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는 불편하지만 매끈하게 잘 빠졌다.. ★★★☆
2001년 9월 11일, 무려 3천 여 명의 미국 시민이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한 테러공격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영화 <제로 다크 서티>는 그 날 이후 10년 간 오로지 오사마 빈 라덴의 추적에만 매달린 CIA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간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는 뭔가에 미치도록 중독되어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 <허트 로커>와 맥이 이어지는 작품이다. 마야 역시 오사마 빈 라덴을 잡고자 하는 열의의 원천에 애국심보다는 직업인으로서의 자세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느껴진다. 전작에 비해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무려 157분이라는 상영시간을 고려해 볼 때 <제로 다크 서티>는 무척이나 매끈하게 잘 빠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그래도 상영시간을 조금 줄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선 그 긴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영화는 오직 마야를 포함한 CIA 요원들이 마치 해변에서 바늘 찾듯이 오사마 빈 라덴의 흔적을 추적하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서브플롯 없이 오로지 메인 플롯 하나만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은 ‘돌직구’라는 요즘 유행어를 떠올리기에 손색이 없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향효과상(Sound Editing)을 수상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상과 어우러진 음향이 주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특수부대 네이비 실(Navy Seal)이 빈 라덴 은신처에 들어가 작전을 펼치는 장면은 담담하게 그려졌음에도 마치 당시 현장에 같이 동참해 있는 것과 같은 숨 막힐 듯한 밀도가 진하고도 높다.
영화 자체는 매끈하게 잘 빠졌음에도 선뜻 손을 들어주기 곤란한 지점이 있다. 미국에서도 논란이 된 것처럼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지형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CIA가 해외에 만든 비밀 감옥인 블랙 사이트(Black Site)에서 행해지는 고문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게 된 게 고문으로 얻어진 정보에서 시작하게 됐다는 것이고, 영화가 이러한 과정의 윤리적 딜레마를 거론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CIA 간부는 빈 라덴의 은신처가 확실하냐는 정부 당국자의 추궁에 ‘고문도 못하게 하면서 어떻게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냐’고 반박한다. 영화 속 TV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현재 결코 고문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에 심드렁해하는 CIA 요원들의 표정은 많은 걸 함축해서 보여준다.
테러에 대한 인식에서도 그러하다. 마야는 ‘오사마 빈 라덴을 없애야 테러가 없어진다’고 강변하지만 이는 테러를 개인에 대한 문제로 축소시킨다는 점에서 잘못된 접근이다. 테러, 특히 비무장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테러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슬람권이 미국 등 서구사회를 상대로 벌이는 테러의 원인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국의 중동정책에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특정한 개인을 없앤다고 테러가 근절되기는 힘들 것이다.
※ 농담이 아니고 진지하게, 만약 한국에서 <제로 다크 서티>같은 영화를 만든다면, 주인공이 오사마 빈 라덴의 추적에 광적으로 매달리는 이유가 알고 보니 사랑하는 사람이 911 테러의 희생자였다는 신파가 들어간다는 데에 100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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