘했다. 남들 다하는 사랑을 힘들게 얻은 쟈니와 남들 쉽게 하는 사랑을 어렵게 시작한 준은 40번의 기회 동안 이들은 서로를 탐색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심어갔다. 어렵게 어렵게 이루어진 쟈니와 준은 평생을 부부로서 그 나머지 기간은 공연파트너로 서로에게 충실했다.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내리 찍어보았지만 곱하기 4를 하고나서야 이루어진 쟈니의 사랑은 짧고 화끈한 사랑이 ‘쿨’한 인생의 척도라 여기는 현대인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렇지 않아도 3월 14일은 엄마 아빠 생일은 안 챙겨도 없는 애인 억지로 만들어 챙긴다는 화이트데이다. 이벤트적인 사랑에 많은 돈을 들여 하루살이 사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현대인에게 쟈니의 사랑은 너무 복고적인 냄새가 강하다. 그러나 사랑은 시간제약을 받지 않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생로불사의 존재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쟈니가 준을 마음을 얻기 위한 다소 촌스러운 고백방식은 벤치마킹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그녀의 집까지 걸어가다

쟈니는 어림짐작만 해봐도 몇 십리나 되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 쟈니에게 또 다시 프로포즈를 한다. 준은 당연히 문전박대다. 뭐 예전에는 안 그랬나? 싶어도 준의 차가운 마음 앞에 쟈니는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거기다 비까지 내리고 왔던 길 다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신파 그 자체다. 하지만 당대의 톱스타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멋진 스포츠카를 타는 대신 맨몸으로 걸어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선 사랑의 진실함이 묻어난다. 설사 그 사랑이 되돌아오는 메아리라도 상대에겐 긴 여운을 남겨 언젠가는 그 사랑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술 먹고 땡깡 부리기

공연을 핑계로 매일매일 준의 곁을 맴돌고 있지만 콧대 높은 이혼녀 준은 비집고 들어가 틈을 안 보인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한 쟈니는 가장 더티하고 초라한 방법을 비장의 히든카드로 꺼내든다. 바로 공연 전 술 진탕 마시기.

몇 시간 후면 공연을 해야 하는데 쟈니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하라는 연습은 안하고 그 무대에서 술판을 벌인다. 준은 기겁을 하고 바로 떠나버린다. “헉~ 이게 아닌데” 하며 쟈니는 당황하지만 자신이 왜 이런지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그녀의 행동이 서운할 뿐이다. 별로 권장하고 싶지 않은 사랑고백 유형이긴 하지만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랑은 가끔은 이렇게 사람을 4살짜리 꼬마마냥 순수하게 만듦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장소 가리지 않기

연일 계속되는 공연은 사람을 지치게 하지만 우리의 쟈니 오빠는 오늘도 준에 대한 사랑을 불사른다. 땅덩어리 넓은 미국을 유랑하다보니 잠은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해결할 때가 많다. 다른 팀원들은 새우잠 청하기에 바쁜데 쟈니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버스 한켠에서 고이 잠자고 있는 준을 깨운다. 그리고 바로 결혼신청. 이젠 결과 말해주기도 지겹지만 준의 대답은 다시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랑을 고백하지 말라는 따끔한 충고와 함께 거절이다. 관객이 봐도 다소 엉뚱한 쟈니의 막무가내 사랑 고백이 왠지 모르게 귀여운 건, ‘자나 깨나 당신 밖에 없어!’라고 외치는 철부지 모습에서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쟈니는 마음을 이런 식으로 증명하고 준은 그 사랑에 점차 물들어간다. 활활 타오르는 사랑이기보다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사랑. 화이트데이는 그런 마음을 보여주는 날일 게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보수적인 그 당시 미국에서 준의 이혼 경력은 치명타였다. 행복하지 못한 결혼 생활과 아이들의 육아문제로 힘들어하는 준에게 쟈니는 일거리를 제공한다. 함께 공연하자는 쟈니의 제안은 준에게 경제적 안정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음악에의 열정마저도 되살려주는 계기가 된다.

매번 퇴짜 맞는 쟈니지만 그는 준이 힘들 때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이자 친구였다. 굳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소유하지 않았던 이 둘의 관계에서 사랑은 고민을 같이 나누는 절친한 친구로서의 기능도 함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을 걸고 막판 뒤집기!

그녀를 위해 모진 맘먹고 마약도 끊고 가수 재기도 성공했것만 도통 준은 꼼짝을 안 한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쟈니는 공연 도중 결혼에 관한 노래를 준과 함께 듀엣으로 부르며 그 자리에서 대범하게 결혼 신청을 한다. 1만 명이나 되는 관객은 숨 죽여 무대 위의 이들을 지켜보고 준의 대답을 같이 기다려준다. 준은 평소처럼 여기서도 거절한다면 쟈니의 체면뿐만 아니라 본인의 이미지도 훼손됨을 알기에 순간 사면초과에 빠진다.

약간의 실랑이 끝에 준은 ‘yes'라고 대답한다. 쟈니와 준의 길고 긴 사랑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쟈니는 뮤지션으로서, 한 남자로서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게 청혼했고 무대 위에서 준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사랑은 이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승부해야 하는 인생의 가장 큰 도전이다.

밑바닥 인생들의 삶의 고단함과 사랑을 노래했던 쟈니 캐쉬의 음악인생은 거짓이 없다. 그는 진정으로 그들을 위해 노래했으면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마약과 여자 방탕함과 자만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는 소작농으로 생계를 유지한 남부의 시골 마을에 자신의 정체성을 묻어둔 사람이다. 쟈니의 사랑은 그래서 더욱 절실했으면 그의 노래는 그래서 수많은 팝스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준은 이런 남자의 영혼까지도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었으면 그와 결혼해 떡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낳아주고 평생을 무대에서 같이 노래했다.

실화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회자되는 쟈니 캐쉬와 준 카터 간의 로맨스가 영화 <앙코르>에서 2006년 3월 화이트데이에 다시 시작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그래서 특별하다.



4 )
loop1434
재밌네요   
2010-06-24 14:04
qsay11tem
흥미로운 기사네요   
2007-11-24 16:18
kpop20
재미있는 기사네요   
2007-05-16 22:22
lover0429
오늘 이영화를 보고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랑을 했더군요..정말 기사대로 잘모르는 가수였지만..앞으로 좀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들더라구요..글고 자막에 보면 죽을때까지 사랑했다고하더군요..대단햇답니당~~   
2006-03-12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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