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여정이 또 벗었다!"
영화 <후궁 : 제왕의 첩>이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홍보문구다.
꽤나 많은 말이 오고갔다. 더러는 조여정이라는 여배우의 미래 커리어까지 들먹이며 젊은 여배우의 연속적인 노출들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자연히 영화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영화의 공식 포스터에까지 '광기의 정사'라는 문구가 들어가며 이 영화는 본격적으로 '야한' 영화일것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다른 포스터에 등장하는 '제왕이 가질 수 없었던 첩'이라는 글이라든지, 예고편에 등장하는 '사랑에 미치다, 복수에 미치다, 정사에 미치다'라는 문구라든지, 포털 사이트에 플래시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미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궁' 등의 문구는 이 본격적으로 야한 영화를 영화관에 걸기 위한 적당한 변명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다.
헌데,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였다.
무비스트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관람하게 된 <후궁 : 제왕의 첩>은 미쳐버린 궁이라는 별것 아닌 설정 속에서 주연 배우들이 질펀한 정사를 선보이는 영화가 아니라, 정사신을 영화속의 여러 장치 중 하나로 사용하여 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영화였다.
이 영화, 한낯 야한 영상 덩어리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는 한 편의 영화였다.
미치자, 미치자, 죽어서밖에 궁 밖으로 못 나간다면, 이 안에서 미쳐버리자!
위에 쓴대로, 영화는 사랑에, 복수에 미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다. '정사에 미치다'라는 문구도 써 있긴 하지만, 이는 자극적인 마케팅을 위한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다. 정사에 미쳤다기보다 세 번째 키워드는 '권력에 미치다'가 어울리지 않았을까. 좁디 좁은 궁. 한 번 궁안에 발을 들이면 밖으로 나가는 길은 죽어서 나가거나 몰래 나갔다가 후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는것 둘 중 하나다. 영화는 이 좁은 공간에서 갖가지 이유로 미쳐가는, 혹은 이미 미쳐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다룬다. 이들의 모습은 조여정, 김동욱, 김민준, 박지영 등의 눈빛 연기를 통해 온전히 관객에게 전해진다. 주, 조연을 망라해 전 출연진의 무게감 있는 연기는 실로 영화의 큰 플러스 요인이다.
영화야.. 관객이랑 같이 걷자.. 끌고가지 말고ㅠ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킨다면, 불행하게도 이를 다시 분산시키는 역할은 영화 자체가 맡는다. 초반부 인물소개부터 관객은 영화를 쫓아가야만 한다.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진행과 관객이 알아서 쫓아와야 하는 진행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안타깝지만 <후궁 : 제왕의 첩>의 상당 부분은 관객이 생각하며 영화와 함께 나아간다기보다 영화를 쫓아가야만 하는 형국이다. 적당한 힌트를 준다거나 명쾌한 설명을 덧붙이기 보다는, 그저 묵묵히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내용을 다 아는 사람이 철저한 계산 없이 '이 정도면 알아듣겠지'하는 식으로 흩뿌린 퍼즐들을 힙겹게 맞춰가야 하는 것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이 조그마한 배려의 부재로 인해 영화의 긴장도가 일관되게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꽤나 빈번히 떠오르는 '어? 왜?'라는 질문들이 '오호?!'라는 명쾌한 답이 아니라 '이런 건가보지 뭐'라는 추측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후궁 : 제왕의 첩>은 영화다. 진지한 영화.
영화를 힘겹게 쫓아가야 하는 단점이 있긴하나, <후궁 : 제왕의 첩>은 괜찮은 영화다. 야동보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면 분명히 욕을 바가지고 하겠지만, 이 영화는 진지한 영화이며,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인간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본다면 이 영화에 욕을 퍼붓는 일은 없을것이라 생각한다. 무비스트 영화 리뷰에 '중박'이 없어진건 참 아쉽다. 이 영화는 '쪽박'이라 하기엔 괜찮은 영화고 '대박'이라 하기엔 조금은 아쉬운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영화에 '쪽박'을 주고 싶지는 않으므로 난 '대박'을 택하리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야한거 기대하고 이 영활 보러가시는 분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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