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를 만든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주의적 감독의 선두로써 수많은 영화 매니아를 거느린 홍상수 감독은 자신이 직접 영화사를 차려 선보인 첫 영화이자 통상 여섯 번째 작품인 <극장전>을 통해 관객에게 한 발 먼저 다가가고자 지난 6월 3일 광화문 씨네 큐브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했다.
자칫 지루한 시간 때우기로 전락(?)하기 쉬운 이 행사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진행된 데에는 사회를 맡은 평론가 허문영씨의 공이 컸다. 진행하기에 앞서 진부한 질문보다는 독특한 질문을 위주로 진행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터라 행사의 전개 내용이 무척 기대 됐던게 사실.
영화적 장르와 해석을 파헤치는 어렵고 상투적인 질문을 벗어나 독특하고 재미있는 질문이 어우러진 대화 시간 내내 홍상수 감독 본인도 대화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줬고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술과 담배를 즐겨하는지?”, ” 성은 어디 홍씨인가?”라는 개인적인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이번 행사에서는 다양한 연령의 관객과 국가를 넘나드는 외국인 학생까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럼, 계획된 진행 시간을 넘길때까지 질문이 넘쳐 났던 홍상수 감독과의 대화현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허문영(이하 허): 저는 일반적인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실, 어느 시나리오가 참 좋아서 어떤 영화사가 그 시나리오를 잡았다더라 그래서 어떤 스타가 참여했다더라는 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인 영화 제작이 옆에 계신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좀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영화를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텐데요, 그럼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시작이 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 과정에 대한 질문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홍상수 감독(이하 홍): 우선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가 먼저 하나 물어봐도 되겠죠? 지금 <극장전> 다 보신 건가요? 안보신분 계시나요? 제가 말할 때 참고 하려 구요.( 약 스무 명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알겠습니다. 저한테 있어서 순서는 일상적인 상황이 떠오르면서 시작 됩니다. <여자는 남자의…>도 낮술 먹은 두 친구가 과거의 여자를 회상하는 장면이 떠올라서 찍게 됐구요.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는 낮에 할일 없는 남자가 어떤 영화를 보고 해가 환할 때에 극장에서 나온뒤, 영화에 취한 게 덜 깬 상태에서 영화의 흥이랄까 그런걸 느끼면서 담배를 물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저 같은 경우 그 상황을 계속 파고 들어가면 제가 답하고 싶었던 것들을 얘기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직감 같은 게 오거든요.
주제의식이랄까 메시지랄까 그런걸 먼저 잡아놓고 그것에 대해서 잘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영화의 소재를 선택하고 촬영을 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일상에 상황이 펼쳐지고 그 다음에 구성으로 좀 벌어지고 난 다음에 배우들을 만나면서 촬영하는 과정속에서 조그만 발견들을 계속하고 한겹씩 한겹씩 쌓아 올려가는 거죠.
제가 목표로 하는게 하나의 메시지라는걸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전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영화를 만드는 거예요.저는 살아 있는 물건 같은 영화를 추구하거든요.그게 정말 물건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되도록 그런걸 추구하는 편입니다.
허: 한가지만 추가적으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일반적인 순서와는 다른 출발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특히 영화에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결합시키는 방식이 그런 것 같습니다. 그걸 습관이라고 말한다면 그만이지만 이미지와 사운드를 보통의 영화와 다른 방식으로 결합시키려 할 때 어떤 패턴이나 방식을 사용하는지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홍: 음..조금 멍한데요. 제가 다른 것들은 취사선택하고 배열하고 붙이고 충돌시키고 하는 모든 것에서 일반적으로 저 나름의 원칙이 있거든요. 제가 말하는 원칙이란게 뭐냐 하면 사람들은 일단은 뭔가 남들이 한 것을 계속해서 훈련 받고 습득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만드는 사람도 그 소비자였기 때문에 자기가 뭘 만들 때 ‘아, 이것 참 좋다’라고 떠오르는 것들이 사실 대부분은 어디선가 본거예요.그래서 좋게 느껴지는 거죠.
