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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이라는 제5계절에 이만큼 어울리는 영화도 있을까… ‘화장실, 어디에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내 가슴 속에서 계속 맴도는 말이었다. 분명 영화의 배경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웬지 현실에 딱 발붙이지 못하는 등장 인물들의 모습이 11월의 싸아한 바람을 한 가득 안겨 다 주는 것만 같았다.
영화는 각기 다른 장소에 있는 등장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마치 한 사람의 스토리인양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동동의 이야기에서 김선박의 이야기로, 김선박의 이야기에서 토니와 그의 여자친구의 이야기로, 또 다시 동동의 이야기로… 마치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연결방식이다. 삶이란 게 원래 물 흐르듯 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기라도 한 듯한 기법이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 가장 내 마음에 든 에피소드는 뉴욕에서의 동동과 토니의 장면이다. 동동은 암 선고를 받은 할머니를 살릴 약을 구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고, 토니는 여자친구의 어머니의 병을 고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살인청부업을 하러 뉴욕에 왔다. 둘 다 사람을 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지만 한 사람은 그러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해있다. 토니의 마지막 청부살인 장면은 거의 ‘대부’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그리고 그가 맞게 되는 최후는 ‘대부’에 지지 않을 정도의 슬픔과 감동을 준다. 개인적으론 이 부분만 똑 떼어서 간직하고 싶을 정도의 명장면이라 생각된다.
이 영화에선 단지 젊은이들의 모습만이 멋진 것이 아니다. 동동의 할머니와 할머니의 친구인 두 할아버지의 모습 또한 삶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비춰주고 그 모습들은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남긴다.
이 영화는 100% 현실에 기반 한 영화 라기 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변변한 직업도 없는 것 같은 중국 청년이 할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한국, 뉴욕 등을 오간다? 예쁜 소녀가 어느날 부산 앞바다에 헤엄쳐 왔는데 알고 보니 문어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마치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의 한 장면 같다. 옛날 어느 마을에 늘 천대만 받던 한 소년이 있었는데 어느날 모험을 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난다. 여행길 도중 그는 괴물들과 싸우고 나쁜 마법사를 물리치고 공주님을 구하고… 역시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동동이라는 주인공이 바로 이 소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동동은 과연 괴물들과 나쁜 마법사를 물리치게 될까? 그리고 공주님을 구하게 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걸 판단하는 것은 관객 개개인의 몫이라 생각된다.(나는 동동이 공주님보다 더 귀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프루트 챈의 전작 영화들 중, 내가 본 것은 “리틀청” 뿐이다. 그 영화를 보았을 때도 상당히 신선한 느낌을 받았고, 이번 “화장실, 어디에요?” 역시 신선한 감동을 안겨 다 주었다. 아니, “리틀청” 때와는 전혀 다른 신선한 느낌에 더욱 기분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실 분들은 프루트 챈 감독의 전작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감독의 영화를 본다는 마음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난무하는 허접스런 코메디 영화들에 짜증이 날대로 나 오랜만에 정말 신선한 느낌의 영화를 원하시는 분께 적극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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