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우주전쟁>, 그 실체에 접근해본다
2005년 6월 13일 월요일 | 이숙명 이메일


▶ 왜 <우주전쟁>인가?

외계의 습격으로 대도시가 초토화된다는, SF 픽션의 중요한 원형 중 하나는 사실상 1900년대 전후 두 명의 유명한 ‘웰즈’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투명인간> <타임머신>의 작가이기도 한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즈는 1898년,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한 소설 <우주전쟁>을 출간했다. 40년 뒤, 감독 오손 웰즈는 이를 라디오 대본으로 각색했는데, 정규 방송을 끊고 화성침공 속보가 방송된다는 설정은 청취자들을 일대 혼란에 빠뜨렸다.

뉴욕이 습격당했단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경찰당국은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라디오판 <우주전쟁>의 대본을 전부 압수했다. 이때 오손 웰즈와 공동으로 대본을 집필했던 하워드 코치는 한 부의 대본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고, 훗날 경매로 이것을 사들인 사람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원작소설의 영화화 판권을 가진 것은 파라마운트였다. 제작자 세실 B.드밀은 1953년, 자신의 친구였던 조지 팔 감독과 함께 첫 번째 극장판 <우주전쟁>을 만들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팔 감독은 화성인들이 수소 폭탄으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이 영화는 그해 오스카 특수효과상을 수상했고, 세 개의 눈과 세 개의 발을 가진 독특한 화성인의 형상이나 우주선 디자인 등은 여러 SF 작가들에 의해 모방되기도 했다.

<성난 붉은 행성 The Angry Red Planet> <화성침공> <인디펜던스 데이> 등, 그간 웰즈의 원작소설에 오마주를 바쳐온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한 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창작자들에게 영향력을 미쳐온 작품인 만큼,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영화화하자는 논의는 수십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12년 전 마지막 남은 오리지널 라디오 대본을 사들인 이래 이것을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 하지만 비슷한 컨셉트의 <인디펜던스 데이>가 기획되자, 스필버그는 <우주전쟁> 영화화 계획을 보류시켜버렸다.

▶ 왜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인가?

“<우주전쟁>은 친절한 떠돌이 외계인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이번에 나는 처음으로 SF 호러 영화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스필버그 자신의 얘기처럼, 의 감독인 그가 불순한 목적으로 지구에 침입한 사악한 외계인 이야기를 다룬다는 건 이색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외계 침략 영화에 관한 그의 오랜 열정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스필버그는 <지구 대 비행접시> <지구 최후의 날>, 그리고 조지 팔의 <우주전쟁> 등 고전 SF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17세에 이미 자신의 첫 에일리언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그는 이 습작물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장난감 지프, 탱크, 그리고 스톱모션 촬영으로 외계인의 지구 침략을 묘사했다. 스필버그는 졸업 후 취직을 위해 그 작품의 유일한 카피를 광고회사에 보냈고, 돌려받지 못했다. 때문에 더 이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스필버그는 언젠가 자신이 외계의 침공에 관한 영화를 다시 한번 만들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그후 스필버그가 할리우드에서 만든 유일한 외계인 영화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작은 외계인이 등장하는 뿐이었고, 이런 설정이 자신의 천성에 더 잘 부합하는 것이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는 항상, 어떤 생물체가 수천 광년의 우주 공간을 가로질러 온다면 그것은 정복이 아니라 탐험을 위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관객들은 내가 <우주전쟁>을 만들기를 원한다. 순수한 즐거움을 위해, 인간과 외계인 사이의 전투만한 소재도 없다. 그건 비일상적이고 거대한 화제니까.”

<인디펜던트 데이> 때문에 보류됐던 <우주전쟁> 프로젝트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톰 크루즈 덕분이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호흡을 맞춘 뒤, 각자의 분야에서 할리우드 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이 감독과 배우는 재회의 계기를 노리게 됐다. 그때 생각난 것이 <우주전쟁>이었다.

톰 크루즈는 이 작품을 통해 3억6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미 할리우드 최고 출연료 기록을 갱신한 데 이어, 극장 수입의 10%와 DVD, 비디오, 게임, 장난감 판매 수익의 일부도 보장받았다. 전문가들은 <우주전쟁>의 극장 수익이 18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예측한다. 게다가 속편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걸 아깝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을 세기적인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모두가 그것에 대해 얘기하고, 그것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는 영화 말이다.” 할리우드 소식통들의 이런 설명은 이 영화에 이미 <타이타닉>에 버금가는 1억30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으며, 수백만 달러의 마케팅비가 추가 집행될 예정이라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의 이름값만으로, 6대륙에 걸친 수천 개의 스크린이 <우주전쟁>을 동시에 틀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할리우드 전문가들은 <스파이더맨2>가 갖고 있는 역대 7월 4일 주간 최고 개봉기록을 이 영화가 깰지도 모른다며 흥분하고 있다.

