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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블록버스터를 만들면... ★★★★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블록버스터를 만든다고? 그것도 성경 이야기를? 그러니깐 그 동안 중독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인물들을, 어둡게 그려온 대런 아로노프스키가 말이지? 처음 <노아>라는 영화의 정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다녔던 사람이든 아니면 한 번도 다니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아마 노아와 홍수에 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성경 속 인물 중에 노아만큼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세계와 잘 어울리는 인물도 찾아보기 힘들다. 신으로부터 거대한 방주를 만들어 다가올 홍수에 대비하라는 계시를 받은 인물, 그래서 자신과 가족만으로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잠겨 죽는 모습을 바라봐야 하는 인물이 그 동안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작품에 나왔던 인물처럼 과연 제 정신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선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가장 잘 해낼 사람이기 때문에 선택받았다”는 영화 속 노아의 말처럼, 집착, 강박관념이 없다면 수행해내기 힘든 계시일 것이다.
노아와 홍수, 방주에 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이 처음도 아니며 (사실상 표절에 가깝지만) 비슷한 시기에 북반부에 널리 퍼져있는 설화라는 건 이제 거의 상식에 가깝다. 잘은 모르지만 비슷한 시기에 홍수 설화가 널리 퍼져있는 건 아마도 빙하기가 끝나면서 쌓인 눈과 얼음이 녹아 거대한 홍수로 나타났다는 설이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대런 감독이 영화 속 풍경을 춥게 묘사한 거 아닌가 싶다.
아무튼,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는 설화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거대한 홍수, 방주라면 노아, 구약성서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의 개봉을 기다려 온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실제 많은 교회에서 개봉 초기에 단체 관람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마침 내가 관람했을 때도 교회에서 온 듯한 단체 관람객이 보였다) 그런데 <노아>는 이들이 생각한 기독교 영화가 아니며, 심지어 재난 블록버스터가 주는 재미하고도 거리가 멀다. 그러니깐 기독교적 복음 영화를 상상하거나 거대한 재난 블록버스터의 재미를 기대하고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불편, 불만에 사로잡힌 채 극장을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기존 대런 감독의 작품 세계처럼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얘기이며, 어떻게 보면 노아와 홍수라는 설정만 가져와 재해석 차원이 아니라 아예 새롭게 창조한 이야기에 가깝다. 영화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립하는 차원에서의 신(창조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며, 예상보다 더 어둡고 진지하다. 한마디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면 ‘뜨악’했을 법하다.
왜 그런가? 첫째, 이 영화에서 선한 세력을 상징하는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철두철미한 채식주의자, 동물보호론자로 설정되어 있으며, 특히 노아의 경우 후반부로 가면서 인간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동물은 인간을 위해 신이 제공한 것이므로 노아가 채식주의자로 그려진 것 자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창조주의 계시를 받은 노아가 맹목적 광신도로 그려진다면 반대로 악을 상징하는 세력에게서 인본주의적 냄새가 더 많이 풍긴다.
둘째, 영화에선 God 대신 Creator를 고집스럽게 사용한다. 이는 Creator가 기독교적 신이 아닐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중간에 노아가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천지창조 과정은 기독교적 창조론이 아니라 사실상 진화론을 보여주고 있음은 명백하다.
셋째,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이는데, 영화는 결국 기독교적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는 예정설, 결정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바꾸어 나갈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노아>엔 거의 인간 혐오에 가까운 정서가 흐르고 있다. 사실 영화의 긴장은 선과 악의 대결보다는 노아의 인간에 대한 감정 그리고 그에 기반해 스스로 창조주의 계시라 여기는 그 끔찍한 결말을 현실화시키려는 그의 맹목적 집념에서 발생한다. 그에 반해 결말이 너무 무난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거대 예산이 투입된 영화에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 교회에서 단체 관람 온 듯한 일행 중 일부가 영화가 중간에 이르자 뒤에서 투덜대기 시작한다. 꽤나 불편했던 모양인지 결국 중간 퇴장. 남은 일행은 끝까지 지켜보든데 그들의 감상평이 궁금했다.
※ 거대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를 대런 아로노프스키에게 맡기고 이런 시나리오가 채택됐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하다. 헐리웃이 세계 영화시장을 주무르고 있는 데에는 단지 상업성만 추구하기 때문은 아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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