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국가라는 서글픈 현실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태어난 모든 남성들은 반드시 군대에 입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사회와는 완전히 차단된 밀폐된 공간속에서 자신의 자유는 빼앗겨 버리고 무엇이든 명령에 따라야만 하는 군생활이란 누구든지 거부하고 싶은 곳임이 틀림없다. 자의에 의해 가는것보단 강제성을 띄었기 때문에 갖가지 사고들이 일어나며 군대에선 은폐시켜야 하는 일도 많고 거짓을 날조해야 하는 일도 상당수라 들었다. 수많은 군부대 중에서도 최전방이라 불리는, 북한과 가까이 맞닿아 있는 부대는 1초도 긴장을 게을리 할수 없고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상식이 되기도 한다. “해안선”은 김기덕의 영화이기에 관심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영화지만 넘지말아야 할 경계선을 지키는 한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드는 모호한 경계를 보여주기에 더욱 더 자극이 되었다.
“해안선”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건들은 “어쩔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우선, 군사경계지역이 존재하는 것도 우리가 분단국가이기에 어쩔수 없고, 강상병이 민간인을 사살한 것도 그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기에 어쩔수 없는 일이었단 것이다.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을 때 그것이 간첩인지 민간인인지 구분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에 하나 정말 간첩이라면 자신이 먼저 죽어나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연인의 몸이 갈갈이 찢겨져 죽는 모습을 그 자리에서 지켜본 미영에게 강상병은 가해자이겠지만 반대로 저녁 7시 이후엔 출입을 경계한다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해안선 안으로 들어와 민간인을 간첩으로 오인하게 만든 미영과 영길 역시 강상병에게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서로 피해자이며 가해자인 미영과 강상병은 광기에 휩싸이며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 앉는다.
미영은 영길의 죽음을 보았을 때부터 이미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자신의 눈앞에서 갈갈이 찢기는 걸 보았다면 따라서 죽음을 택하든지, 미쳐버리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미영은 후자의 경우다. 영길의 죽음과 동시에 죽어버린 그녀의 정신은 삶을 저주하고 자신을 저주하며 그렇게 끝도 없는 벼랑끝에 자신을 세워버린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생선 도막 내듯이 내리치는 그녀의 가학행위에서 그녀가 처한 현실이 온전한 정신이 아닌 불온전한 정신이라 해도 이겨낼 수 없을 만큼 잔인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게 한다. 사람을 죽였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휩싸인 강상병에게도 현실이 무참하리만치 잔인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의 편에 서서 그의 고통을 감싸줘야할 애인이 돌아서 버림으로써 어쩌면 유일하게 강상병 자신을 다독이고 광기에 휩싸이지 않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던 대상이 그를 또 한번 천길 벼랑아래로 밀어낸 것이다. 도저히 누가 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미영과 강상병의 삶은 악한 상황에서 더 악한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는 우리네 삶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이렇다. ‘어쩔수 없는 상황’들이 늘 우리의 삶과 공존하며 최악이라 여겨지는 상황속에서 ‘이보다 더 하진 않겠지’란 작은 소망마저도 무참히 짓밟아버림으로써 최악보다 더한 최악을 만들어 낸다. 박쥐부대 사병들의 성 노리개가 되어 급기야 임신마저 해버린 미영을, 마취없이 낙태시켜버리는 장면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가 은밀하게 얼마나 끔찍히 자행되고 있는지 김기덕 감독 스스로 그 속내를 시퍼런 메스로 헤집으며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극한 상황속에서 더욱 그 진가(?)를 발휘하는 인간의 잔혹함에서 내 삶이, 혹은 우리의 삶이 미영처럼 더한 최악에 처할수도 있음에 후들후들 떨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낙태를 당하고 있는 미영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이 그대로 이입되어 이제껐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는 미영과 강상병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군인들에게 삶을 유린당한 동생 미영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철구 역시 그들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피해자임이 분명했다. 그런 철구의 분노도 더 이상 절제할 수 없을 만큼에 이르러 지나가던 사병의 배에 칼을 들이댐으로써 폭발하고 그 역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아선다. 또 강상병의 광기로 인하여 이젠 함께 훈련받고 뒹굴었던 전우사이에도 내분이 일어나고 강상병과 대치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그렇게 계속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를 오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누가 더 고통스러운지 분별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해안선은 결코 오버되거나 허무맹랑하지 않다. 이처럼 비정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어쩔수 없음’으로 인하여 누구나 미영이 될 수 있고 강상병이 될 수 있는 무섭고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즉시하게 하려 함이다.
해안선은 아쉬움이 전혀 없었던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최고의 영화였다. 아무리 장동건의 연기가 더 강렬하지 못했다 해도, 전작들보다 상업성이 더 짙어졌다 해도 그 모든 아쉬움을 깨끗이 잊어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전율과 내면 깊은 곳에서 파고드는 슬픔은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감정 변화 하나 하나를 전달받을 수 있을 만큼 마음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김기덕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스토리와 그 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학과 피학, 폭력의 하모니는 어디서 전달되어 오는지 모를 카타르시스에 이내 눈시울이 뜨거워 진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수류탄에 의해 온몸이 찢기는 영길의 시체나 머리카락을 내리치는 미영의 모습은 김기덕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었던 극단적이고 소름끼치는 비주얼이 아닌가 한다. 나는 앞으로 김기덕이란 감독에게 더욱 더 기대를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그가 지닌 독특하고 풍부한 상상력에 의한 작품들이 내 가슴을 적셔줄 날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김기덕이란 이름 세글자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는 해안선은 차디찬 현실에 얼어붙은 내 감정을 뜨겁게 달구어준 수작 중의 수작이었다. 지금도 희미하게 웃는 미영의 모습이 너무도 선명하게 가슴에 남아 오랫동안 그녀의 슬픔을 잊지 못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