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사극을 보겠어요~
붉게 타오르는 도포 자락 속에서 가을을 느끼겠어요.
그 뜨거웠던 더위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지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합니다.
바야흐로 가을의 길목인데요. 가을에는 왠지 분위기를 타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지 않으신가요?
영화도 괜스레 클래식한 분위기가 끌리고 말이지요.
역사 속 광해, 알고 봐야 재미 두 배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두 얼굴의 광해를 만나보실까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광해’는 조선 15대 왕 광해군(1575~1641)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16년간의 짧은 재위 기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고,
당대와 후대의 평가가 이처럼 극단적인 왕도 드물지요.
영화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짧게 역사 공부를 더해볼까요?
광해군은 흔히 폭군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업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임진왜란 후 정세안정과 민생안정에 기여하고, 세가 기울던 명과 새롭게 떠오르던 후금 사이에서
현명하게 실리 외교를 펼친 개혁 군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린 광해군에 반발하는 세력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선조의 두 번째 왕비인 인목대비를 백성으로 신분을 낮추고,
배다른 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면서 폭군의 이미지로 남게 됐습니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내려와야 했던 광해군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한 음모를 경계했고,
급기야 충신 허균까지 모반죄로 능지처참하고 말지요.
스크린이 불러온 광해, 두 사람이다?
하늘이 내린 왕이 두 사람이라니! 그것도 왕의 꼼수라니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아온 광해, 이 때문일까요?
2012년 스크린이 불러온 광해는 급기야 두 사람입니다.
조선 광해군 8년, 독살 위기에 놓인 ‘광해(이병헌)’를 대신하여 그와 생김이 같은 만담꾼인
천민 ‘하선(이병헌)’이 왕의 대역을 맡게 된 것이지요.
광해를 두 명으로 설정한 발칙한 상상 뒤에는 한 줄의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朝報)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한 줄의 글귀,
그리고 실제 실록에서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 광해군의 15일 간의 행적이 그 단초이지요.
이 15일의 공백을 아무도 모르게 왕의 대역을 맡았던 천민이 있었다는
신선한 발상으로 채워낸 것입니다.
조선의 왕, 영화 출연 연대기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대 기록 때문인지 스크린이나 드라마는 유독 조선의 왕을 사랑해왔습니다.
한 줄 기록에서 시작되는 다채로운 상상력은 단순 위인전기가 아닌 흥미로운 팩션을 만들어냈는데요.
그리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왕의 영화 출연 연대기!
‘왕의 영화’에 등장한 충녕군(어린 세종), 세종, 연산군, 광해군, 정조, 고종.
● 조선 제4대 왕, 세종 : ‘나는 왕이로소이다, 2012’ ‘신기전, 2008’
=스물 둘의 나이로 조선의 제4대 왕에 오른 세종.
하지만 갑작스레 왕위에 오르는 게 싫어 가출을 감행한 어린 세종 충녕군(주지훈)과
그를 꼭 닮은 노비(주지훈)가 역할을 바꾸고 맙니다(‘나는 왕이로소이다’).
한편 어느덧 세종 30년, 중국 명이 새로운 화기 개발을 반대하자 신무기 신기전의 개발과
명의 위협 속 국민의 안전 사이에서 고뇌하는 세종(안성기) 또한 만날 수 있습니다(‘신기전’).
●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 ‘왕의 남자, 2005’
=폭군으로 기록되는 연산군(정진영)과 궁중 광대가 만나면? 동성애적 코드까지 버무리며
질투와 욕망 안에서 피를 부르는 역사는 계속 됩니다.
● 조선 제15대 왕, 광해군 : ‘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암살 의혹에 극도로 민감해진 광해군(이병헌)이 자신의 대타를 찾아 나서고,
그리하여 잠시 왕의 자리에 앉은 만담꾼 덕에 ‘우리 왕이 달라졌어요’가 탄생합니다.
● 조선 제22대 왕, 정조 : ‘영원한 제국, 1995’
=1800년, 절대주의적 왕권정치를 추구하는 정조(안성기)와
귀족주의적 신권정치를 주장하는 노론의 이념대립 속에서 벌어진 세 명의 죽음.
그 속에서 권력의 진짜 모습이 나타납니다.
● 조선 제26대 왕, 고종 : ‘가비, 2012’
=1896년, 고종(박희순)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해 대한제국을 준비하던 혼돈의 시기,
커피를 받아들이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로 인해 은밀한 고종암살작전이 시작됩니다.
여우 같은 배우 이병헌의 선택이라면!
‘지아이조’ ‘악마를 보았다’ ‘놈놈놈’ 등 작품 고르는 안목은 인정!
조선의 역대 왕의 면모, 어떤가요?
안성기부터 정진영, 박희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우들이 거쳐 갔는데요.
‘광해’를 통해 첫 사극에 도전하는 이병헌에 댄한 기대감도 높습니다.
일단 작품을 고르는 그의 안목에 대한 믿음이 있고(좋은 의미로 참 여우같은 배우라고 할까요?),
그간 쌓아온 그윽함과 강렬함이 왕의 포스와 제법 잘 어울리기도 하지요.
공포와 두려움으로 판단력을 잃고 폭군이 되는 광해,
저잣거리의 천민으로 타고난 넉살과 소탈함을 지닌 하선.
이 극과 극을 오가는 캐릭터를 1인2역으로 소화하는 모습도 색다를 것 같은데요.
이병헌 정도의 배우라면 당연히 잘 소화했으리라 생각해봅니다
1인2역, 하반기 충무로 스타일에 주목
1인2역에 빠진 충무로, 누가 누가 완벽 빙의일까요?
이병헌에 중압감을 팍팍 주는 건 때마침 1인2역 영화가 연달아 개봉했기 때문이지요.
왕 제위 전 세종의 모습을 그린 ‘나는 왕이로소이다’는
조선판 ‘왕자와 거지’ 스토리로 ‘광해’와 비슷한 설정이 많지요.
여기서는 주지훈이 왕과 노비 1인2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 강풀 원작 영화 ‘이웃사람’에서는 아역배우 김새론이 연쇄살인범에 살해당한 소녀의
원혼과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또 다른 소녀를 1인2역으로 소화해냅니다.
한꺼번에 쏟아진 1인2역 영화.
아무래도 비교가 많이 될 것 같은데요.
연륜으로 보나 인지도로 보나 이병헌이 밀릴 수는 없지 않겠어요?
류승룡, 한효주도 여기 있어요
촬영장 뒤 배우들의 모습, 더욱 빛나네요.
이병헌 외에도 쟁쟁한 배우들이 함께하며 ‘광해’의 기대감을 높여줍니다.
최근 흥행 배우로까지 올라선 류승룡이 왕과 호흡을 맞추는 킹메이커 ‘허균’ 역을 맡았고,
두 명의 왕이 사랑한 여자 ‘중전’에는 분위기가 썩 잘 어울리는 한효주가 나섰습니다.
반전 캐스팅은 ‘도가니’에서 악랄한 교장으로 악역의 진수를 선보였던 배우 장광.
그는 하선의 정체를 알면서도 진심으로 그를 돕는 따뜻한 맘씨의 ‘조내관’으로 변신했다고 합니다.
‘마파도’ ‘사랑을 놓치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의 첫 사극.
그간의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유머와 인간미를 ‘광해’를 통해
얼마나 촘촘히 버무렸는지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스크린이불러온 광해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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