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 있어요. 거기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 여기 사람이 쇠사슬에 묶여 있어요. 살려주세요~~" 웬 40대의 남자가 다급하게, 목이 터져라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 그는 왜 공원 한가운데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있는 것일까? 그는 누구이고, 누가 그를 이곳에 묶어놨을까? 언제부터 그는 묶여 있었던 것일까?
땅에 박힌 채 꿈쩍도 않는 쇠사슬을 뽑으려 안간힘을 쓰는 그의 앞에 물에 젖은 작은 소녀가 나타나, '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울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 말에 심하게 자책을 하는 남자. 아마도 깊은 사연이 있는 듯하다.
밤이 오자 라이터를 켜 또다시 구조요청을 해보지만 역시 아무런 답이 없다. 추위와 두려움 속에 밤을 새고, 주머니를 뒤져서 나온 껌 한 통을 행복하게, 그리고 비참하게 씹고, 인간으로서, 동물로서 어쩔 수 없는 배변을 해결한 남자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느닷없이 따귀를 때린다. 남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황당한 상황에서 저항을 포기하고 여인의 따귀 세례를 수긍한다.
시간이 흐르고, 우울한 남자 앞에 알콜중독 증세를 보이는 남자가 '플루토'를 부르며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남자에게 주절거린다. 그런데, '플루토'와 '윌리엄 윌슨', 그리고 '어린 아내 버지니아'를 언급하는 이 남자의 정체는... 혹시? 그러고보니 그의 숱 없는 머리와 창백한 얼굴이 에드가 앨런 포우와 닮아 있다.
다시 밤이 오고, 남자는 쪼그려 앉아,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공동묘지에서 오싹하게 흐느끼던 소복 여자에 대해 중얼거린다. 급기야 초등학생 차림의 남자 앞에 소복 입은 여인이 등장해 자신이 흐느꼈던 무덤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며 이제는 서로를 가엽게 여기자고 말한다.
어디선가 굴러온 빈 물통을 빨다가 절망하고, 껌을 잘못 삼켜 고통스러워하고, 때로는 처연한 모습으로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남자 앞에, 욕쟁이 시인이 등장해 자신의 저승 경험에 관해 얘기하고, 슈바이처 박사를 언급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고는 쌍욕을 해대며 사라진다.
비장한 표정의 남자는 자신의 윗옷을 벗어 태우며 아파트 단지를 향해 구조 요청을 하지만, 다시금 실패하고 만다. 깊은 절망의 남자는 환상인 듯 뿌연 안개 속에서 아내와 두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 헤맨다.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 웅크린 남자 앞에 휘황찬란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등장해 '왜 자신의 신부 입장 예행연습을 방해 하냐'며 적반하장으로 화를 낸 후, 새 생명이 태어나면 통곡을 하고, 생을 마치면 잔치를 벌여 험난한 인생살이의 마감을 축하한다는 옛날 유럽 한 부족의 전통을 남자에게 들려준다.
웨딩드레스 여인이 사라지자 연이어 스님이 나타나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에게 껌과 모자를 건넨 후, '세상은 네크로폴리스-죽은 자들의 터전' 이라는 말을 남기고 기이한 수피춤(?)을 추며 멀어져간다.
스님이 사라진 자리에서 톱을 발견한 남자는, 그 톱으로 쇠사슬을 자르다가 예전에 자살한 군대 동기를 만나고, 그 동기로부터 자살의 이유를 듣고 박수를 보낸다.
넋이 나간 듯한 남자 앞에 중국집 배달부가 잘못 배달 온 삼선짜장을 배고파 보이니 그냥 먹으라며 놓고 간다. 그런데 남자는 상상인 듯 어느 다리로 가서 강물에 짜장면을 흩뿌리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흐느낀다.
이제는 죽어가는 들짐승의 모습으로 웅크린 남자 앞에 멧비둘기가 하늘에서 떨어지자, 남자는 주저 않고 그 멧비둘기를 뜯어 먹는다. 남자의 눈빛은 생존의 끝자락에 몰린 동물의 광기로 번뜩인다.
다시 밤이 오고, 겁에 질린 남자 앞에 서서 가느다랗게 흐느끼던 한 여자는, 젊어서 병으로 죽은 자신의 어린 시절 친구의 노래로부터 받은 생애 최초의 감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는 세상의 온전치 못함에 화를 내고, 마침 강도가 등장해 돈이 없어 죽어간 친구의 방치된 시체와 세상의 비정함에 대해 지껄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빚보증 사연을 얘기하던 남자는, 그 사람에게서 건네받은 소주를 들이켜다 켁켁거리고, 한대수와 세상의 부조리에 관해 대화한다.
그렇게.. 부조리한 죽음과 삶의 사연들이 남자에게 다가왔다 사라지고... 마침내 톱으로 자신의 발목을 자르는 남자는, 빚으로 인한 부인의 자살과 자신과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떠올리며 처절한 비명을 지른다.
어느덧, 편안한 얼굴의 남자는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바뀌며 자신이 묶여 있던 공원 벤치에서 일어서서 저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를 향해 끝이 없이 걸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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