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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스웨덴 버전에 비할 바는 아니다... 렛미인
ldk209 2010-11-18 오후 5:46:59 1030   [2]
여전히 매혹적이지만, 스웨덴 버전에 비할 바는 아니다...★★★

 

1983년 눈발이 흩날리는 미국 뉴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12살 소년 오웬(코디 스밋 맥피)은 12살 쯤 됐으며 맨발로 눈 위를 걸어 다니는 소녀 애비(클로이 모레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애비와 아빠로 보이는 늙은 남자가 이사 온 후 마을엔 피를 뽑아가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오웬은 애비가 뱀파이어임을 알게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국판 <렛미인>은 리메이크가 아니다. 스웨덴 버전과 미국 버전 모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소설 <Lat Den Ratte Komma In / Let The Right One In>을 원작으로 한 별개인 두 편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편집에서 조금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두 편은 상영시간도 비슷하고 (스웨덴 114분, 미국 116분) 시기도 비슷(스웨덴 1980년, 미국 1983년)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단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왜 <렛미인>이 1983년을 배경으로 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영화엔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동원된다. David Bowie라든가 Culture Club의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고, 스웨덴 버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루빅스 큐브가 두 아이를 연결해주는 주요한 장치로 등장하며, 애비는 그룹 KISS의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화 초반의 레이건 대통령 연설 장면이다. 연설문 전체가 자막으로 제공된 것은 아니지만, 레이건은 ‘외부의 악’에 대항하자는 내용의 연설을 하고 있다. 여기에서 ‘외부의 악’이 소련을 지칭하는 것임은 너무 뻔하다. 우리의 80년대와 마찬가지로 공교롭게도 미국이나 일본의 당시 권력은 모두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반공을 내세우는 정권이었다. 자본주의의 위기극복을 위해 ‘적은 외부에 있어야 했다’

 

영화 <렛미인>의 초반에 레이건 연설을 배치한 이유가 단지 시대배경이 80년대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왜냐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노래라든가 여러 장비를 이용해 충분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연쇄살인사건은 외부의 적에 의해 발생한 범죄가 아니다. 또한 오웬은 아이들로부터 ‘계집애’라는 놀림을 받는데, 당시 <람보>류의 영화가 히트하는 등 강한 마초가 득세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소녀’ ‘계집애’라는 놀림은 단지 문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좀 과장해 해석한다면, 레이건의 연설로서 시대 배경을 강조한 것은 진정 치명적인 적은 내부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는 않을까 싶다. 그러니깐 이런 차원에선 <렛미인>이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공기를 그리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리메이크가 아니라고 해도 늦게 제작된 이상 스웨덴 버전 <렛미인>과의 비교는 어쩔 수 없는 천형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버전의 <렛미인>도 상당히 매혹적인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원작 자체가 워낙 매혹적) 스웨덴 버전이 존재한다는 건 여러모로 미국판 <렛미인>의 존재를 축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이 영화가 미국에서 영어로 다시 제작된다는 뉴스에 딱히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건 워낙 스웨덴 버전 <렛미인>을 좋아했고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처음 미국판이 공개된 이후 터져 나온 미국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호평은 기존의 선입견을 접고 미국판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렛미인>을 보고 나니, 한국의 한 평론가의 20자평이 머리에 떠올랐다. “미국 평론가들은 스웨덴 <렛미인>을 안 본 게 분명하다”

 

