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 헐리웃 최고의 거물로 성장하는 30대 초반 두 젊은 감독이 각기 자신의 야심작을 힘겹게 마무리하고 휴가지에서 만났다. 아직은 넘치는 재능을 인정받고 있을 뿐이었던 미완의 대기 두 사람. 한 사람은 헐리웃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며 어렵사리 완성한 영화에 지쳐 감독을 그만두고 제작자로 나설 생각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헐리웃 메이져 제작사의 횡포에서 자신의 영화를 지키느라 지쳐 쉬어가는 영화를 감독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그한 명은 어린 시절부터 빠졌던 거창한 스페이스 오페라를 1977년 (이후 재개봉하며 에피소드 4가 되는) 〈스타워즈〉로 완성한 조지 루카스고, 다른 하나는 하드코어 SF팬의 로망이던 외계인과의 최초 만남을 같은 해 〈미지와의 조우〉로 개봉한 (하드코어 SF팬)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하염없이 쪼그라드는 제작비를 버티다 못해 미대를 방금 졸업한 햇병아리들을 불러모아 특수효과팀을 꾸리며 현대 SF 영화의 특수효과 시스템을 거의 만들다시피 했던 조지 루카스는 자신이 만든 팀 (후에 헐리웃 특수효과를 대표하는 조직이 되는) ILM을 비롯한 제작팀을 유지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었고, 제작에 집중하는 자신 대신 유능한 감독이 필요했다. 여기에 필생의 대작을 만드는 동시에 최종편집권을 지키기 위해 스튜디오 제작자와 싸워야 했던 스필버그가 응한 것은 물론이다.
복고풍 싸구려 모험영화, 혹은 본드무비의 창의적 복제
휴가지에서 스필버그는 “본드 무비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한다. 정부의 음모와 외계인의 묵직한 묘사를 아우르는 밀도 높은 ‘작품’ 〈미지와의 조우〉를 힘겹게 끝낸 마당이니 부담없는 영화를 찍으며 일을 즐기고픈 스필버그의 생각을 모를 바 아니다. 여기에 루카스는 자신이 평소에 생각해 왔던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어린 시절 TV 등에서 즐겨 보았던 싸구려 액션 시리즈, 건장하고 의협심 강한 백인 남성이 가볍게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고 경쾌하게 마무리하는 영화를 80년대 영화관에 걸고 싶었던 것. 고대 문명의 비밀을 찾아 나찌와 싸우는 건장한 백인 남자 모험담 〈인디아나 존스〉의 컨셉은 이렇게 시작했다. 여기에 스필버그가 찍고 싶었던 ‘본드무비’의 성격이 더해지며 첫번째 영화 〈레이더스〉가 완성된다.
여유 넘치는 남자 주인공이 모험을 하고, 80년대식 스턴트가 넘실거리는 탁월한 액션영화라는 점 이외에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본드무비에서 받은 영감은, 영화 도입부부터 나타난다. 첫번째 시리즈 〈레이더스〉에서 초반부를 장식하던 저 유명한 황금상 탈취 시퀀스, 두번째 편 〈인디아나 존스〉 도입부를 기억하게 하는 상하이에서 누르하치 상을 놓고 펼쳐지는 클럽 탈출 시퀀스, 세번째 편 〈최후의 성전〉에서 (리버 피닉스가 맡은) 어린 인디아나 존스가 콜로라도의 십자가를 놓고 도굴꾼들과 대결을 펼치는 도입부는 모두 영화 전체 전개와는 별개로 오프닝을 채우는 액션 장면이다. 이런 스타일로 영화 초반에 강렬한 액션으로 도입부를 여는 스타일은 본드무비의 전형적인 방식. 많은 부분에서 본드무비의 전형성을 벗으려고 했던 2007년 작 〈카지노 로얄〉마저도 대사관까지 우격다짐으로 쳐들어가 범인을 사살하는 액션 도입부는 사라지지 않았다. 시리즈마다 매번 인디아나 존스의 애인이 바뀌는 ‘인디 걸’ 역시 ‘본드 걸’의 차용이다. 첫번째 편에서 스승의 딸이자 과거의 연인 매리언(캐런 앨런), 두번째 편 상하이 클럽의 가수 윌리(케이트 캡쇼), 세번째 편 팜므파탈 여학자 엘자(앨리슨 두디)로 이어지는 여배우 라인이 인디 시리즈 이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마저 비슷하다.
