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미인도> 이후 영화 속 살색 노출의 빈도수가 줄어드는가 싶더니 또다른 방식으로 살색 노출의 빈도수 높은 영화가 올 연말 극장가를 노크한다. 언론과 관객의 이목을 집중하게 만듦과 동시에 올겨울 흥행가를 뜨겁게 달궈줄 영화 <쌍화점>은 <색, 계>의 노출 수위(헤어누드)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미인도>보다는 단연 그 노출의 빈도수에서 추종을 불허한다. 송지효와 조인성의 파격 노출과 더불어 극중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연기는 개봉 후 관객에게 화제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노출로도 영화의 이야기거리는 충분하겠으나 노출에 관한 집필은 본 기자의 전공 집필 분야가 아니기에 조금이나마 영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른 관점으로 조망코자 한다.
영화 속의 고려 왕은 실존 인물 가운데 누구를 모티브로 따온 설정인지, 그와 더불어 왕의 둘도 없는 돈독한 친구이자 신하인 홍림이 어떻게 왕과의 관계가 소원해 지는가에 관해 다뤄보겠다. 욕망이 어울렁 더울렁 거리는 영화 속 남녀상열지사 시퀀스보다 인물의 내면심리 묘사가 디테일하게 나타나는 영화이기에 각 인물들의 심리 변화 스펙트럼의 폭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양태로 나타난다. 영화 속 인물들 가운데 나타나는 심리 변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본 기사를 읽는 분들이 간접적으로 향유하시길 바라며.
영화 속에서 고려시대 당시의 특정 임금을 지칭하진 않지만 시대적 설정은 원으로부터 100여 년간 섭정을 받는다는 것은 영화 속 대사를 유심히 듣다보면 알 수 있다. 그와 더불어 고려 시대 특정 임금을 모티브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보도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고려 말, 대외적으로는 원으로부터 자주성을 회복하고 내부적으로는 권문세족으로부터 왕권강화를 꾀했던 공민왕 시대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영화 속 왕의 직속 친위부대 ‘건룡위’는 공민왕 시대 존재했던 ‘자제위’에서 모티브를 딴다. 자제위는 사대부 가문의 자제들 가운데 미소년을 선발하여 왕의 최측근에서 호위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송지효가 연기하는 원나라 출신의 왕후(영화에선 왕후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실존인물이었던 노국공주와도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하나 영화 속 왕후의 행동은 노국공주와는 전혀 별개인, 팩션적 착안임을 밝혀둔다.
이와 더불어 공민왕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고 해서 공민왕이 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섣부른 단정은 하지 마시길. 미소년 호위부대 자제위가 존재 했었다는 이유 하나로 섣불리 공민왕을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로 추측하기 쉽지만 공민왕의 성적 취향이 보통 사람과 남달랐음을 언급하는 비사(秘史)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견이 분분한 셈이다. 영화 속 고려 왕(주진모가 연기하는 왕 역시 왕후와 마찬가지로 왕의 호칭이 거론되지 않는다)의 남성편향적 성적 취향은 팩션적 가정일 뿐이다, 실존 고려 왕 가운데 남성편향적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 취향을 가졌던 인물은 역사 속에서 정작 따로 있다.
고려를 속국으로 컨트롤하는 외세의 실체인 원은, 후사가 정해지지 못한다면 현재의 고려 왕을 왕위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섭정의 의도를 표면적으로 노골화한다. 하지만 왕에게는 후사가 없을 뿐더러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을 가졌기에 원나라 출신 왕후와의 잠자리는 미션 임파서블. 게다가 신하들은 원나라가 잠정적으로 낙점한 경원군을 은밀히 옹립코자 하는 계략을 꾸밈으로 원나라와 원만한 관계를 구축하고 자신들은 경원군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준(準) 모반을 꾀하고 있었으니, 국내외 정치역학 메커니즘을 거시적으로 바라볼 때 왕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왕권보위책은 조속한 시기에 후사를 얻는 것이었다. 왕은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홍림(조인성)으로 하여금 왕후와 잠자리를 갖도록 명한다. 오랜 신하이자 친구인 홍림과의 합방 시도를 통한 가임을 모색하지 못한다면 왕권 자체의 존립이 불가능하기에 말이다.
왕과 정신적 유대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가깝던 홍림은 이 제안을 달가와 할 리 만무하다. 처음엔 합궁에 실패하고 두 번째는 테크닉은 미숙하지만 동정을 왕후에게 헌납한다. - 여기서 ‘동정’이란 단어를 구사한 연유는 홍림이 살을 섞은 대상이 여태 왕 한 명이었지 동성이건 이성이건 그 외엔 전무(全無)했기에 그렇다. 그리고 홍림은 영화 속 상황을 통해 짐작컨대 왕과의 합궁에서는 수동적 입장이지 결코 능동적 입장이 될 수 없다. 왕이 홍림과의 잠자리에서 수동적 태도를 즐겨 했다면 대리합궁을 시킬 연유가 전혀 없다.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 본인이 왕후와 잠자리를 하면 되니.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동성애 지향적으로만 알던 홍림 자신의 성적 자아는 이성애에 서서히 눈을 뜬다. 차라리 홍림이 전에 여성의 육체를 경험한 적이 있었거나 양성애자였다면 영화 중반부 이후 왕과의 엇박자라는 단초는 제공되지 않았을 것이다.
