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멸망의 절박한 상황이 코앞에 닥쳤다.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기도? 명상? 아니면 자포자기? 지구방위대 결성은 어떨까? 그러나 단단한 줄만 알았던 지구가 우주의 무기 한 방으로‘파삭’하고 부서져 버리는 데에야 지구방위대가 무슨 소용이며 ‘마징가제트’는 무슨 소용일까. 답은 하나다. 도망칠 것! 살아남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구에서 탈출하는 것.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도망을 치느냐고?
범우주적 모험담을 그린 SF코미디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안내서』(이하 『안내서..』)의 앞 쪽, 책의 서문 ‘안내서를 위한 안내서’는 지구에서 탈출하는 법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1. 나사에 전화하라. 그리고 지금 빨리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라.
2. 만일 안 되면 백악관에 전화해서 설명하라.
3. 그것도 안 되면 크레믈린에 전화하여 설명을 해 보라.
4. 그것마저도 안 된다면 엄청난 액수의 전화요금이 청구되기 전에(!) 지나가는 우주선을 세워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얻어 타라. (지면 사정상 내용 축약이 있었음을 양해하시라.)
지나가는 우주선을 어떻게 세우냐고?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 뻔뻔해서 즐거운 SF 코미디
뻔뻔한 소리라고? 그렇다. 소설 『안내서..는 바로 이 뻔뻔하고 기막힌 농담의 향연이다.
관료주의, 환경파괴, 세계와 우주에 관한 범지구적 통찰이 담겨 있지만, 농담은 농담인 게다. 『안내서..』의 정체는 거대한 ‘뻥’이자 위대한 농담이다. 어찌나 뻔뻔한지 순수성마저 느껴진다.
어느 날 아침, 도로공사를 위해 집을 철거하겠다는 공무원 무리에 맞서 집 앞 뜰에 누워 버린 남자의 황망한 심정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초공간우주고속도로를 위해 한 순간에 철거 위기를 맞은 지구의 운명으로 이어지고, 알고 보니 타행성 주민(지구인의 관점에서 ‘외계인’)이었던 친구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탈출하여 히치하이커가 되는 남자의 이야기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그 다음은? 무한한 방랑, 어이없고 즐거운 여행. 그 말고 무슨 선택이 더 있을까.
어차피 히치하이커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그 와중에 주인공 일행은 선사시대 지구에도 가보고, 우주의 끝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우주의 소멸을 보며 식사도 하고, 본의 아니게 지구도 두 번이나 구한다. 삶과 우주, 그리고 모든 것의 해답은 ‘42’이며, 지구를 절멸시킨 원흉(?)이자 우주 최고의 권력자는 대단히 인간적 풍모를 지닌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 게 가능하냐고? 아, 글쎄, 다 ‘뻥’이라니까?!
▶ 23년 만에 찾아온 블록버스터급 농담
자, 이제 앞서 언급한 서문을 다시 음미해 보자. 말장난, 언어유희, 그리고 농담. 이 모든 것들이 『안내서..』의 정체임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멋진 시작이라 느껴지지 않는가? 책 표지에 어째서 ‘겁먹지 마세요!(Don’t Panic!, 영화에서는 ‘쫄지 마세요!’로 번역)’라는 경고가 적혀 있는지 이제 슬슬 감이오지 않는가? 범우주적 농담 앞에 당황할 독자들에게 이보다 유효한 조언이 또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이 유효한 조언을 그대로 들고, 『안내서..』는 영화가 되어 찾아왔다. 물론 이 오래된 책을 영화화하는 계획이야, 아주 오래 전부터 세워져 있던 것이었다. 처음 영화화 기획이 등장한 것은 1982년. 그리고 무려 23년이 걸려 완성되었다. 그 사이 원작자이자 시리즈기획자인 더글라스 애덤스가 작고하고 내정되었던 연출자는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즈 등을 거쳐 가스 제닝스로 낙착되었다. CF 출신의 감독 가스 제닝스는 이번이 첫 영화. SF계의 노벨문학상이라는 휴고상까지 수상한 이 거대한 농담은 이 감각적이고 재능 있는 감독의 연출을 빌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영화는 원작의 기본설정과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온다. 절멸 직전의 지구, 분열적 상황에 몰린 지구인 주인공, 외계인 친구, 우주선 히치하이킹, 수다스러운 우주 대통령, 잃었던 연인과의 재회, 지구를 만든 장인(匠人), 그리고 상식을 뒤집는 수많은 발상들. 뻔뻔함의 극치를 달리는 원작의 유머감각도 살아있다. 사소한(?) 몇 가지 부분, 그리고 결론은 다소 달라졌지만, 수다와 농담, 비틀린 유머가 생동하는 110분은 지극히 유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자르는 동시에 빵을 굽는 광선검의 위력이나 ‘손수건을 보내달라’며 경배 드리는 존 말코비치의 기괴한 외양 등 장난스럽고 깜찍한 발상들이 더해지면서 보는 재미는 훨씬 늘었다.
