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이 특별한 두 가지 이유
전쟁 없는 전쟁 영화 : 김기덕 감독의 본격 심리 드라마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그의 삶으로부터 온다. 그의 영화 안에 있는 고통과 폭력, 슬픔과 아름다움이 그토록 솔직하고 생생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의 상처받은 눈빛을 직시하거나 피묻은 손은 맞잡기 버겁다. 그래도 우리들은 외면하지 못한다. 설혹 그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고 나쁜 남자일지라도. 김기덕 감독은 해병대에서 5년간 복무했다. 영화 [해안선]에는 이 시절에 얻은 생생한 체험과 추상적인 문제의식이 흥미롭게 뒤섞여 있다. 아무런 자의식없이 집단적인 광기의 희생양이 된 강상병을 통해 감독은 우리를 전쟁 없는 전쟁 영화라는 진기한 경험으로 데려간다. 해안선, 그곳은 한반도 전체의 알레고리이자 김기덕 감독의 본격 심리드라마가 펼쳐지는 공간이다.
김기덕과 장동건의 이중주
장동건이 김기덕의 영화에, 그것도 적은 돈을 받고 출연하겠다고 했을 때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은 마이너리그의 작가주의 감독과 메이저리그의 톱스타가 만났다는 말로 놀라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사실 두 사람은 이미 각자의 위치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다만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다들 너무나 궁금해 했다. 둘이 만나서 도대체 어떤 영화가 나올까. 김기덕은 장동건의 우아함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닐까. 장동건은 자신의 팔레트에 한번도 짜낸 적 없는 어두운 빛의 파노라마를 화면 위에 불러낼 수 있을까. [해안선]은 이런 두 사람이 하모니를 펼치는 독특한 콘체르토로 마무리 되었다. 이것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계 전체에 새로운 경험으로 기록될 것이다.
[해안선], 한반도 전체의 알레고리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의 해안선은 여름이면 수백만의 피서객을 맞이할 만큼 아름답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곳에 북한에서 보낼 간첩을 경계한다는 이유로 철책이 바다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 이 영화는 수려한 자연을 가로막고 서 있는 험상궂은 군 초소에서 간첩을 잡겠다는 의욕에 넘쳐 실수로 민간인을 사살하고 미쳐버린 어떤 군인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남자라면 피할 수 없는 군대 생활. 그곳에서는 이성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이 상식이 되기도 하고, 쉽지 않은 일들도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실현된다. 설사 살인일지라도… [해안선]은 전쟁과 분단으로 50년 넘도록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한반도 전체의 알레고리이다. 그리고 [해안선]의 인물들은 그 50년의 세월동안 한국인들의 내면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광기를 간직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여덟번째 영화인 [해안선]은 또한 그가 지금껏 보여준 계급과 섹슈얼리티, 가학과 피학, 육체와 폭력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 온 전작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기도 하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철조망은 이전의 영화들에 등장했던 낚시바늘, 물, 거울, 유리와 동일하면서도 그 규모가 훨씬 확장된 메타포인 셈이다
장동건, 새로운 지평선으로 도약하다
너무나 눈부셔서 사람들은 그에 관해 길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장동건에 대한 세밀한 평가나 분석은 드물다. 연기자로서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각오로 뛰어든 [해안선]에서 장동건은 무엇을 발견하고 표현해냈을까? 어둡고 강인한 김기덕의 세계와 부딪힌 그가 [해안선]에서 빚어내는 색다른 드라마를 확인한다.
장동건 연기 인생의 3기
1단계 : 너무나도 모범적인 청춘 스타
1992년, 그는 미소년의 마스크로 청춘드라마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청춘 드라마의 전형을 만들어냈던 [우리들의 천국]과 스포츠 드라마 [마지막 승부] 등을 통해 그는 대표적인 청춘 스타로 자리잡았다. 여기서 그는 특유의 안정적인 마스크로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주연배우의 자리를 얻었다. 1997년 그는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을 시작으로 [홀리데이 인 서울], [연풍연가]로 스크린에 진출했지만, 미남 배우를 넘어 연기자로서 나름대로의 색깔을 갖추기엔 아직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장동건은 타고난 성실함과 신중함으로 영화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스타 배우 장동건의 시절을 이어나갔다.
2단계 : 폭발력 있는 조연, 연기 맛은 꿀맛
연기자로 성장하는데 있어 자신의 출발점이자 재산인 얼굴이 부담스럽다는 자의식을 가졌던 장동건의 껍질깨기 노력이 개화한 시기.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단순히 정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연기자로 변신을 꾀하면서 영화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형사 역을 맡았던 장동건은 이명세 감독 특유의 깊이 있는 서정성과 묘하게 결합되면서 관객들의 뇌리에 박히는 고유한 이미지를 남기는 데 성공했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에서는 유오성과 호흡을 맞추면서 성격파 조연에 가까운 연기를 해내 꽃미남 편견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스스로도 처음 연기를 시작하는 느낌이라고 할 만큼, 자신을 가두고 있던 빗장을 열고,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단계 : 새로운 지평 - 어둠과 상처의 파노라마
[해안선]에서 장동건은 간첩을 잡겠다는 열의에 불타다 뜻밖의 상황을 겪고 서서히 변해가는 강상병 역할을 맡았다. 강상병은 독특한 심리 묘사에 능한 김기덕 감독의 인물 가운데서도 가장 다채로운 표현력을 필요로 하는 캐릭터로, 영화 전체에 걸쳐 극단적으로 남성적인 면모에서부터 가장 여리고 심약한 모습까지 다양한 성격과 기질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짧은 시간에 가장 밀도 있게 인간 심리의 파노라마를 보여주는 역할은 배우로서 가장 힘든 연기. 10년 동안 성실함과 신중함으로 마련한 스타 기질과 최근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연기자로서의 능력, 게다가 자신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세계에 뛰어든 모험심을 최대한 결합시켜서 완성시킨 영화 [해안선]. 이는 어쩌면 장동건 자신에게도 믿어지지 않는 보석 같은 필모그라피가 될지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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