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불명 그 후의 김기덕 작품의 해안선. 그의 작품속에는 언제나 광기어린 눈빛을 가진 자멸하는 자가 있었다. 영화 <수취인불명>에서 그 튀기 양동근 과 그의 친구가 그러했고 영화 <해안선>에서 강상병(장동건)이 그러했다.
늘 그의 작품에선 세상..사람들..과 소외되버린 인간의 부적응으로 인한 파멸 그리고 무책임하게 잔인하리만큼 역겨운 여자들에 대한 윤간이 있었다.
이번 영화 <해안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려울것도 없이 간첩을 잡아보이겠다는 꿈을 가진 한 군인에게 그에게 우연히 포착된 검은물체에 대한 총격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 자신의 총격이 또 다른 자의 삶을 앗아갔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건 그 죽은자의 부모의 오열에서..그 애인에서에게도 아닌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강상병. 그리고 죽은 자에 대한 충격으로 정신이 망가져버린 한 비련한 여인.
그 죽은 자의 이웃들로부터 맞는 몰매로부터 아무 저항을 할수 없었던건 내 자신이 그 자를 죽인 대가를 받는다고 느꼈던 것일까...
세상을 바라보던 그 소외되기 시작한 자의 눈빛은 그렇게도 처절하고 서글펐다. <수취인불명>에서의 그 눈빛은 배역만 바뀌었을뿐 같았다. 눈빛에서 느꼈던 그 자멸하는자의 감정을 <해안선>에서도 충분히 느낄수 있었다.
그 자신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사회에 의해 그렇게 되버린 자신이었다.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결국엔 혼자가 되버린 그 자신. 그리고 서서히 세상에 대해서..사람들에 대해서 거부하며 미쳐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그는 이미 외부사람이었다. 다른 세상에 사는..
자신을 배타시키며 돌아가는 철조망속의 세상속에서 버림받음은 더욱더 그를 광분케 했으며 끝끝내 그들을 적으로 등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깊은 상처 입은 자의 아픔을 단지 술안주거리 우스개소리로 만들어버리는 매정하며 잔인한 세상의 조소가 애써 덮어두려했던 아픔을 곪게 한것이 아닌지.
결국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 세상속에서의 자신을 꺼내둔채 저항하던 그 비참한 한 군인의 말로는 거리 한복판에서의 시위..그게 전부였다. 그렇게 남들에겐 단지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 혼신의 저항이었다.
영화 <수취인불명>에서의 자멸하는 자에 대한 너무도 객관적인 감독의 눈빛은 이번 <해안선>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볼수밖에 없었고 우린 그저 그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이나마 느낄뿐이다.
그 윤간당하는 비련한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안타까움과 가슴아픔등은 여인을 바라보는 그 오빠의 느낌과 비슷하지 않을런지.. 마취제 없어도 낙태수술을 감행하며 자행을 저지르는 군인들은 자신의 목달기에 바쁜 세상의 파렴치한 부류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었다.
김기덕 감독은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되보는것도 그를 따돌리는 입장도 아닌 제 3자의 눈으로 그와 그들을 보며 우리가 무엇을 느껴야 하며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결국 우리도 거리 한복판으로 뛰쳐나온 강상병의 주위를 맴돌며 지켜보던 한 부류일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