활자로만 읽고 상상했던 것들이 공감각적으로 구현될 때 느껴지는 즐거움은, 그야말로 기대 이상이다.
▶ 예술영화가 된 블록버스터?
그러나 <안내서..>는 예술 영화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배급자의 입장에서 <안내서..>가 가진 영국적 농담과 비틀린 유머들이 비대중적이라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연기 잘 하고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한국에서 지명도 높은 스타가 없다는 점도 마이너스 요소였을 것이다. 어차피 SF장르로는 대체로 재미를 못 보는 한국시장의 특성을 고려했을 수도 있겠다.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닐 경우, 스타 감독과 배우가 등장하지 않을 경우 한국시장에서는 유난히 재미를 못 보는 것이 SF장르이긴 하다. <스타워즈>가 고전하는 세계 유일의 시장이 한국이니까.
그러나 대단한 액션을 선보인 블록버스터는 아닐지언정, 톱스타급 배우와 감독은 아닐지언정 이 영화, 전미 박스오피스 1위까지 했었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비틀린 유머가 상당히 통찰적일지언정 아무리 뜯어봐도 <안내서>는 특수효과에 공을 들인 유쾌한 상업영화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예술영화관 단관 개봉이라는 유례없는 사태에 직면했으니, 어쩌겠는가. <안내서>는 이제 예술영화인 게다. 생각해 보면, 고마운 대접이다.
<안내서>가 제시하는 범우주적 농담에 공감을 하든 않든, 개봉조차 못해보고 스러져가는 여타 작품들에 비하면 개봉을 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요, 원작 소설 <안내서>와 영화 <안내서> 모두의 팬인 개인적 입장에서 볼 때, ‘제품’이 아닌 ‘작품’ 취급을 해 주니 더더욱 고마운 일이다. 물론, 보다 훌륭한 상영관에서 영화를 만나고 싶은 팬들의 욕심에야 못 미치는 결과이긴 하지만, 이런 사소한(?) 아쉬움은 접어두기로 하자. 어쨌든 우리는 이 위대한 ‘뻥’의 향연을 영상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 위대한 농담에 보내는 찬사
혹여 누군가는 ‘위대한 뻥’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겨우 농담 앞에 무슨 그런 찬사를 보내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찍이 밀란 쿤데라도 지적했듯이, 인생 은 곧 농담이다. 일상의 농담을 범지구적 아니 범우주적 규모로 확장해낸 <안내서>는 그래서 위대한 걸작이다.
<안내서>의 비틀린 유머에는 삶과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가 들어있다. 따지고 보면, 지구멸망 직전에 영웅놀이를 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겠으며, 정체도 모르는 외계인과 싸워 이긴다는 건 또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피할 수 없는 일 중에 즐길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피할 수도 없다면 투덜대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관료들은 여전히 현실과 상관없는 결정을 책상에 앉아 내리고, 무심히 내뱉은 말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부메랑이 되거나 폭풍의 눈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차피 아무것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겐, 그것이 유희가 되었건 사랑이 되었건 간에, 절실한 것들이 있다. 아무리 뒤틀려 버린 삶일지언정, 영화의 주인공 아서 덴트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야 한다.
인생은 전쟁과도 같다고 누군가 이야기했지만, 살벌할수록 유머는 소중한 법이다. 무게 잡지 않고 농담을 빌어 진리를 설파하는 이 텍스트는 그래서 두 번을 생각해도 여전히 걸작이다.
<올드보이>도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웃어라, 세상이 너와 같이 웃을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