▶ 스필버그의 <우주전쟁>, 무엇이 다른가?

스필버그의 <우주전쟁>은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레이 페리에’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레이는 두 자녀(다코타 패닝과 저스틴 챗윈)를 가진 뉴저지의 평범한 노동자다.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던 그는, 집 뒤편에서 벌어진 엄청난 폭발을 목격하자마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각이란 이 아이들을 살려야 한다는 것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유사하다고 봐도 좋다. 단지 함께 있으려 하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평범한 사람들의 시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설명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지구인들은 불의의 공습으로 인해 어떤 무기도 자신들의 존재를 보호해줄 수 없단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포스트 9/11 시대’ 미국 사회의 화두이기도 하다. H.G.웰즈가 소설을 집필했던 1898년의 상황 역시 이와 비슷했다. 당시 영국은 지금의 미국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소설은, 기세등등한 대영제국도 보다 월등한 세력으로부터 무장해제 될 수 있다는 웰즈의 대담한 비판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렇다면 이 소설과 영화는 각각 영국와 미국을 가상의 피해자로 설정하고 외부의 적에 맞서 단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단 말인가? 성급한 결론이다.

외과의사들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을 정도로 미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1898년, 놀랍게도 웰즈는 엄청난 군사력을 갖춘 자신의 외계인들이 지구의 미생물에 의해 파멸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가설은 생태학적 관점에서, 어떤 외부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한 지역의 오랜 주인들에겐 그 땅을 지킬 마땅한 이유와 자격이 있다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외계의 침략에 맞서 지구의 전 생태계가 교전에 나서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영화가 오늘날 미국의 제국주의에 관한 은유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르지만, 사실 스필버그의 목적은 다분히 탈정치적이다. 2003년 12월, 시나리오 작업이 쉽게 풀리지 않자 스필버그는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작가였던 데이비드 코엡을 불러들였다. 코엡은 시대 배경을 현대로 옮겨 왔고, 페리에의 가족사를 보충했다. 레이 페리에는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은퇴한 고등학교 운동부 출신에, 어린 시절 결혼해 두 명의 자녀를 둔 뒤 그들 때문에 미래를 포기한, 불운한 하층민 노동자로 설정되었다.

“관객들은 항상 특수효과 영화에 둘러싸여 있다. 거대한 폭격 장면과 전투,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해 도망치는 장면 같은 것들.” 스필버그의 말이다. “그러나 그건 진짜 삶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스펙터클일 뿐이다. 특히 SF 영화에선. 나는 진짜 우리의 이웃들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선 장성들과 대통령, 비밀요원들이 아니라, 진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디펜던스 데이>와 <우주전쟁>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것이다.

.
또한 이 영화는 여느 SF 액션 블록버스터처럼 거대한 스케일의 폭력 묘사에 치중하고 있지도 않다. “만일 이 영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사실적인 폭력 묘사를 필요로 했다면, 나는 <우주전쟁>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제2차 세계대전 배테랑들의 실제 경험을 그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폭력의 실체를 보다 간접적으로 묘사했다고 밝히고 있다. “때때로 당신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 때문에 더 놀라게 될 것이다.”

▶ 왜 디지털인가?

