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보증 수표라고 불리던 한석규가 어깨의 힘을 빼고 돌아왔다. 동네 아줌마들과 반찬 값 내기 고스톱을 즐기고, 짬을 내 친목 다지기 운동도 함께하고, 어머니와 함께 김장을 담그기도 하는 등 딸 유치원 등교시켜주고 번듯한 양복을 입고 동네 마트에서 장을 보기도 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장손으로 30년 넘게 살아온 극 중 조진만(한석규)은 잘나가는 아내를 둔 6년차 전업주부로 타고난 살림솜씨를 발휘하지만 끝내 아버지에게만은 자신의 주부생활을 고백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하나밖에 없는 딸은 살림하는 아빠를 놀리는 친구들에게 “엄마는 없어”라고 말한다.
이 영화는 누구보다 고정관념으로 심어진 살림하는 ‘주부=여자’라는 공식을 깨고자 만들어졌지만 그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매스컴에 휘둘리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과 그를 둘러싼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흘러간다. 출산 후 방송에 복귀한 아내 수희(신은경)는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려는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과감히 포기하고 “내조를 하려면 똑바로 해야지. 집에서 뭐하는거야?”라고 통쾌히 말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하는 아내의 어려움은 건너뛴 채 살림하는 남편에 대한 초점은 그가 날린 곗돈 3000만원을 마련하려 주부퀴즈 왕에 도전하면서부터 전개되는가 싶더니 가족간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표면적으로 들어나지 않는 남성 전업 주부의 삶을 양지로 끌어올리려는 감독의 의도(혹은 극중 조진만의 바램)는 그가 퀴즈왕의 3연승에 도전하면서 극에 달한다. 그러나 ‘주부’는 영화의 소재일뿐 되려 매스컴이 한 가족을 어떻게 파헤치고 화해시키는가가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로 펼쳐지면서 미묘하게 가족의 소중함을 아우른다.
31살의 신인 유선동 감독은 평범한 소재를 가지고 유쾌한 홈드라마로 훌륭히 변신 시켰다. 극 중 부부의 만남과 결혼까지를 빠른 편집으로 진행 시키고 조진만의 친구로 열연한 공형진의 색다른 러브 스토리를 첨가 시켰으며 부모세대와의 갈등을 가볍지 않게 다뤘다. 특히 김수미가 아들의 퀴즈쇼를 몰래 보기 위해 허둥지둥하는 모습과 아들이 만든 국을 짐짓 모른척하고 먹으면서 “40년 가까이 산 마누라 보다 네가 내 입맛을 더 잘 아는구나.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라”라고 대답하는 아버지의 대사는 찡한 감동을 전해준다.
특히 수희의 직장 상사로 열연한 이주현은 자칫 소인배로 전락할 수 있는 뻔한 악역을 멋지게 마무리하면서 평범한 홈 드라마일거란 함정을 벗어났다. 퀴즈쇼의 백미인 스피드 퀴즈에서 발휘하는 엑스트라 배우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무엇보다 전직 성우 출신인 한석규가 직접 부른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를 듣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억지로 짜맞추지 않은 유쾌한 홈코미디를 찾으신다면 <미스터 주부 퀴즈왕>에서 기대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