처음엔 영화에 음악을 거의 안 썼어요. 어떻게 하면 남들이 세상을 보는 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내가 본 것들을 갖고서 영화 비슷한걸 만들 수 있을까? 거기서 출발 한 거죠. 제가 맨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생각나서 한 게 아니고 그렇게 추진을 하다 보니까 그 안에서 반복이라는 패턴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제가 하는 말 괜찮나요? 너무 재미없지 않아요? (웃음) 지금 말씀하신 그런 소리나 음악의 사용이 그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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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질문지들을 모아보니까. 줌(ZOOM) 사용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적어도 열분 이상 줌의 사용 경위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셨는데 사실은 이 부분은 그 동안 인터뷰를 하시면서 몇 차례 말씀을 하신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니 말씀해 주시죠. 적어도 <극장전>에 와서 갑자기 카메라 워크가 급격히 달라졌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감독: 줌은 흔히들 옛날 70년대 영화나 다큐멘터리 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주위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많이 사용되었죠. 그래서 촌스럽게 느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걸 사용한 사람들의 마인드와 제가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식으로 쓰다 보면 환기시키는 그런 느낌에서 벗어나서 ‘이런 사용의 줌도 있구나’ 라고 봐주시길 기대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떤 분이 그게 끝까지 거슬렸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근데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제가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작 하는 영화인데, 그걸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려고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따지고 너무 개인적인 것은 빼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영화를 만드는 건데, 그러면서 (저한테 있어서) 화면은 항상 멀리 있었거든요.
여러분들도 뭘 많이 하면 당연히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 싶어지잖아요? 그 점이 줌 사용을 많이 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아요.다른걸 해보고 싶고 인물에게 가까이 가고 싶었던 거라 저는 이런 것에 대해 다른 설명이나 당위나 그런 게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허: 제일 많은 질문이 나온 내용 들으셨습니다. 제가 어쨌든 기자로서 감독님을 인터뷰했고 사석에서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눈 경험으로 말씀 드리자면, 감독과의 시간을 할 때 제일 많은 질문의 방식은 이런 겁니다. “이것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장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런 질문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홍성수 감독님에게 그런 질문을 드리면 아마 결코 대답을 얻으실 수 없을 것입니다. 가장 자연스럽고 자기한테 직관적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어떤 순간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시기 때문에 아마 이장면의 이유를 설명하라고 물으신다면 대답을 얻으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미리 적어 내신 질문지중에서 조금 엉뚱한 질문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의 전작 <오!수정>, <생활의 발견> 그리고 <극장전>에서 남자 주인공들도 영화 쪽 관련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모델이 감독님은 아니신가요?
감독: 제가 20대 초반에 시나리오 처음 써 본적이 있었는데 그 때 저한테 생긴 일을 갖고 써보려고 6개월인가 매일 카페에 나가서 쓰다가 포기 한적이 있어요. 제일 큰 이유는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에 대해서 갖고 있던 개인의 부담감을 못 이겼던 것 같아요.(좌중 웃음) 그래서 그게 이유가 되어서 그 이후로 실험영화에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하나 깨달은 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건 간에 만드는 사람들의 실생활 속에서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자유, 심리적인 부담감으로 부터의 자유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방식은 모델을 여러 개 둡니다. 한 인물을 만드는데 이쪽에서 50% 어떤 사람에게 10%가져오고 섞는 거 같아요. 그걸 통해서 그 사람이 그 내용을 실제로 봐도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게끔 무척 조심 해요. 그래서 원래 존재하는 어떤 사람을 그대로 통째로 넣는 건 거의 없어요. 바탕의 아주 조금 빼고는. 그렇지만 여자건 남자건 간에 거기 나온 인물들은 저를 통과하고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다 닮아 있구요, 저에 대해 성찰을 더 많이 하고 더 정직하게 하고 용감하게 직면해서 나온 결과 이길 바라고 제 생각들을 밸런스를 가지고 정리하고 바랄 뿐이지, 제 한계를 벗어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고 봅니다.
