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6 : 소나기는 그쳤나요(2004)
|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는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 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마을 갔던 아버지가 언제 돌아왔는지, "윤초시 댁도 말이 아니야... 그 많던 전답을 다 팔아 버리고, 대대로 살아오던 집마저 남의 손에 넘기더니, 또 악상까지 당하는 걸 보면...." 남폿불 밑에서 바느질감을 안고 있던 어머니가, "증손이라곤 계집애 그 애 하나 뿐이었지요?" "그렇지, 사내 애 둘 있던 건 어려서 잃어버리고..." "어쩌면, 그렇게 자식복이 없을까..." "글쎄 말이지. 이번에는 꽤 여러 날 앓는 걸 약도 변변히 못써 봤다더군. 지금 같아서 윤초시네도 대가 끊긴 셈이지...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 <소나기> 중에서 -
이런 아련하고 지독한 사랑을 경험한 소년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소녀와 사랑을 나누었던 그 개울과 갈꽃밭 그리고 원두막을 견뎌낼 수 있을까. 소녀에게 꺾어주었던 들국화. 도라지꽃. 싸리꽃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소녀와 함꼐한 기억이, 추억이 생생한 그 공간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소녀를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소나기 그 이후...
소녀와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극복하고 자신을 용서하게 되면서 새롭게 삶을 인식하며 성장하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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