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의 정석>을 그닥 유쾌하게 보지 못했던 본 필자, 지도편달 부탁드린다고 글을 통해 전했었더랬다. 그랬더만.......그냥 득달같이 김주희님이 영화 콘셉에 부합하는, 발랄무쌍한 스텝으로 써 내려간, 영화평 하나를 사뿐히 보내주셨다. 감사! 감사!... 해서, 이 자리를 빌려 전문을 싣는다. 다양한 시선의 공존이야말로 살맛나는 영화판 창달의 초석이자 필수불가결한 요소니까!-편집자
영화를 보는 내내 즐거웠다. 연일 우울한 기사들을 접하던 때라 더 그랬을까?
영화 모토 <12월에 놀아라~> 에 걸맞는 쿨한 느낌, 그리고 적당한 가벼움.
욕설이나 폭력, 지저분한 화장실 냄새 없이도 유쾌한 코미디가 연출될 수 있구나.
그리고 우리나라의 로맨틱 코미디도 이제 헐리우드판에 못지 않게 괜찮네~
(솔직히 헐리우드판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
생각보다 참신한 에피소드가 많아 부분적인 식상함 정도는 충분히 극복될 수 있었다.
또, 전체적으로는 분명 기존에 볼 수 없는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였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나중에 짠한 감동으로 끝나는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의 구도와는 차별화된 노선을 추구한 작품.
‘작업의 정석’이라는 제목답게 작업남, 작업녀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일관되게 이끌어나갔고, 신파조의 결말은 과감히 버렸다.
사실 ‘코미디’라는 장르는 좀처럼 칭찬받기가 어렵다.
반면에 잘근잘근 씹히기는 아주 쉽다.
이미 코미디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볍다, 알맹이가 없다’라는 평을 듣고 시작해야 한다.
(네티즌 리뷰에서 혹평과 칭찬이 절반씩 오가는 것쯤은 기본으로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웬만해선 잘 웃지도 않는다.
많은 개그맨들이 ‘웃어주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는 고뇌를 토로한다.
웃기지 않아도 웃어주고 또 그 웃음의 맥락에 너그러이 참여하던 시대가 있었던 반면
우리는 ‘썰렁해, 식상해, 웬 오버? 피식~’과 같은 반응이 즉각즉각 돌아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통 코미디도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코믹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모험이 따른다.
작가도, 감독도, 배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특히 배우들로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무척 조심스러운 선택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나는 작업의 정석을 보면서 <손예진, 송일국의 도전>을 높이 평가했다.
‘코믹’을 선택하기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었던 배우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작품을 위해 두 배우가 적당한 수준에서 색깔을 바꾸고 적절하게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미지 손상보다는 각각에게 새로운 경력으로 남게 될 것 같은 느낌.
두 사람이 만들어낸 웃음은 깔끔했고, 필요 이상으로 유치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혹시 코믹 연기에 강한 다른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오버, 과장 연기의 원조들이 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질문도 던져보았다.
만약 그랬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코믹에서 후자에만 초점이 맞춰진,
뻔한 코믹물이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분명히 지금과는 확연히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캐스팅의 신선함이 느껴진다.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두 배우의 조화도 그렇고, 아슬아슬하면서도 캐릭터를 재치있게 소화해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눈길을 끌만했다.
이 대목에서 ‘오버와 과장을 견딜 수 없고 그저 어설프다’는 평을 하든, ‘귀여운 오버다, 신선한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평을 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겠지만, 나는 후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모든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영화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기분전환용 웃음>이 먹힐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본다.
실제로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큭큭거리며 웃었고 옆자리 사람들도 그랬으니까.
또 이 영화는 비단 110분 동안 내내 영화관을 폭소 바다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이 시대의 ‘작업법’이라는 더 중요한 주제가 있다.
연애의 정석도, 결혼의 정석도 아닌 <작업의 정석>.
두 남녀는 영화 속에서 재미 삼아 작업 거는 것 외에 어떤 철학도 보여주지 않는 듯 보이고,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어쩌면 우리와는 전혀 딴 세계 사람들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속엔 뭔가가 있다!
과장의 요소를 제거하면 이 두 사람은 요즘 젊은이들의 연애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쿨(cool)하게 만나 재밌게 노는 것’이 일단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집착이나 심각한 고민 따위보다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고, 놀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여자 너무 인생 빡빡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 손예진의 명대사)
그런데 딱 부러지는 ‘쿨한 헤어짐’에는 아직 낯선 듯,
맘에 안 드는 상대를 떼어내기 위해 재밌는 수단을 동원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궁극적으로 정말 맘에 드는 상대에게는 기본적으로 ‘쿨’하지 않다는 것이 아주 조금씩 암시된다.
분명 두 사람 마음 속에는 ‘작업해서 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숨어 있는 듯 보인다. 또 실력이 비슷한 ‘선수’이기 때문에 서로의 순진한 내면까지 꿰뚫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맘에 들기 때문에 절대 쉽게 ‘100프로 오케이’라는 말을 할 수 없나보다.
일부터 쿨한 척하며 잠시 헤어지는 일조차 ‘작업을 위한 정석’ 중의 하나?
두 사람에게는 아직도 밀고 당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걸까?
아마 영화가 끝난 지금도 서로 작업중? (평생 이렇게 살면 심심하진 않을 듯하다.)
(더 이상의 얘기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될테니 그만~)
이제 마무리.
친구들에게 이 영화 보라고 권하고 나서 그다지 욕 먹을 것 같지 않다.
한두 명 삐딱이들한테는 ‘피식’ 소리를 들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찔리지는 않을 듯.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을 칭찬하고 싶다.
손예진의 변신은 가벼움으로의 추락이 아니라 ‘깜찍하고 귀여운’ 그녀의 이미지를 찾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정말이지 만능 배우로서 손색이 없다.
그녀의 변신을 보는 것도 기분이 좋았고, 일단 그녀의 ‘생쑈’가 정말 웃겼다.
매력남 송일국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가끔 언뜻언뜻 보이는 순수한 표정이나 자상한 웃음이 ‘느끼하고 능청스러운 작업남’의 이미지에 약간 흠이 되었을까?
절대로 ‘안 진실’해 보여야 되는데, 왠지 진실해 보이는 순간이 조금 있다?
이게 흠이라 해도 여성 관객들에겐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갈지도.
어쨌거나 작품 전체에서는 ‘바람둥이’ 라는 캐릭터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고, 송일국만의 묘한 매력이 잘 녹아들었다.
조연이나 까메오 출연자들의 감초 연기는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안어벙, 노주현, 현영, 박용우, 안선영 등 친숙한 느낌의 연기자들이 골고루 상큼한 웃음을 만들어 나간다.
작업의 정석.
일단 유쾌하고 재밌고(이걸로도 오케이?), 아울러 약간의 알맹이도 건질 수 있는 영화.
연인끼리든 친구끼리든 부담 없이 웃으며 볼 수 있고, 보고 나서 이런저런 토크도 가능.
시즌이 시즌인데다 올겨울 개봉하는 유일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을 감안할 때
블록버스터에 대항해서도 무참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