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2발의 총성이 울렸다. 대통령의 오랜 심복이었던 중앙정보부장이 안가에서 열린 만찬을 즐기던 대통령을 살해한 것이다. 총탄에 맞은 대통령은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사망하였다.
최초의 소재! <그때 그사람들>은 한국영화사상 최초로 한국역사의 가장 충격적이고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억되는 10.26 사건, 그 대통령 살해 당일의 24시간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사건 발생 25년이 지난 지금에도 ‘10.26 대통령 살해사건’은 여전히 함구된 역사로 남아있다. <그때 그사람들>은 영화적 허구와 픽션을 더해 새롭게 구성한 대통령 살해사건의 긴박한 하루를 묘사하였다. 관객들은 25년전 타이핑된 사건 수사기록보다 더 생생하게 표현된 사건의 현장을, 예상을 뛰어넘는 솔직함과 신랄함으로 무장한 그날의 현장을 영화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선! 대통령 살해사건의 현장에는 다양한 사연과 이유로 그 날, 그 곳을 지켰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다.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던 권력의 핵심층이 아니라 역사의 수면 밑으로 조용히 사라진 ‘조연’ 혹은 ‘단역들’이 그들이다. <그때 그사람들>이 그려내는 그날의 현장에는 상관의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총을 뽑고, 사건에 휘말리거나 가담한 중앙정보부 부하들과 만찬장에 초대된 여자들, 갑작스런 총격전으로 쓰러진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있었다. 비번이던 날 운 나쁘게 사건의 현장으로 불려나온 젊은이, 총을 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차출되어 고개를 돌린채 총질을 해야했던 심약한 마음의 부하, 몇 학년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예쁜 딸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장이었을 그들.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을 10월 26일의 24시간을 보낸 그들은 그러나 곧 잊혀졌다. <그때 그사람들>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군사문화가 오히려 스스로에게 총을 겨누게 되었던 자기모순의 역사를, 명령과 복종으로 일관되었던 가치관이 강요한 어이없는 희생의 현장을, 역사의 주역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잊었던 조연 혹은 단역들에 대한 조명을 통해 보여줄 것이다. ‘오늘 해치워버리겠다’며 자신을 따르라던 중앙정보부장, 쏘라고 명령하면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았던 상관, 알 수 없는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던 부하들, 그때, 그 사람들의 긴박하고 바쁜 하루를 담은 <그때 그사람들>은 그렇게 우리시대의 아이러니와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줄 것이다.
최고의 결합! 자신만의 개성과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이 <그때 그사람들>에서 만났다. 선량함과 차가움, 친근함과 비열함 등 양면적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표현의 폭이 넓은 섬세한 연기로 신뢰를 얻고 있는 한국의 대표 배우, 한석규. 나이를 잊은 듯 넘치는 에너지와 감수성으로 ‘중년배우’라는 세간의 고정관념을 간단히 깨부수면서 독보적인 연기지평을 새롭게 열어가고 있는 괴력의 배우, 백윤식. 이 두 사람이 한국영화에서 처음으로 호흡을 맞추었다는 면에서도 <그때 그사람들>은 단연 주목된다. 90년대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 새로운 감성과 형식의 멜로드라마를 주도하면서 흥행력과 작품성의 성취를 함께 일궈온 한석규는 <그때 그사람들>에서 중앙정보부장의 오른팔 역을 맡아 데뷔 이후 가장 유니크한 모습을 스크린에 새겨넣는다. <지구를 지켜라>의 괴이한 외계인, <범죄의 재구성>의 노회한 사기꾼 역으로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백윤식은 두 작품에서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인물을 리얼리티 넘치는 연기로 표현해내었다. 사실 이 두 사람의 공연은 명불허전의 TV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독특한 캐릭터 연기로 백윤식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크게 알린 이 드라마에서 미술 선생 역할로, 비열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우리의 제비 홍식 역할로 수많은 대중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던 이 두 사람이 2005년 신년을 여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 보여줄 연기호흡은 다시 한번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한다.
문제적 연출! 그 동안 가족, 성, 청춘의 키워드로 주류사회의 가치관을 시니컬하게 비웃었던 문제적 감독 임상수가 이번에는 한국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에 눈을 돌렸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그의 시선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저돌적이면서, 그 주제를 육화해내는 주인공들은 항상 한발 비껴서 있는 아웃사이더적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주류의 보수가 보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한 바람난 가족들, 도발적으로 자신의 성과 정체성을 고민하는 삐딱한 처녀들, 청춘계층의 밑바닥을 전전하는 가리봉동 청소년들이 그러하다. <그때 그사람들> 역시 권력의 핵심부의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보다는 권력의 주변부에 있었던 사람들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문제적 감독 임상수의 눈에 비친 한국현대사의 하루, 그 중요한 사건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내면 풍경이 더 궁금해지는 건 비주류를 껴안으며 주류를 냉소하는 임상수 감독 특유의 연출적 시각 때문이다.
일류의 완성도! <그때 그사람들>은 일류 스탭, 독특한 연기자들의 포진에서도 영화적으로 주목된다. <바람난 가족>에 이어 임상수 감독과 두번째 작업하는 김우형 촬영기사는 <거짓말> <해피엔드> <얼굴없는 미녀> 등으로 가장 ‘현대적인’ 카메라워크를 보여주었다. <바람난 가족>으로 스톡홀롬 국제 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한 바 있는 그는 <그때 그사람들>에서 보다 파워풀하면서도 유려한 화면을 보여준다. <바람난 가족>의 조명 고낙선, 음악 김홍집도 함께 손발을 맞추었으며 <범죄의 재구성>의 미술로 주목 받은 이민복 프로덕션 디자이너가 야심에 찬 “1979년 미술의 재구성”을 시도했다. 일급의 스탭들이 재현한 ‘과거’는 현대적으로 새롭게 재해석되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때 그사람들>의 연기자군의 면면은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이채롭다. 록밴드 ‘자우림’의 리드보컬로 오랫동안 그 수준과 대중적 인기면에서 최고를 지켜온 김윤아가 처음으로 영화연기에 도전하고, <눈물> <파리의 연인>의 개성 넘치는 연기자 조은지가 만찬장에 초대된 여자로 등장하며, 중후한 맛과 매력이 으뜸인 송재호, <범죄의 재구성>에서 휘발유역으로 자신을 알린 김상호,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드는 정원중, 권병길, 김응수 등 실력파 중견 연기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대사가 있는 역할만도 70여명이 넘는 이 영화에 단 한명도 허튼 캐스팅이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연기자 구성에 힘을 쏟았으며, 그들 역시 최선을 다해 제 몫을 해내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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