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의 유령(2006, Goya's Ghosts)
배급사 : (주)부귀영화
수입사 : (주)부귀영화 /
폭력과 광기로 얼룩진 어둠의 시대 가늠할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유럽 대륙에 거대한 변혁의 물결이 일어나고 있던 18세기 말, 19세기 초. 유럽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시기로 프랑스 혁명의 중심엔 나폴레옹이 있다. 당시 유럽의 중심이었던 프랑스는 혁명의 이상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을 혼돈에 빠뜨린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에겐 진정 무엇이었을까? 또 다른 형태의 지배와 피지배에 지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을 스페인 왕좌에 앉히지만 곧 영국의 명장 웰링톤에게 다시 빼앗기게 된다. 민주주의, 나치사회, 공산주의, 다시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삶을 지배했던 것처럼 당시 스페인 민중들은 격동의 시기를 견뎌내야만 했고, 그들에게 혼돈의 역사는 계속 반복 되었던 것이다.
이성이 잠든 시대의 부조리 종교재판소
18세기 후반 스페인은 유럽에서 많은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 국가였음에도 전통적인 가톨릭 군주제 국가였다. 또한 궁중은 유럽 왕실간의 복잡한 혈통 맺기와 힘겨루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프랑스를 시발로 유럽은 온통 혁명의 물결에 휩쓸리고 철학자들은 계몽운동을 시작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종교재판소는 도전 받는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단을 엄히 다스리기 시작하였고, 이단을 가리는 기준은 우습기 짝이 없었으며 가톨릭의 비합리성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힘은 인간의 삶을 황폐화하기 충분했다.
귀먹은 화가의 붓끝에서 되살아나는 역사의 아이러니 고야의 목도
프랑스시코 고야 루시엔트_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 스페인과 스페인 민중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화가 고야는 스페인 최고의 화가이자, 문화의 영웅으로 칭송 받고 있다. 그는 혼돈과 불확실의 시대에 민족적 의식과 깊이 있는 탐구자의 자세를 가진 전무후무한 진정한 예술가이다.
14살 때 아버지 친구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처음 미술을 접했고, 스페인 궁중화가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774년 고야는 궁중의 부름을 받고 1799년 스페인 최고의 궁중화가 자리에 오르게 된다. 카를로스 4세, 퍼디낸드 5세 때는 그의 초기 작품으로 아름다운 자연 배경과 반짝이며 희미한 파스텔 톤으로 왕조의 화려함과 환락의 덧없음을 주로 그렸다. 주요작품 ≪카를로스 4세의 가족≫(1800), ≪옷을 입은 마하≫≪옷을 벗은 마하≫ (1800∼1805)등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 직전 그는 청력을 잃지만, 그의 그림은 더 성숙해진다. 주제의식과 그림은 더욱 어두워졌으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광기는 더욱 심해져 공포와 어둠에 휩싸인 그림을 그렸고 광기와 몽상으로 괴로워 했다. 나폴레옹 지배 당시 그린 그림은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보다 전쟁을 통한 인간의 비인간적 내면을 묘사하는데 집중했다. 주요작품≪1808년 5월3일≫(1809), 연작≪전쟁의 참화≫(1810∼1814)등
나폴레옹의 지배가 끝난 후 그는 거의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었다. 그의 말년에는 정물, 종교, 풍속 등 다양한 것을 대상으로 환상이 짙은 ‘검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것이 표현파의 시초가 된다. 주요작품≪검은 그림들≫(1820~1823)등
이후 보르도에서 망명생활을 시작하며 그곳에서 죽음을 맞는다.
세기의 거장들의 만남
1. 거장_ 마음을 적신 이야기
50년 전 거장 밀로스 포만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 체코슬로바키아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 우연히 누명을 쓰고 범죄자로 참혹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페인 종교재판에 관한 책을 한 권 읽게 된다.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을 했지만 실제와 비슷한 이야기가 영화화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잠시 멀리 가 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오랜 공백에도 그 이야기는 밀로스 포만의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다.
2. 거장_ 마음을 사로잡은 그림
<아마데우스>홍보 차 프로듀서 사울 자엔츠와 마드리드로 동행한다. 그들은 파라도 미술관 맞은편에 묵게 되고 히에로니무스 보시의 <쾌락의 동산>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가지만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고야의 그림이었다. 영화화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그의 그림에 매혹되었고 고야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된다. “고야는 현대회화의 선구자입니다. 제 영화 안에 있는 인물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입니다.” _밀로스 포만
3. 거장_ 선택
감독 밀로스 포만과 프로듀서 사울 자엔츠는 이 영화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했으며, 초고를 위한 작가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밀로스 포만은 장 클로드 까리에가 적임자라고 여겼다. 40년쯤 전인 1966년 이탈리아의 소렌토 영화제에서 만난 둘은 영화 <탈의>, <발몽>의 감독과 작가로 함께 작품을 한 후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크나큰 존재가 되었다. 장 클로드 까리에 역시 고야가 살았던 스페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 이야기 일부로 고야의 그림을 본 후 그를 이야기 속으로 편입 시키고 싶어했다.
4. 거장_ 설렘
세기의 영화 거장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 모이다. 체코의 정치와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시작한 밀로스 포만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사의 흐름이 매력적 이었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살리에르의 질투를 거대한 심포니로 완성한 <아마데우스>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프라하의 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명제작자 사울 자엔츠는 대중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감각의 소유자다. 5개 국어를 넘나들며 자신의 한계를 없애고 폭 넓은 시선으로 100편이 넘는 시나리오를 탄생시킨 각본가 장 클로에 까리에. 알프레도 히치콕과 마틴 스콜세즈가 경배하는 20세기 초현실 영화작가 루이스 부뉴엘과 루이 말과도 함께 작업한 그도 <고야의 유령>을 위해 모였다.
이들이 함께 모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기대를 갖기에 충분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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