관객: 왜 감독님의 영화속에 여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은 섹스를 한 후에 꼭 헤어져야만 되는겁니까?
감독: 글쎄요. 누군가가 제 영화에 관심이 있어서 제 영화를 보면서 심리적인 분석 같은건 할 수는 있을 꺼 같아요.그럼 뭔가 그 속의 인간의 유형이 나오겠죠.그리고 그것이 저라는 개인하고 연결 지어서 또 다른 얘기가 나올 수도 있고요.그런데 저는 그런 건(심리적 분석) 안 하거든요. 만드는 사람으로서 안 하는 거죠.(웃음) 요즘 시대에는 이런 게 문제니까 ‘군인을 등장시켜볼까?’ 그런 생각을 안 한다는 의미예요.
그냥 확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써야만 한다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요. 그게 담보가 되서 개인과의 어떤 깊은 연결줄 같은게 될수도 있고 만들 때 저랑 깊이 인볼부(연관되게)되게 하는 모티베이션(동기)같은 것도 되고, 제가 하면서 헛소리 안하고 거짓말 안하게 만드는 어떤 기준도 되고 그런 여러가지가 되기 때문에 확 뽑아내는 어떤 부분이 꼭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냥 그것을 인위적인 틀로 다시 맞추고 하는 것은 다른 마인드 구요. 대답이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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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그런데 헤어지지 않고 화합한 경우도 있습니다. <오!수정>에서는 서로 행복하게 결합해서 아주 예쁜 음악이 마지막에 흘러나옵니다.
감독: 제가 마지막 말을 빼먹은 것 같은데, 남자들이 맨날 혼자 서서 어정대다가 끝이 나는 것들은 그걸 제가 건드리면 뭔가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왜’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못하는 것은 사실 선과 악의 충돌 같은 건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
그래서 긍정적인 명제, 뭐 하나의 ‘이렇게 합시다.’,’ 이게 맞다’,’ 이런 게 좋다’ 이런 말이 있고 그것에 대한 반대되는 말이 있고, 사회에서는 둘 다 통용되고 있고 그런데 그 둘 다는 일정의 부정은 아닌 부정인데 섞으면서 헝클어 버리는 것처럼 하나의 대사이지만 그 대사가 겉으로 보면 이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둘 다 부정하지 않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 그런걸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맨 처음 말씀 드린 대로 살아있는 물건 같은걸 만들고 싶다는 말하고 같은 얘기네요.
관객: 어제 <여자는 남자의…>를 봤는데, 거기서 선화가 하는 대화에도 나오지만 “깨끗하다.”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거기에 대해 감독님 생각하시는 표현하고 싶다는 것은 없다고 하셨지만. 그 깨끗하다는 의미에 대해서 알고 싶거든요.
감독: 아까 말한거 다시 반복인데..(웃음)제가 가지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내가 해석의 잣대를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고 그건 일단 다 띄워놓고 그걸 좀더 다시 새롭게 하는 틀을 잡는 거 같아요. 제가 제일 이상적으로 제 영화를 제일 좋게 보는 분의 반응은 약간…웃기고 쾌활하게 볼 수 있으면서..우리가 갖고 있었던 어리석음 잔인함 그리고 고지식함- 아주 나쁜 의미의 고지식함-그런것들에 대해서 혼자서 한번 부딪혀 볼까 하면서 집에 가는 거예요.약간의 용기를 얻고서 말이죠.(웃음)
허: 미리 받아 놓은 질문지에서 하나 뽑아 대신 읽어드리겠습니다. 왜 이런 질문을 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워낙 이상한 질문이어서 말씀 드려 봅니다. 인간들을 직접적으로 영화가 많이 다루는데 동물과 인간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으신가요?(웃음) 왜 다른 예술 매체들은 음악 미술이나 다 인간을 그렇게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데 영화는 왜 인간을 전면에 내세우나요?