헐리웃 거물이 되는 발판에서 특별한 제작 시스템을 갖추기까지
여러 방면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통해 헐리웃 거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다진다. 세 편에 이르는 시리즈가 모두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경제적 결실은 물론이고, 매트 페인팅에서 스톱모션 특수효과에 이르기까지 루카스의 특수효과팀 ILM의 주요 프로젝트로 빼어난 특수효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게 컴퓨터 그래픽이 대중화되기 전 전통적인 스턴트와 수작업 특수효과의 모든 노하우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유능한 감독과 제작자를 필두로 민완 특수효과팀, 음향효과팀을 거느리고 〈스타워즈〉〈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성공으로 얻은 재원으로 독립적인 제작 환경을 꾸릴 수 있게 된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가 헐리웃 메이저 제작사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진 것은 그 결정판이다. 독립적인 권한과 시스템을 배경으로 스필버그와 루카스는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었고, (메이저 영화사는 신경도 쓰지 못한) 재능 있는 영화 감독을 지원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제작을 헐리웃이 지원할 수 있었고 스필버그는 〈백투더퓨쳐〉의 로버트 저메키스, 〈그렘린〉의 조 단테, 〈폴터가이스트〉의 토브 후퍼, 〈맨 인 블랙〉의 베리 소넨필드를 ‘스필버그 사단’에 끌어 안으며 유능한 제작자의 안목을 증명했다.
아무리 상업적인 성공을 했다 해도 거대 제작사는 아니었던 루카스 필름에서 루카스와 스필버그는 최적의 제작비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갖은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처음부터 싸구려 TV 시리즈의 영화판을 표방했던 조지 루카스의 기획과 어깨에 힘 잔뜩 준 걸작을 만들 생각이 없었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의기투합은 영화를 만드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위기를 효율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고, 사실 상의 공동 감독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첫번째 편 〈레이더스〉를 찍을 때 기록필름에서 스필버그가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영화를 잘 모르고 저 사람이 진짜 감독”이라고 부를 만큼 두 사람은 함께 고민을 풀어나갔다. 여기에 동년배 해리슨 포드가 가세했음은 물론이다. 두번째와 세번째 시리즈를 감독하며 스티븐 스필버그가 얻은 노하우는 최적의 제작비와 기간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능력이다. 후에 훌륭한 제작자로도 드러나는 바, 이 때 얻은 노하우는 일정 수준 이상을 보장하는 영화를 만들면서도 헐리웃 제작자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큰 것 터트리는 비슷한 이름 값의 감독인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같은 예산 기간 초과로 유명한 장인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의 반은 인디 시리즈에서 얻은 셈이다.
노장 셋이 19년 만에 네번째 영화를 만든다. 처음부터 참여한 노장 스텦 제작자 조지 루카스,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음악감독 존 윌리암스와 타이틀롤을 27년째 맡고 있는 주연 해리슨 포드가 그대로 남아있는 〈인디아나 존스 4: 수정 해골 왕국〉은 비슷한 시기에 속편을 낸 다른 시리즈보다 월등한 기대를 자아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스필버그 자신도 밝힌 것처럼 사실 상의 시리즈는 3편으로 완결이 된 상황, 첫 편의 인디 걸 매리언이 다시 등장하는 최신 편은 이모저모 시리즈의 관성을 떠난 스핀 오프 느낌이 강하다. 처음부터 인디 시리즈의 매력이었던 어깨의 힘 뺀 경쾌한 모험극이 시리즈의 부담마저 벗어 던진 최신편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2008년 5월 19일 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