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예술영화 최고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생애 마지막 선물! - 단테의 신곡 3부작 프로젝트 중 두번째 영화 <랑페르>
<십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블루>, <화이트>, <레드>로 국내에서도 수많은 관객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은 <레드> 이후 영화를 통해 더 이상 현실을 담을 수 없다며 은퇴를 선언한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함께 시나리오 공동작업을 해온 크쥐시토프 피시비츠와 함께 유럽의 젊은 영화감독들을 위해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천국>, <지옥>, <연옥> 3부작 시나리오를 준비한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끝내기도 전, 심장수술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키에슬로프스키는 5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다행히도 미완성의 시나리오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오랜 영화동지 피시비츠의 손에 의해 하나씩 완성되었고, 이 시나리오들은 다시 유럽의 주목할만한 신인 감독들에 의해 한편씩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
첫번째 작품 <헤븐(천국)>은 2002년 <롤라런>의 감독 톰 티크베어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뒤 두번째 작품 <랑페르(지옥)>가 <노맨스랜드>의 감독 다니스 타노비치에 의해서 영화화된다. 첫번째 작품 <헤븐>이 다소 기대에 못미쳤던 것에 비해, <랑페르>는 키에슬로프스키와 피시비츠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어긋난 사랑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가족의 비극을 섬세하고 격정적으로 그려내, “과연 다니스 타노비치!”라며 전세계 평단과 언론의 격찬을 받았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피터 브래드쇼는 다니스 타노비치가 놀라운 성공을 이루었다며 “<랑페르>는 키에슬로프스키의 필모그라피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의 연예전문 일간지 “버라이어티 (Variety)” 역시 <랑페르>가 매우 치밀하게 짜여진 이야기와 인상적인 비쥬얼로 첫번째 영화 <헤븐>에 비해 월등한 성공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했다.
<랑페르>는 영화 역사상 가장 심오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었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영화다. 특히 다니스 타노비치라는 우리시대 가장 걸출한 신예감독이 연출을 맡아, 키에슬로프스키의 숭고한 예술정신과 미학을 올곧게 음미할 수 있도록 공들여 이뤄낸 수작이어서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사랑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관객들에게 <랑페르>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될 것이다. 더욱이 올해가 키에슬로프스키 서거 1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랑페르>의 2006년 개봉은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 키에슬로프스키에 대한 다니스 타노비치의 오마쥬! 다니스 타노비치는 영화 곳곳에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싸인들을 심어놓아 거장에 대한 오마쥬(존경)을 표현했다. 대표적으로, 그는 키에슬로프스키의 프랑스 국기에서 영감을 받은 세가지 색 연작 <블루>, <화이트>, <레드>에 대한 오마쥬로 <랑페르>의 세 주인공에게 각각 세가지 색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이 이미지를 통해 그녀들의 사랑과 운명을 표현했다. 프레데릭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안느가 보게 되는, 늙은 노파가 힘겹게 쓰레기통에 병을 짚어넣는 장면 역시 키에슬로프스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삽입된 장면으로, 프랑스 국기 세가지 색 연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임을 증명하는 인감도장과 같은 장면이라고 한다.
어긋난 사랑이 만든 지옥 같은 마음의 풍경!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달콤하지만 동시에 가장 잔인하다!
사랑은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 최고의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최악의 고통, 최악의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사랑은 이기적이고 파괴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고통받고, 사랑 때문에 상처주고, 사랑 때문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랑이야말로 평범한 일상생활 안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랑페르>는 ‘지옥’이라는 뜻의 불어. 영화는 프랑스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왜곡된 사랑의 욕망 때문에 고통받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 가까이에 있는 ‘지옥’의 의미를 탐색한다.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잔인한 복수의 칼끝에서 시작되는 운명의 수레바퀴
<랑페르>는 부정을 저지른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기 자식들을 죽이는 그리스 신화의 악녀 ‘메디아’의 이야기를 통해 잔인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휘말린 한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그린다. 소피, 셀린느, 안느는 세바스티앙의 고백을 듣고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의 오해와 광기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부정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남편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은 어머니의 잔인한 복수심이 아버지를 자살로 몰고 갔던 것! 그러나 어머니의 잔인한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가정의 파괴, 자식들의 희생으로 이어진다. <랑페르>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성인이 된 뒤에도 자식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어머니와 똑같이 잔인한 방법으로 남편에게 복수하는 소피, 세상으로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는 셀린느, 아버지 또래의 유부남과 불륜에 빠지게 되는 안느, 이들이 가진 고통의 종류는 각각 다르지만 고통의 뿌리에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운명을 똑같이 반복하는 소피의 곁에서 엄마의 분노와 절망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아이들의 존재는 이 비극적인 운명이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다시 그 딸에게로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를 암시해 보는 이의 가슴을 섬뜩하게 만든다.