스웨덴 <렛미인>의 분위기는 북구 스웨덴을 연상시키듯 스산한 아름다움으로 채색되어 있다. 북구의 춥고 황량한 겨울을 배경으로 서 있는 12살의 소년 소녀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가녀리고 애닮은 감성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스웨덴 <렛미인>의 가장 큰 특징은 정적이라는 것이다. 설명과 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소년 소녀의 표정이 대신했고 잔잔한 음악은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미국 <렛미인> 역시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다른 감성으로 다가온다. 사실 미국 <렛미인>은 아름다운 동화로까지 일컬어졌던 스웨덴 버전에 비해 스릴러 내지는 뱀파이어 호러 장르의 특징이나 재미가 좀 더 강조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영화의 처음 시작을 경찰차의 질주와 체포된 늙은 남자가 병원에서 추락해 죽는 모습을 보여준 후 2주 전으로 돌아가는 방식을 택한 것에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으며, 스웨덴 버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주민들이 거의 제거된 반면, 그 역할을 경찰이 대신하게 한 것도 장르적 재미의 강조로 보인다. 또한 소녀가 사람들을 습격하는 장면 역시 장르적 특징이 잘 살아 있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스웨덴 버전이 소년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나름 친절하게 묘사한 것과는 달리 미국 버전은 그 대부분을 삭제하고 오로지 소년 소녀의 관계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지점이다. 심지어 오웬의 엄마는 한 번도 뚜렷하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 대게는 흐릿하게 처리되거나 목 아래부터 화면에 잡히며, 이혼을 앞두고 있는 아빠는 목소리로만 대체된다. 아마도 소년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보이긴 하지만, 더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내가 스웨덴 버전에서 가장 좋아하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미국버전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첫째, 소년의 얼굴에 상처가 생기는 순간이다. 스웨덴 버전에서 상처가 생기는 순간 ‘쨍’하는 파열음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는 무표정한 소년의 얼굴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명한 겨울 하늘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버전은 대게 왕따를 괴롭히는 화장실로 장소를 옮겨 진행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딱히 인상적으로 연출되지도 않았다. 둘째, 소년이 얼음판 위에서 저항하는 장면. 스웨덴 버전의 이 장면은 극단적이라 할 만큼 음의 소거 속에서 진행된다. 한 쪽에서 소년이 막대기로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의 귀를 때리고, 다른 쪽에선 시체를 발견한 아이의 비명소리만이(!) 들린다. 소년은 자신의 저항을 득의만만한 자세로 만끽한다. 미국 버전 역시 비슷하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소년은 막대기를 버리고 당황해하며, 아이들이 떠들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로 부산하다. 셋째,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수영장 복수 장면. 스웨덴 버전은 역시 소리를 극단적으로 제거한 채 복수가 진행된다. 물속에 잠긴 소년의 느낌처럼 먹먹한 상태에서 뭔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곧 이어 목과 손이 물 속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소녀는 소년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고는 미소를 짓는다. 미국 버전 역시 구체적인 복수 장면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상대적으로 많은 소리들이 들리며, 물은 핏빛으로 물든다. 소년은 스스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영화는 끝내 소녀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고 넘어간다.

 

전반적으로 스웨덴 버전에 비해 미국 버전은 이야기의 집중도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보여주려 하고 설명하려 한다는 단점(나에겐)이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늙은 남자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원작에서 이 남자(호칸)는 교사였으며, 아동성애로 인해 교직에서 쫓겨난 후 소녀를 만나 복종하게 된다. 그런데 영화의 두 버전 모두, 이러한 원작에서의 설명 대신 다른 해석을 가미한다. 물론 스웨덴 버전은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나로선 늙은 남자가 소년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해석을 했던 것이고, 그래서 마지막에 기차로 떠나는 소년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고 기억된다.(그럼에도 영화에서 늙은 남자가 식당에서 책을 읽는 등 지식인적 느낌을 주었다는 건 어쩌면 스웨덴 버전이 원작을 충실히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미국 버전은 늙은 남자의 정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늙은 남자가 어린 시절 소녀와 같이 찍은 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소년은 이 사진을 소녀의 집에서 본 후 바로 떠나는데, 아마도 그 사진을 통해 자신의 비극적 미래를 예감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버전과 미국 버전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소년 소녀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같은 12살임에도 스웨덴 버전의 소년 소녀가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느낌의 아이들이었다면, 미국 버전은 성숙하며, 몇몇 장면에선 섹스어필하는 느낌까지 주고 있다. 이는 배우의 차이에서 직접 기인하는 바도 있을 것이다. 순수한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한 스웨덴 버전의 경우 아이들의 어색한 몸짓이 오히려 어려보이고 순진한 듯 다가왔다면, 천재 배우라는 찬사를 얻고 있는 코디 스밋 맥피와 클로이 모레츠의 나무랄 데 없는 뛰어난 연기가 오히려 아이답지 않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스웨덴 버전의 <렛미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한 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를 수 있지만, 만약 스웨덴 버전의 <렛미인>을 정말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면 굳이 미국 버전을 또(!) 볼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두 아역배우 때문이라면 관람할 충분한 가치는 있다.

 


(총 0명 참여)
cinemaj
“미국 평론가들은 스웨덴 <렛미인>을 안 본 게 분명하다” 정말 공감되는 평인듯 합니다. ㅋ 영화보는 동안 나 밖으로 나가도 되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말로 대답해줘~! 스웨덴 버젼만 떠올라~! 으~ 아악~   
2010-11-2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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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2010, Let Me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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