30년 전, 신인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식인상어가 등장하는 해양 호러 영화 <죠스>를 찍으며 예상 촬영 일정에서 104일을, 예산의 30%를 초과 사용했다. <우주전쟁>의 촬영기간은 72일. 촬영장 헌팅부터 최종 컷까지의 전체 프로덕션 기간은 10달에 못 미친다. 여느 블록버스터 제작기간의 절반 남짓한 이 기간은,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사단의 협력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는 각자 준비하고 있던 다른 영화의 촬영이 미뤄지는 바람에 긴급히 <우주전쟁> 프로젝트를 출발시켰다. 스튜디오는 극장가 최대의 시장인, 미국 독립기념일을 앞둔 주말에 이 작품을 개봉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몹시 서둘러야만 했다. 프로듀서 캐슬린 케네디의 말이다.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난 스필버그 외의 누구도 (이렇게 빨리) 이 영화를 찍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는 내가 함께 해본 감독들 중 가장 빠른 감독이다.” 이 영화가 초스피드로 제작된 것에 대해선 스필버그 자신도 놀라고 있다. “나는 결코 이런 속도로 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퀄리티를 희생하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했다. 그게 정말 놀라운 점이다. 우린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내게 6개월이 더 주어졌다 해도, 지금 버전의 5%도 더 나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고, 스필버그가 개봉 전까지 끝내 비밀로 부칠 한가지는 외계의 전쟁 무기들에 대한 묘사다. 전설적인 시각효과 슈퍼바이저 데니스 뮤렌이 이 부분을 담당했다. “나는 이 영화와 함께 자랐다.” 1950년대 LA 외곽에서 학교를 다닌 뮤렌은 이렇게 말한다. 제작진이 오리지널 <우주전쟁>의 프로덕션 디자인에 대해 그에게 자문을 구해온 것은 지난해였다. “그들은 1953년 작에 등장한 세 발 달린 무기들을 원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걷게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 뮤렌은 비행접시를 만들고, 그것들을 방음 스튜디오에 집어넣고 와이어에 매달아 땅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 무시무시한 것들은 결국 컴퓨터로 창조되었지만, 그들은 여기에 캐릭터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방식, 조명, 카메라 앵글, 촬영의 명암 등으로 위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에 사용된 또다른 주요 기술은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실제 촬영장면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삼차원 영상에서 카메라 앵글, 조명, 세팅과 배우들의 조화를 시연한 후 실제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우주전쟁> 이전에도 스필버그가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 기법을 활용한 적은 있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톰 크루즈의 캐릭터가 숨어있는 집에 거미 로봇들이 침투하는 장면 같은 것이 그 예다. 이 기법을 사용한 덕분에, 스필버그는 방음 처리된 주택 세트를 짓느라 소요될 2주간의 시간과 1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주전쟁>의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이 기법은 이제 전체 프로덕션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 되었다.

ILM의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 전문가 그레고리가 이 부분을 담당했다. 그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촬영지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로 입력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필버그와 함께 핵심적인 시퀀스들을 그려냈다. 애플사의 파워북 G4, 에이서 페라리 랩랍, 60기가와 250기가바이트짜리 파이어와이어 드라이브들, 그리고 소니 PD100 디지털 캠코더가 든 검은색 나일론 백팩이 그레고리의 작업실이었다.

“일단 모든 정보들이 하드 드라이브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마우스를 잡고 세트를 날아다닐 수 있다.” 스필버그의 말이다. “나는 3-D 사이버공간에서 촬영장 헌팅을 다닐 수도 있고, 앵글을 조절할 수도 있다. 만일 카메라를 빌딩 쪽으로 50 피트 옮겨야 한다면, 순식간에 우리는 그걸 해낼 수 있다. 만일 영화가 2006년에 개봉한대도, 나는 이 방식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이 없었다면 나는 이 영화를 정해진 개봉일에 맞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레고리가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 작업을 마치고 나면, 결과물들은 즉시 북캘리포니아에 있는 ILM 스튜디오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래픽 전문가들은 해당 시퀀스에 필요한 특수효과 작업을 실행했다. 처음엔 50명의 아티스트들이 이 디지털 후반작업을 담당했고, ILM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를 끝낸 뒤엔 150명의 아티스트들과 50명의 보조인력이 추가로 투입됐다. “이건 우리가 해본 것들 중 가장 촉박한 작업이었다.” 데이비드 뮤렌의 설명이다.

ILM의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7년 전 개발에 들어갔고, 이제 처음으로 메이저 영화에 도입된 ‘제노 ZENO’라는 소프트웨어 패키지도 후반작업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CG로 가상의 모델을 생성하고, 조명을 입히고, 동작을 시행시키고, 이것들을 단일 이미지로 합성하는 과정은 원래 12개 가량의 개별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했다. 이것을 하나의 플랫폼에 집어넣은 것이 제노였고, 이 프로그램 덕분에 후반작업의 편의성은 물론, 애니메이터들 간의 의견 교환 과정에서 생기는 정보의 유실이나 스피드의 문제도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

그렇다고 스필버그가 조지 루카스의 방식에 완전히 길들여진 것은 아니다. 그는 여전히 셀룰로이드 필름을 직접 자르고 편집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최종 편집 역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프리-비주얼라이제이션부터 디지털 공룡까지, 다른 모든 걸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작업할 수 있지만, 내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것도 있다.”

필름에 특수한 약품처리를 해 의도적으로 표현주의 시대 고전 SF 영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 때를 생각한다면, 그의 새로운 작업방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10 )
foralove
스티븐 스필버그,조지 루카스,ILM, 탐 크루즈, 다코타패닝,오손 웰즈 아..정말..   
2005-06-13 20:27
lee su in
스필버그와 톰 크루즈의 결합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얼른 개봉때가 다가오길..   
2005-06-13 14:09
1 | 2

 

1 | 2 | 3 | 4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