감독: 영화는 서사에 한 매체니까요. 음악은 가사가 없어도 그 안에 멜로디라든가 리듬, 이런 것들이 끌고 가는 힘이 있고 재미가 있잖아요. 미술도 그렇고. 그 안에 꼭 사람들의 이야기가 없어도 그 안에 빛과 색깔의 대비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원래 영화는 이야기가 기본이니까.그 이야기라는 것은 사람 사이의 이야기죠.
허: 혹시 동물의 좋아하시나요?
감독: 요새 강아지 하나 키우는데…예쁜 것 같아요
허: 예쁜 동물을 보고 있으면 영화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혹시…
감독: 개를 몇 번 넣었죠.(웃음) 강원도 힘에도 넣었고 <여자는…>에서도 나왔고
허: 이건 제가 직접 읽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같이 작업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시나요? 추신,영화를 하면 외로울 것 같아서요 드리는 질문입니다.
감독: 영화 하는 사람 중에도 하나도 안 외로운 사람도 있고 굉장히 외로운 사람도 있고 뭐 그렇겠죠.농담처럼 말해서 미안합니다. 영화 하는 것 때문에 외로움 같은 건 없지만 저는 사람하고 교류하는게 자연스럽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게 계속 가는 거 같고 나이 들어 고칠 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예요. 요새는 많이 나아져서 전에 했던 사람들 세 편째 같이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술 마실때도 가능하면 일 같이하는 사람들하고 먹고 그러거든요. 그게 더 좋아요.
관객: 술과 담배가 없는 인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굉장히 즐기는 편이고 그런 게 없다면 정말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는데 감독님 지금 말씀 하시는 것도 그렇고 약간 몽롱하신거 같아요 (웃음) 좀 그렇게 취한 듯 사는걸 좋아하시는지? 평상시의 모습이 궁금해 질문 드려 봅니다.
감독: 담배는 15살 때부터 피웠는데, 최근 끊었습니다. 30년 피우다가 끊었죠… (웃음) 제가 질문 하나 드릴께요. <극장전> 보신 분들 중에 그래도 괜찮게 보신 분 손들어보실래요?알고 싶어서 그런데요.
허: 손 많이 들어주세요..소심하기 때문에…(웃음)
감독의 직접적인 질문이 던져지자 객석의 3분의 2이상이 손을 들었다. 홍감독은 여지껏 만든 영화들이 한번도 투자비를 회수 하지 못했는데, 영화제 덕분에 돈을 구해 지금껏 작품을 발표 할 수 있었다면서 그런 시스템이 싫어서 직접 영화사를 차리게 됐다는 배경을 밝혔다. 홍상수 감독이 "부담감이 큰만큼 요즘들어 감독하기가 힘드네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자, 순간 무대를 사이에 둔 감독과 관객이 아닌 마주앉아서 편하게 얘기하는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관객:감독님 영화에는 항상 나오는 장소들이 있어요. 좌식술집, 허름한 여관, 눈내리는 밤, 인사동, 종로, 남산 등 여러 장소들이 있는데 굳이 허름한 여관인지 궁금하거든요?물론 <생활의 발견> 같은 경우는 좋은 호텔도 나왔지만, 왜 항상 여관은 허름한 곳인지?
감독: 제가 여관 다닌게 좀 오래 전이라…그때 갔던 여관들이 보통 조그맣고 더럽고 그런 곳이 많았던 것 같아요.그래서 헌팅을 할 때 일부러 정한 건 아니거든요. 헌팅을 할 때 연출들이 먼저 돌면서 대강 정해 논 곳을 하루 종일 돌거든요? 그런데 결국 정해지는 곳은 그런 곳인거 같아요. 제가 의식하는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깨끗한 여관에 대해 형성된 감정이 없어서 인가봐요.
