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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오롯한 감독의 자의식에 존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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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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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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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3 오전 4:4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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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관람 후, 서울 시사로 해안선을 다시 보다.
김기덕감독의 여덟 번째 영화 해안선을 논한다는 것은 실로 쉽지 않은일이다.왜냐하면, 해안선은 김기덕감독의 가장 사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가장 공적인 이야기이기 이며, 개인을 통하여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로, 얼룩진 볼록렌즈의 이면에 서있는 개인과, 사회라는 교집합적이며, 공집합적인 구조안에 존재하는 오롯한 감독의 자의식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는 사실의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김기덕감독의 볼록렌즈는 영화의 엔딩부분에 나오는 야시경과 닮아있으며, 야시경을 통해 보여지는 인물들은 각각, 그의 전작들과의 관계유무를 벗어나(나는 김기덕의 영화를 논하는 모든 리뷰와 평론들이 그의 전작들에 유난히, 얽매이고 있다는 우스운 사실을 발견했다. 어쩌면 앞으로 그러한 비교분석은 점점더 무의미 해질런지도 모른다.),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갖추고 있다. 그들은 필살의 의지로 살아가길 원하지만 \"운명\"이라는 철책선은 그들의 의지를 무참히 짓밟는다. 우리가 해안선에 주목해야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사유는 여기에 다시 존재한다. 해안선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운명\"은 위에서 언급한 개인의 운명을 통과하여 국가의 운명(족구장 아래로 허리가 잘려 놓여 있는 한반도의 운명)에까지 이미(수취인불명이후,), 번져나와 있다. 그러니까, 김기덕의 영화는 표현양식으로 인한 논쟁의 중심에서 벗어나 이미 그러한 논쟁따위를 조롱하며, 운명을 이야기하는 슬픈 드라마로 거듭나가고 있는것이다.(사실, 지금까지 조금의 동의도 할 수 없는 김기덕의 표현양식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동의할수 없다. 그것의 취사선택의 다양성일 뿐이다. 감독이 무엇으로 어떠현 표현을 한다해도 그것은 고유한 예술영역일뿐. 당신이 간섭하고 억누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우린 때로 너무나도 쉽게 그것을 잊고 김기덕의 영화를 \"쉽게\"이야기 해버리는 악습관을 갖고 있다.)
그의 , 혹은 그의 영화의 주인공이 조재현이든 혹은 장동건이든, 감독의 자의식에는 조금의 흔들림이 없다. 이러한 사실은 해안선에 우리가 열광할 수밖에 없는 , 그리고, 김기덕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그 여덟 번째 뚜렷한 사유다. 동시대 대중문화가 열광하는 장동건의 조각 같은 얼굴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장동건의 뾰족한 콧날이 아니라. 김기덕이 세상을 향해 가하는 뾰족한 바늘끝이다. 해안선에서 휘둘려진 김기덕의 바늘은 그 어느때보다도 날카로워 보인다. 이것은 당연히, 환영받아 마땅하다. 그가 피를 내보이고 낚시질을 시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강상병이라는 인물의 변화과정을 통하여 그 어떤 비쥬얼로인한 충격보다도 더욱 확대된 슬픔과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사적인 이야기라는 것은 가장 주관적인 표현의 가능성에 대한 선전포고이며 가장 자유로울수 있다는 가능성의 프롤로그이다. 결국 해안선에서 보여준, 단 한사람에게도 소홀하지 않은 등장인물전체의 슬픈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김기덕의 가장 주관적인 정서이며, 민족주의자라고 불리우길 희망하는 감독의 뚜렷한 작품의도이다. 해안선에서 가장 큰 피해자를 선별해 낸다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이다. 잘못된 총알에 목숨을잃은 영길과 미쳐버린 미영 그런 동생을 보아나가야 하는 철구 부대를 떠돌수 없는 슬픈영혼 강상병 그리고 그를 지켜보는 김상병의 처절함의 정도를 분별해내기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어떤 누구에게나 삶이 불규칙하듯 김기덕감독 작품의 등장인물들 또한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극단적이고 과장된 인물의 묘사가 아니라 현실속에 존재하는 나 혹은 당신의 모습이다. 