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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고 관능적이지만 음울한 대서사시 트로이 디렉터스 컷
jimmani 2004-05-23 오후 7:42:58 1104   [5]
지금 대내외적으로 전쟁에 관한 소식들이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을까. 지금부터 이야기할 영화 <트로이>를 본 뒤의 나로서는 이렇게 정의할 수 밖에 없다. 전쟁이란, 인간의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는, 그러나 결국은 무의미한 결과를 낳는 싸움. 서로가 피튀기게 몸을 부딪치는 전투의 순간에 갖는 감정은 오로지 증오 밖에 없다. 그러나 그 배경엔 인간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는 게 전쟁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갖고 일으킨 싸움의 뒤에 남는 건 거의 없는 게 전쟁이다.

헐리웃 블럭버스터를 보고 이런 심각한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영화 <트로이>를 보고 난뒤에는 그 스펙터클함과 배우들의 철철 흘러 넘치는 매력에 감탄을 하고 난 뒤에도 이러한 생각을 가능케 할 만큼 무거운 여운이 남는다. 규모만 불리는 몇몇 블럭버스터들과는 상당히 차별화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용이야 많은 분들이 잘 아실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그리스의 아가멤논 왕은 세상을 다 가지려는 야심을 가지고 주변 국가들과 강제 협정을 맺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메넬라오스는 이런 잦은 전쟁에 신물이 나 평화 협정을 맺는다. 트로이도 그중 한 국가다. 메넬라오스는 트로이의 두 왕자-헥토르, 파리스를 불러다 축배까지 해 가면서 평화를 다진다. 참으로 화기애애한 순간이다. 그러나 이런 평화를 깨뜨리는 계기가 되는 아주 작은 금이 가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트로이의 왕자 중 동생인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 정략 결혼을 한 절세미인 헬레네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면서부터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에 뜨거운 사랑에 눈에 뵈는 것이 없는 파리스는 헬레네에게 비록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함께 도망치자고 말하고, 헬레네는 안타깝게도 이를 수락한다. 이에 파리스는 그리스에서 트로이로 돌아가는 배에 헬레네를 몰래 태우고, 형 헥토르는 이를 뒤늦게 알게 된다. 이미 태운 이상, 돌아갔다간 둘다 작살이 날 테고, 결국 헥토르는 헬레네를 태우고 트로이로 향한다.
그날 아침에 헬레네가 사라진 것, 그리고 그녀가 파리스를 따라 트로이 행 배를 탔다는 것을 알게 된 메넬라오스는 이전의 평화 협정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순식간에 꼭지가 돌게 된다. 트로이로 가서 철저하게 응징하겠다고 결심한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을 찾아가고, 권력에 눈이 먼 아가멤논은 얼씨구나 하면서 즉시 트로이 행을 선언한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단 한명의 전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그리스 최고의 전사인 아킬레스. 불세출의 전투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를 섭외(?)해야 하지만, 그의 성격 예사롭지 않다. 왕이 부르는 순간에도 여자와 태초의 분위기로 누워있고, 아가멤논을 상당히 싫어하는 편에 속하는 상당히 건방진 성격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뒤에 길이길이 남을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며 아킬레스는 결국 전쟁에 뛰어든다.

