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 그리고 현존하는 마지막 거장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조우해 3인 3색의 욕망을 한 개의 스크린에 스케치했다. 각각, 접촉, 꿈 그리고 권태를 소재삼아 만든 에로틱한 단편 3편은 이탈리아 출신 일러스트레이터 로렌조 마토니의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그림을 삽입해, 이질적인 그들만의 에로스에 공통점을 찾아, 욕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서글픔을 이야기한다.
홍콩, 이탈리아, 미국에서 활동하는 감독들의 작품이기에 포스터 또한 개봉하는 나라의 특색과 문화를 살려 제작했다. 단어 ‘에로스’의 어감을 최대한 살린 각 나라의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3인의 거장이 단순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영화에의 열정을 고백하는 ‘러브레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온다. 특히, 1세기(1912년생)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미켈란젤로 감독은 대담하게도 자신의 성(性)에 대해 솔직하고 고백하고 있다.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노(老)감독이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기 위해, 성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는 영화적 태도는 영화팬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포스터 구경하기 전에, 두 개의 홍콩버전 포스터를 유심히 봐두시길 바란다. 눈길을 끌기 위해, 출연도 안한 장만옥, 양조위가 버젓이 등장한다. 이런 걸 문화적 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장사 속이 보이는 ‘왕구라’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관객 몰이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렇게까지 공들인 영화를 안 보는 관객이 있다면, 미오~ 미오 할 거야!
궁금증을 강조한 ‘미국’ 버전 포스터
미국 포스터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주력한 포스터다. 세 감독의 개별 작품의 스틸 컷을 최소 노출시켜 그들의 이름과 함께 상단부에 위치 시켰다. 메인 비주얼은 에로틱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얼굴이 안 보이는 여성의 매혹적인 곡선을 살렸다. 어딘가에 기댄 비스듬한 여성의 포즈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터치감은 강렬한 와인색으로 꾸며져 영화 <에로스>의 고혹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주제를 살린 ‘일러스트’ 버전 포스터
영화 속에 등장하는 로렌조 마토티의 그림 중에서 작품의 주제를 가장 쉽게 표현한 일러스트를 포스터로 선택했다. <에로스> 중,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연출한 ‘위험한 관계’의 각본가의 추천에 의해 참여하게 된 마토티의 그림은, 하늘 바다를 연상하게 만드는 푸른색 바탕에 몸의 곡선을 강조한 남녀의 격정적인 그 순간을 묘사한 일러스트다. 에로틱함이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역설적이게도 부각됨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포스터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홍콩’ 버전 포스터 하나
<에로스>의 한자 제목인 ‘애신’이 블루 색으로 큼직하게 자리 잡은 홍콩버전 포스터는 ‘욕망’의 디테일한 순간을 포착해 영화의 주제를 한껏 살렸다. 왕가위하면 떠오르는 여성의 화려한 차이나 풍 드레스에, 남자 손으로 추정되는, 곱디고운 손이 은밀한 그 곳을 감싸 섹시한 고급스러움이 엿보인다. 살포시 풀어 헤쳐진 옷이 불러일으키는 에로틱한 상상은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한 사진 탓에 욕망의 타는 듯한 ‘갈증’을 부채질한다.
상업적 전략이 보이는 ‘홍콩’ 버전 포스터 둘
장사속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홍콩 버전 두 번째 포스터는 회한에 잠긴 표정의 ‘공리’를 뒤에서 품은 ‘장첸’의 슬픈 모습이 전면에 담겨 있고, 배경처럼 <화양연화>의 장만옥, 양조위가 등장한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임을 증명하기 위한 배려치고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 명의 관객이라도 끌어보기 위한 눈물 나는 노력이 엿보여 참을 만하다. ‘그녀의 손길’에서 콜걸로 등장하는 공리의 연기변신을 짐작할 수 있는 포스터.
찰나를 잡아낸 ‘한국’ 버전 포스터
고급 콜걸인 ‘후아’(공리)의 옷을 만들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는 ‘장’(장첸)의 모습에서 가까이 있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흘러간 노래의 가사처럼 욕망을 억제하는 두 배우의 표정에서, 찰나의 느낌이 영원한 사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지하고픈 순간에서 남녀 간의 건널 수 없는 심연을 가장 탁월하게 잡은 포스터.
정중동의 느낌을 살린 포스터가 많아서 그런지 숨을 고르며 천천히 각국의 포스터들을 감상하게 된다. <에로스>는 육체의 음탕한 향연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가 아니다. 제목만 보고 혹은 묘한 분위기의 포스터 때문에 침실노동에 주력한 에로영화로 착각하실까봐 지레짐작, 미리 밝히는 거다. 하지만, 여성의 육체에 집착하는 세 감독들의 시선은 어떤 야한 영화보다 거센 욕망을 내포한다. 육체와 욕망의 함수관계, 이 특별한 해답을 6월 30일 개봉하는 <에로스>를 힌트삼아 얻길 바란다.
사진제공:프리비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