관객: 저 같은 경우에는 감독님의 영화는 실연당했을 때 보면 딱 좋다 란 생각이 드는데요. ’뭐 사랑 별거 있어?’하면서 피식 웃고 ‘다 그렇게 사는거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극장을 나서게 되요.감독님은 그런 부담감들에 대한 무게를 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감독: 계기는 너무 개인적인 거 같아서 추상적으로 말씀 드릴께요. 어려서 힘든 게 있으면 무조건 해결 하려고 하잖아요.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힘드니까. 그러면서 남들이 이렇게 하라고 제시해준 것들을 다 해봤어요. 그냥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잘 해결 할 수 있을까?’하면서.(웃음) 오만 가지를 다했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근본적인 치유나 해결이나 이해나 이런 것에는 도달할 수 없거든요.
그것보다는 조금 더 힘들어야 되요. 조금 더 자기한테 냉철 해야 되고. 조금씩 계속 노력 해야 되요. 그렇다고 해서 다음날 부터는 그 걱정이 안 생기는게 아니고 몇 십년 묵은 버릇이기 때문에 매일 매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단순하게 말해서 내가 아는 그 사람에게 조금 사람답게 굴려는게 다예요. 그 사람들 마음속에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존재하려고 하는 그런거. 그러면 내가 맘이 편하고 좋으니까. 미안합니다. 추상적으로 얘기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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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어쨌든 실연당했을 때 가장 위안이 되는 영화라니까 되게 반가우시죠?
감독: 네.(웃음)
허: 영화를 찍을 때 유난히 집착하는 어떤 특정한 요소가 있으십니까?
감독: 그런걸 줄이려고 굉장히 노력해요.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허한 기분을 주거든요. 해놨는데 하나도 안 쓰고 이러면 좀 그렇잖아요 .그런걸 개인적으로 무시할 수가 없죠. 제 베드신 보면은 여자 머리맡에 꼭 헤어 밴드가 놓여있어요. 보통 그런 건 제가 직접 만들거든요? 나도 왜 그런지 모르는데 여자 머리맡 어딘가에 밴드를 놓는 셋팅을 좋아해서 매번 그렇게 하게되더라구요.(웃음) 이제 이렇게 말까지 했으니, 다음엔 안 그럴 것 같아요.
허: 제가 사실은 사석에 질문 한건데 그걸 마지막으로 여쭙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홍성수 감독의 모든 영화에서는 남자가 반드시 여자와의 동침에 성공을 합니다. 사실은 보통의 남자들에게서 그 성공이란 것은 확률적으로 희박하기 때문에 홍성수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환타지적인 요소가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데 실패하는 경우는 없단 말이예요..어쨌든.. 늘 성공하는 쪽으로만 갈까요?
감독: 재미없게 얘기하자면 여자와 남자가 둘이 만난다 부터 시작해서 결혼해가지고 늙어 죽을 때 까지 같이 산다 까지 길이가 쭉 있으면 감독마다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끌리는 부분이 어떤 사람은 처음 만남을 무척 중요시 하는 감독이 있고, 어떤 사람은 헤어질까 말까 이러다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 어떤 사람은 만나고 난 다음에 과정 등등 그 관심이 저절로 정해지거든요.
그것은 어떤 캐릭터를 관심 있게 만들어 가느냐 어떤 종류의 모랄, 딜레마 들을 반복하느냐 이런 게 그 사람 삶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해요.그래서 그걸 벗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표현하는 방식의 변화하고 거기에 대한 밸런스가 더 나아지고 이런 건 있겠지만 변할 수가 없다고 생각하구요 .그래서 저한테는 남녀가 막 줄다리기 하는건 <오!수정>때 한번 해서인지, 남녀관계에서 막 힘들게 갈등하다가 이어지고, 그 부분에 대해서 부여하고 있는 문제의식, 혹은 정서가 저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 않네요.
허: 미처 물어보지 못한 질문지에도 ‘왜 그렇게 섹스를 많이 다루시나요?’ 이런 질문이 있어서 우회적으로 여쭤 본건데 아마 그것에 대한 충분한 답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홍성수감독과의 대화에 참여하신 분들께 감사 드리고 오늘 귀한 자리 참석해주신 감독님께 박수 부탁 드립니다.
감독: 감사합니다.
취재: 이희승 기자
사진제공: 백두대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