엠마누엘 베아르, 캐롤 부케, 까랭 비야, 마리 질랭 프랑스 최고 여배우들의 눈부신 열연!
<랑페르>는 무엇보다 여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영화! 세 자매로 나오는 엠마누엘 베아르와 까랭 비야, 마리 질랭은 각자가 가진 독특한 매력과 개성을 통해 각 캐릭터의 고통과 지옥을 매우 설득력있게 펼쳐보인다. 캐릭터와 배우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랑페르>는 대사보다는 배우들의 표정연기를 통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얼굴 클로즈업 숏이 많고, 미세하고 섬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영화의 함축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으므로 각 배우들의 표정과 그 안에 깃든 의미를 놓치지 않도록 하자. 엠마누엘 베아르의 욕망을 지운 공허한 표정과 까랭 비야의 주저하고 망설이는 표정, 마리 질랭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열정의 표정은 백마디 말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 압권은 아무 말도 없이, 광기로 번득이는 눈과 미세한 표정변화만을 통해 내면의 격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캐롤 부케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연기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지는, 한치의 의혹이나 후회도 품지않은 그녀의 단호한 표정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레드, 블루, 그린, 3가지 색으로 캐릭터 이미지 구축 치밀한 미쟝센과 색채 미학으로 풍부한 의미 전달
키에슬로프스키기 감독이 <블루>, <화이트>, <레드>에서 색을 통해 영화의 주제와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낸 것처럼 다니스 타노비치 역시 <랑페르>의 세 자매 소피, 셀린느, 안느에게 각각 레드, 블루, 그린, 3가지 색의 이미지를 부여하고 이 색을 통해 그녀들의 사랑과 운명을 표현하고자 했다. 세 캐릭터 모두 목도리를 활용해 메인색을 표현하는 것은 기본, 빨간색 베개(소피), 파란색 스웨터(셀린느), 까페에서 주문한 초록빛 음료(안느)와 같은 특정 색의 의상과 소품, 인테리어 등을 통해 섬세하고 세밀하게 각 캐릭터의 메인 색을 표현하고 있다. 세심하게 조율된 색채 미학은 캐릭터의 성격은 물론, 영화 전체에 드리워진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을 더욱 강하게 상기시킨다.
뻐꾸기 탄생의 순간을 만화경으로 바라본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 자연세계의 잔인한 본성 포착!
만화경의 기하학적인 패턴 속에 이제 막 알에서 나온 새끼 뻐꾸기의 탄생을 담은 자연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는 놀라운 이미지의 향연 그 자체다. 뻐꾸기는 자기 둥지가 아닌 다른 둥지 위에다 알을 낳는다고 한다. 알을 깨고 나온 뻐꾸기 새끼는 제일 먼저 둥지 안에 있는 다른 알들을 밀어 둥지 밑으로 떨어뜨린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다른 알을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뻐꾸기 새끼의 처절한 생존본능이 어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다른 알을 밀어내려다 결국 자기가 둥지 밑으로 떨어지고 마는 새끼 뻐꾸기. 그런데 마침 근처를 지나다 그 모습을 본 친절한 신사(나중에 세자매의 아버지로 밝혀진다)가 뻐꾸기 새끼를 소중하게 안아 둥지에 넣어준다. 그러나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고 난 뒤 들려오는 알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소리는 그의 행동이 정말 친절한 행동이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연의 세계 안에 내재된 잔인한 본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아주 특별한 오프닝 시퀀스이다.
삶의 가혹함에 대처하는 타노비치식 유머 지옥의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웃을 수 있다!
세 자매를 강하게 연결시키는 비극적인 운명이 영화의 분위기를 엄숙하고 숙명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와중에 우리는 뜻하지 않은 장면에서 매우 코믹한 순간들과 마주하게 된다. 셀린느가 요양원에 있는 어머니에게 기네스북의 기록들을 읽어주는 장면이 그렇다. 19세기 최다 식인기록 보유자에 대한 이야기와 목이 잘린 채 가장 오래 산 닭에 대한 이야기들은 진지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기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로, 에비앙(evian)을 먹으면 나이브(naive)해진다는 까페에서의 세바스티앙의 농담, 남몰래 셀린느를 사모하는 기차승무원의 좌절된 프로포즈 에피소드 등과 함께 타노비치 특유의 비극의 유머가 묻어나는 귀여운 장면들이다. 타노비치는 <노맨스랜드>에서 비극과 유머를 결합시켰든, <랑페르>에서도 심각한 순간에 느닷없이 뜬금없는 농담과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이 장면들은 삶의 가혹함에 대처하는 타노비치의 방식이 표현된 장면들로, 지옥 같은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인간은 웃을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이 담겨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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