홍림은 어려서부터 왕의 곁에 있으면서 호위하고 왕과의 돈독한 우정과 더불어 애정을 쌓아왔다. 그런 홍림이 왕과의 관계 악화라는 악수를 두게 된 원인이 다름아닌 왕후와의 불륜이라는 점은 왕과 왕후의 성 취향 메커니즘이 전혀 상반됨으로 말미암은 비극의 단초가 제공됨에 기인한다. 왕후의 성적 취향은 이성애 지향적이지만 왕의 성적 취향이 동성애 지향적이라는, 후사라는 2세 생산에 치명적인 구조만 아니었어도 왕과 홍림의 관계는 이리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동성지향적 성관계를 지향한다 하더라도 남자라는 생명체는 본시 상대방이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했는가에 대해 불같은 질투심을 유발한다. 본인이 직접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합궁을 허락한 횟수 이상의 잠자리를 그 누군가가 시도 했다고 하면 분노에 치를 떨게 된다. 그런데 아내와의 부적절한 잠자리의 주인공이 그 누구보다도 왕이 제일 사랑하던 홍림이었다니 오호 통재라. 홍림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어야 할, 사모함이라는 영역이 기존의 왕에서 왕후로 자리매김이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왕은 분노와 배신감이 동시에 차오를 수밖에. 왕과 홍림 두 사람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우정에 금이 가게 만든 홍림의 불륜은 이성에 기인한 행동이라기 보다는 프로이트가 지칭하는 원초아(Id)에 기인한다. 홍림의 자아(Ego)가 원초아의 원초적 욕망을 이성적으로 자제할 줄 알았다면 왕후와의 합궁 이후의 잠자리는 왕에 대한 예의가 아니자 왕에게 거짓말을 하게 될 단초를 초래하기에 애시당초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왕과의 우정 지속하기라는, 이성의 영역으로 홍림이 생각하기보다는 배꼽 아래 원초아의 영역이 자아라는 이성보다 우월했기에 비극의 단초는 제공된다. 돈독했던 친구간의 우정이 멀어진다는 설정은, 영화 속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미스틱 리버>(2003)와 일정 부분 오버랩 된다.
왕의 성적 취향이 보통사람과는 다르다는 사실로 인해 홍림은 왕후와 합궁을 한다. 하지만 왕이 허락한 공식적인 합궁 이외의 경로로 왕후의 육체를 탐하고 이로 말미암아 왕의 분노를 삼으로 두 사람의 우정이 멀어진다는 설정을 보노라면 원인제공은 왕에게도 일부 있지만 우정 파괴의 결정적 단초는 원초아(Id)를 자아(Ego)의 영역이 통제하지 못한 홍림의 실책이 더 크다고 본다. 하지만 배꼽 아래 원초아의 블랙홀 같은 마성을 통제 못한 남자가 어디 홍림 뿐이랴. 그리고 홍림에게만 주홍글씨 부여할 일은 아니다. 박수는 맞상대가 있어야 박수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홍림의 이러한 심리 변화 과정은 조인성의 섬세한 눈빛 연기와 더불어 살색 충만한 남녀상열지사로 진행된다.
왕후의 심리적 위치는 영화 초반부 설정만으로 본다면 왕과 홍림 사이에 낄 자리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세상 어느 천지 궁중에서도 왕과 신하가 밥상을 매일 같이하는 법은 없다. 하나 홍림은 밥상공동체에서 왕후를 제쳐두고 왕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만큼 왕과 홍림이 막역한 사이기에 원에서 시집 온 타국의 왕후가 왕의 심리적 유대감과 공유될 여지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역전현상이 발생한다. 왕후와 홍림의 육체적 관계로 심리적 유대감이 생기면서 이제는 왕이 타자(打者)로 밀려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만다. 불륜이긴 하지만 왕후와 홍림 간의 심리적 유대관계가 새로이 그리고 공고히 결속된다. 그리고 기존의 공고했던 홍림과 왕의 유대관계는 깨지고 만다. 그렇다면 세 남녀 간 심리 유대 관계에서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인물은 누가 되겠는가. 바로 홍림이다. 전반부엔 왕과 홍림, 그리고 합궁 이후엔 홍림과 왕후의 유대감이 생성된다. 영화를 통전적으로 바라보더라도 왕과 왕후, 홍림이라는 이들 세 남녀가 동시에 동일한 심리적 유대관계를 형성한 적은 영화 전개 중 한 번도 없었음을 발견케 된다.
2009년 1월 5일 월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