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아는 나는 누구인가?... ★★★☆
한 대학의 영화과를 졸업한 선희(정유미)는 미국 유학에 필요한 교수 추천서를 받기 위해 자신을 예뻐했던 교수 동현(김상중)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우연히 자신과 사귀었던 문수(이선균), 문수의 선배 재학(정재영)을 차례로 만나 술을 마시며 그들이 하는 자신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벌써 열다섯 번째 작품인가? 우디 알렌도 그렇지만 홍상수 감독의 작품도 언제나 어느 극장에선간 항상 상영되고 있는 느낌이다. 다른 걸 떠나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것도 어느 한 작품 허투루 내다 버릴 수 없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우리 선희>라는 제목을 보고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미국의 Our와 달리 한국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우리는 영어로는 My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집은 내 집이고, 우리 아내는 내 아내이다. 그런데 영화 제목 <우리 선희>는 말 그대로 Our의 의미이면서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우리(My)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들이 공유하고 있는 선희와 함께 나만이 간직하고 있는 선희라는 의미.
언제나처럼 <우리 선희> 역시 홍상수의 영화처럼 소수의 인물이 소수의 장소에서 술을 마시며 끝날 것 같지 않은 긴 얘기들을 나눈다.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그렇듯이 대게 별 의미 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또 묘한 감상들을 던져주는 그런 대화들, 술이 깨면 민망해질 수도 있는 대화와 행동들이 길게 이어진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대화의 대부분은 영화 제목처럼 선희에 대한 것들이다. “선희는 내성적이기도 하지만, 엉뚱하기도 하고, 영민하기도 하며... 어쩌구 저쩌구”
세 명의 남자가 주저리 떠들어대는 선희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떠올랐던 건, 많은 한국인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였다. 그 수많은 인간들의 성격을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이와 관련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의 혈액형을 물어보고 그 성격을 알려준 후 반응을 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성격을 말해주자, 완전 자기 성격이라며 놀라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트릭은 참가자들의 혈액형과 관계없이 알려준 성격은 모두 동일한 내용이라는 것. A형이든 B형이든 O형이든 AB형이든 모두 동일한 성격만이 존재하는 놀라운 세계. 이게 무슨 얘기였냐면 모든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면들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순수한 100% 내성적인 사람, 100% 외향적인 사람이 존재하겠는가? 그러니 아무나 붙잡고 “조금 내성적인 면이 있군요”라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이건, 모든 걸 규정하는 개념은 한 가지도 제대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근데, 세 명의 남자들이 하는 선희에 대한 얘기는 좀 대동소이한 면이 있다. 모두들 비슷하게 선희란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웠다. 만약 영화를 안 보고 대충 줄거리만 들었다면 아마 ‘선희에 대한 세 남자의 조금 다른 이미지’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선 차이가 아니라 인간의 공통점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럴리가. 결국 <우리 선희>도 사람들이 누군가에 대해 모두 똑같이 얘기한다 해도, 그 사람의 본질과 일치하는 건 아니며, 여전히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건, 규정짓는다는 건 힘들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조차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특히 반농담으로 푸념을 늘어놓자면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심리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며, 영화를 보고나니 더 복잡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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