영화의 스케일은 예상했듯이 상상을 초월한다. 트로이로 진격하는 병사들이 탄 바다 위의 수천 척의 배들이 카메라에 잡히면서부터 기선을 제압하더니, 트로이 성 앞에서 벌어지는 수십만 군대의 전투신은 그 광대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대단하다. 스케일 뿐만이 아니다. 그저 컴퓨터로 만들어낸 대규모 군사들의 행진만이 볼거리가 아니라, 피튀기고 땀내 나는 사람과 사람간의 파워 넘치는 부딪침 또한 볼거리다. 그저 컴퓨터그래픽만을 사용해 건조하게 표현하지 않고, 마치 현대 전쟁영화를 보는 듯한 사실적인 전투신을 재현해 낸다. 이런 집단의 전투신 뿐만 아니라, 일대일로 펼쳐지는 전투신도 환상적이기 그지 없다. 저런 능력이 있는 줄 몰랐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던 브래드 피트는 무용에 가까운 화려한 칼놀림, 창놀림, 방패놀림을 선보인다. 이런 점에서 일단 시각적 재미 면에서 점수 먹고 들어간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평균 이상으로 훌륭하다. 다양한 연기변시을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꽃미남 배우로만 통했던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참 다양한 성격을 동시에 지닌 인간형을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지 능력만 믿고 거만하기 짝이 없기도 하지만, 사랑 앞에선 맹목적이고, 가족의 죽음 앞에선 분노에 치를 떨며 광기에 사로잡히는, 그러면서도 끊임없는 전투에 환멸을 느끼기도 하는 아킬레스의 모습을 잘 표현해냈다.
에릭 바나의 모습 또한 매우 인상적이다. <헐크>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꿰찼지만 솔직히 <헐크>에선 너무 같은 톤의 목소리로만 일관한 채 고민에 빠져 있는 모습만 보여줘서 다소 단조로운 연기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이런 우려를 깨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동생, 아버지, 부인 등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려깊은 왕자이면서 전장에 나가면 마치 살인병기가 된 듯 광기에 사로잡혀 무자비한 살상을 하는 트로이 최고의 전사 헥토르를 훌륭하게 연기해냈다.
이에 비해 올란도 블룸은 예상외로 좀 비중이 작다. 전쟁의 발단은 그가 맡은 파리스가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종일관 소심한 태도를 갖는다. 헬레네와 트로이로 도망쳐 온 뒤에도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또 도망치자고 부탁하고, 메넬라오스와의 일대일 전투 중엔 자신의 목숨이 빼앗길 것이 두려워 비굴하게 뒤로 물러선다. 물론 원래 설정된 캐릭터가 그래서 그럴 수도 있지만 다른 배우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데 대해 올란도 블룸만 다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아직 엘프 때의 습관이 남아 있는지 화살은 참 잘 쏘더라. 이 화살 실력이 시종일관 소심한 그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결말에 상당히 결정적인 공을 세우는 원동력이 되니 눈여겨 보시길.

이 영화가 다른 헐리웃 블럭버스터와 좀 다른 점은 그저 기분전환용으로 즐기기만 하기엔 상당히 음울하다는 것이다. 워낙에 비극으로 가득한 그리스 로마 신화가 배경이 되는 때가 영화의 무대라 그럴 수도 있겠다. 사랑이라는, 전쟁을 시작하기엔 다소 하찮은 계기로 시작되는 전쟁의 끝엔 모두가 불행한 결말을 맞는다. 트로이 최고의 전사로 불리던 헥토르도 결국엔 허무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고, 불사신에 가까운 전투 능력의 소유자인 아킬레스마저도 발 뒤꿈치(그 유명한 아킬레스 건이다)에 화살을 맞고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거기다가 강력한 왕국으로 군림하던 트로이도 고작 목마 하나때문에 온통 불바다가 되어 함락되고 만다. 그 거대한 전쟁 뒤에 전사들의 이름이 역사에 길이길이 남기야 하겠지만, 그 눈부신 능력을 자랑하던 아킬레스가 주검이 되어 불에 타는 라스트 신을 보고 있자면, 저것이 과연 그래도 의미가 있는 전쟁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 <트로이>는 배우들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관능적인 사랑이야기와 입이 절로 벌어지는 거대한 전투가 있지만 결국에는 이들을 뒤로 하고 모두가 비극으로 치닫는 대서사시다.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만 보기엔 다소 우울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전쟁으로 이루어진 고대의 역사, 그 거대하면서도 비장한 이면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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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디렉터스 컷(2004, Troy: Director’s Cut)
제작사 : Warner Bros., Village Roadshow Pictures / 배급사 : 판씨네마(주)
수입사 : 판씨네마(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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