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
★★★☆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으로 만든 알짜배기 SF
올해 영화와 드라마에서 타임 슬립 소재를 활용한 작품이 유독 많았다.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 SBS 드라마 [신의], TvN 드라마 [인현왕후의 남자] 등. 다양한 장르에 적절히 활용된 타임 슬립 이야기는 이 소재 자체가 무한히 활용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면서도 관객과 시청자의 눈에 익숙해져 때에 따라 지루한 소재로 인식될 수 있는 결과도 동시에 낳았다.
그럼에도 또 한 편의 타임 슬립 작품이 관객 앞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영화 [루퍼]. ‘시간 암살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영화 역시 타임 슬립을 주재료로 SF장르를 빚어냈다. 할리우드 영화 평균 제작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비용으로 만든 이 영화는 SF장르의 옷을 입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하게 하면서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상상력 높은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으로 적은 제작비의 빈자리를 채운다. 기존 SF영화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영상미, 판타지적 세계의 표현, 거대한 스케일. 이 영화에는....‘없다.’ 하지만 라이언 존슨 감독은 말한다.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붓고도 손익분기점조차 넘지 못해 관객의 발길만을 쳐다보는 대자본 저품질 SF 영화에게 “그딴 것 없어도 SF 할 수 있다!”고.
2074년, 암흑의 도시로 변해버린 미래. 황량한 느낌의 캔사스 지역은 거대 범죄 조직들이 세상을 뒤흔든다. 그들은 완벽한 증거 소멸과 시체 처리를 위해 타임머신을 이용, 살해해야 할 타깃을 30년 전 과거 2044년에 ‘루퍼’라는 킬러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루퍼로 활동하고 있는 조(조셉 고든 레빗)의 앞에 미래의 자신이 새로운 타깃으로 등장한다. 미래의 조(브루스 윌리스)는 살해당한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과거로 돌아와 레인메이커를 찾아 죽이려 한다. 레인메이커는 바로 조의 아내를 살해한 악당, 거대 조직의 보스가 될 인물이다. 미래의 조의 임무는 미래의 레인메이커가 될 아이를 찾아 죽이는 것. 현재의 조의 임무는 미래의 조를 죽여 조직의 추적도 피하고 남은 30년의 수명이라도 보장받는 것이다. 동시대의 현재와 미래의 내가 공존하는 아이러니. 내가 나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꼬여버린 운명에서 조는 특별한 선택을 하기로 결정한다.
[루퍼]는 ‘조’가 정해진 시간에 미래에서 보내지는 타깃을 구식 장총으로 쏴 죽이면서 시작한다. 황량한 들판 한 가운데 깔아놓은 하얀 천(?), 그리고 그 곳에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타깃. 영화 속 배경은 SF 영화의 배경이라기 보단 서부영화 혹은 90년대 초 액션 영화에 더 가깝다. 이런 설정은 기존 SF영화의 컨벤션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적은 제작비 탓에 적절히 타협하고 포기한 부분도 일부 있겠지만 황폐화 된 미래, 현재보다 크게 나아질 것 없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스크린에 구현하고 싶었던 감독의 연출욕심이 더 크게 작용한 결과로 느껴진다. 그래서 [루퍼]는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이 다소 모호하게 보인다. 지상에서 살짝 뜬 채로 날아다니는 오토바이, 투명 디스플레이를 갖춘 컴퓨터 외에 현재와 미래를 경계 짓는 요소는 찾기 힘들다. 예상 가능한 발전과 예상 불가능한 어둠, 두 현실상황이 교묘하게 섞인 [루퍼]의 미래 세계는 현재의 불안과 공포가 야기할 수 있는 충분한 결과로 설득된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movie.naver.com/
[루퍼]에서는 영화 속 배경 자체가 어둡고 거친 질감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눈이 시원해지는 매끈한 영상미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매끈한 영상미를 잊게 하는 라이언 존슨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은 확인할 수 있다. 앞서 말한, 타킷이 갑자기 등장하고 이를 아무 거리낌 없이 쏴 죽이는 첫 장면은 타임 슬립 소재를 임팩트 있게 담아냈고, 조가 마약을 눈에 집어넣으며 순간적으로 바뀌는 화면의 톤이라든지 조의 30년 인생 과정을 몽타주로 빠르게 넘긴 부분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순환의 고리’를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루퍼]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달리 말해, 이 영화의 강점과 약점이 동시에 될 수 있는 부분인데 그것은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의 기발함, 상상력, 흥미로움은 훌륭한데 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지나치게 깊어지면서 영화끝에가서는 발목을 잡는다. 영화는 타임 슬립 소재의 매력을 중심에 놓고 염력과 모성애, 사랑 등의 보조적인 이야기 구조를 접붙이면서 심지어 철학적 의미까지 담는 욕심을 보인다. 미래의 악당을 죽이려는 자, 악당이 될 가능성을 내재한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 그 둘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아이. 영화는 이 셋을 동일 선상에 놓고 현재의 조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문제는 이 이야기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데 있다. 영화 전반부는 SF와 액션, 현재와 미래의 조가 대결하는 구도 등의 볼거리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꾸려가는 반면 후반부는 볼거리 요소가 현저하게 줄고, 이야기 진행속도도 급격히 더뎌지는 것이다. 결국 관객의 집중력이 분산된 상태에서 결말에 다다르기 위해 포석되는 이야기들은 관객의 흥미도 잃게 하고 마지막 조의 선택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에도 실패한다. 게다가 내레이션을 통해 조의 선택에 기어이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관객에게 통보하는 장면은 전반적으로 흥미롭게 영화를 지켜본 관객을 맥 빠지게 한다.
[루퍼]는 볼거리에 충실한 SF영화나 액션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기존 SF의 볼거리를 이길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와 배우들의 호연이 영화를 떠받치고 있어 크게 지루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영화 속 브루스 윌리스의 말대로 복잡한 타임 슬립의 논리나 거대한 감동에 대한 기대만 없다면 오락영화로서 충분히 제 값은 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JK Soul's FILM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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