끔찍한 현실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게 되길 원치 않는, 비겁함에 기인한 김기덕에 대한 당신의 불편한 정서가 지속되어진다는 사실은. 아직도 당당하게 김기덕의 인물들과 만날 용기가 없는 당신의 소심함을 증명한다. 인물들을 이해하고 슬픔의 정서를 느끼며 미영의 머리칼이 잘려나갈 때 눈물을 터뜨릴수 있는 당신은 이미, 비겁함을 이겨낸 김기덕의 창조적인 비쥬얼에 감탄할 자격을 갖춘 우리들의 \"친구\"이다. 해안선에서 보여준 뛰어난 비쥬얼은 여러곳에 존재한다. 미영이 회칼로 자신의 머리를 끊어내는 장면은 인물의 심리묘사를 너저분한 대사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묘사해내는 그의 상상력이 절정에 달한 부분이다. 타성에 젖지 않은 그의 상상력에 이제는 존경을 표한다. 철조망으로 만들어진 사각의 링장면, 역시 김기덕이 아니면 누구도 생각해낼수 없는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비쥬얼과 비교되어 지는 새만금간척사업을 \'직접묘사\'한 장면은 앞에서 언급한 장면들과 차별화되는 직설적인 표현법이다. 이렇게 김기덕은 판타지적인 혹은 다큐멘터리적인 비쥬얼을 넘나들며 자신의 영상미학의 범위를 조금씩 더욱 확장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해안선에서 함께, 언급되어야 하는 부분은 장동건의 연기이다. 초반부의 장동건의 쉰목소리는 김기덕의 영화에서만 볼수 있는 뛰어난 다큐멘터리적 요소이다. 2박3일의 해병대 훈련을 마치고 촬영에 임한 듯 보이는 전반부의 장동건의 쉰목소리는 뚜렷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빼고 더해짐없는 진실자체의 움직이지 않은 상태의 \"운반\"의 역할에 장동건은 누구보다 충실해보인다. 기존의 이미지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강상벽역할에 장동건은 분명 최선을다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존재한다. 조금더 극악스럽게 내뱉었으면 하는 대사들과 모션에서 장동건은 머뭇거리거나 자신없어 한다. 조금더 팔을 뻗치고 발을 굴러댔으면 하는 부분에서 장동건의 그 \"착한기질\"은 사실 투명하게 비친다. 이것은 영화의 악재로 작용할뻔(?) 했다. 그러나 김기덕의 뛰어난 두뇌가 이것을 용납할리없다. 영화의 비중은 강상병에게만 온전히 실려있지 않다. (이것은 나쁜남자의 한기와 다른 역할적 비중에 대한 비교분석이 가능하다.) 김기덕은 장동건에게 무리한 부분의 연기를 요하지 않는다. 역할을 축소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장동건이 잘할 수 있는 부분, 가능한 부분의 다큐멘터리적 연기성향을 김기덕은 충분히 뽑아내고 있다. 이에 유해진의 극성을 띤 연기 그리고 신선한 박지아의 연기를 더하고 익숙한 김정학의 매체적연기를 보태 장동건의 연기에 대한 아쉬움을 너무나 적절히 달래주고 있다. 이것은, 연기자의 역량부족을 논하기 전에 시사되는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는 해안선의 뛰어난 장점중의 하나이다.
극과극은 일치한다. 사선의 극과극을 연결하면 결국 둥그런 타원이 되고 마는것처럼 김기덕의 영화적성향은 그의 본질적인 순수함을 예견케 만든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때 보여주었던 영화의 엔딩크레딧 \"한반도의평화통일을 기원합니다\"라는 멘트는 바로 김기덕의 순수함에 기인한다.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알수있을텐데...라는 타인들의 우려는 김기덕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서울시사때 이 자막을 보지 못했는데 매우 아쉬웠다.) 의도는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감독의 지칠줄 모르는 뚝심이 국내유일의 자신만의 색채를 띤 작가주의감독으로 그가, 생존해나갈 수 있는 분명한 근간이 되어주는 것이다.
해안선은 순수한 영화다. 순수하기 때문에 슬플것이며 순수하기 때문에 여과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영의 처절함이 시나리오와 견주어볼 때 상당부분 생략되어졌다는 사실은, 큰 아쉬움으로 존재하지만(이것은 표현양식의 수위에 대한 조절인지. 노출범위에 대한 배우와의 이견때문인지 여전히, 궁금하다.) 여과없이 보여지는 날것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줄 단단한 이야기구조가 있기에 다행이다.
당신이 포장되어진 매일 오가는, 길만을 통해 출퇴근하기만을 원한다면 나 또한 어찌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단 한번이라도 현실의 부조리를 두 눈으로 직시해보고 , 운명의 불규칙성 앞에서 당황해본적 있다면, 해안선을 보며 목놓아 울것이다. 김기덕은 더욱 슬퍼질것이며 더욱 처절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산다는건 하루가 다르게 힘이 들며, 세상은 갈수록 더욱 처절할만큼 잔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천만원이 들어야 하는 CG장면을 청량리에서 구입한 아크릴을 이용해, 3천원으로 해결하고 그 돈으로 고생한 스텝들에게 가능하다면, 몇십만원의 대가를 더 지불하고 조금 더 행복해고 싶어하는 인간 김기덕. 우리는 그의 열정과 시도를 영원히 지지한다. 그의 영화가 생산되어 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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