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다... ★★★★
한 남자, 조셉(피터 뮬란)이 욕을 하며 등장한다. 그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해 자신을 기다리던 개를 걷어차고야 만다. 그리고는 잠시 후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는 개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뚱뚱해서 티라노사우루스(원제 Tyrannosaur)라 불리던 아내가 죽은 후 분노로 버티며 살아가던 조셉은 우연히 찾아들어간 기독교 자선 상점에서 한나(올리비아 콜맨)를 알게 되고, 그녀에게 위안을 얻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금은 전형적이다. 양익준의 <똥파로>도 연상된다. 거칠고 폭력적이고 실패를 거듭하는 구제불능의 한 사내가 여인을 만나 개과천선하는 이야기. 그러나 <디어 한나>는 한나의 가정사가 드러나면서 완전히 다른 전개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 부유한 동네에 사는, 아무 것도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한나는 사실 끔찍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오히려 한나가 조셉에세 기대는, 아니 반대로 조셉이 한나에게 어깨를 빌려주는 것으로 중심을 이동한다.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어깨,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머리 하나의 여유만 있어도 세상은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관객에게 충격을 줄 수 있거나 좀 더 드라마틱한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핵심적인 장면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폭력이 행사되는 장면은 전혀 또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 전조나 후과만을 다룬다. 그럼에도 너무 소름끼치는 체험의 시간을 영화는 제공한다. 또한 후반부에서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장면도 제거함으로서 자칫 감정이 과잉될 수 있는 여지를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이럼으로써 애틋함은 더 배가되고, 행복감은 더 왕성해진다. 영화는 그러한 장면이 삭제된 공백을 배우들의 눈빛, 주름살로 대신한다.
<디어 한나>의 감독 패디 컨시딘. 우리에겐 <본 얼티메이텀> 등에 출연한 배우로 알려진 그는 자신의 단편을 확장해 <디어 한나>라는 첫 장편을 선보였으며, 켄 로치, 마이크 리를 잇는 영국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영화의 계승자자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마이크 리 감독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고, 장면 구도나 하층민 마을의 분위기에선 <디스 이즈 잉글랜드>의 느낌이 묻어나기도 한다. 특히 그가 그리는 영국 노동계급의 비참한 현실, 그러면서도 그곳에서 위안을 얻는 이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한나는 그녀가 믿는(믿는다고 믿는) 기독교(종교)나 그녀가 속한 유한계급, 부유한 계층으로부터 아무런 위안을 얻지 못한다. 심지어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찾아가서 대화 한마디 나눌, 그녀의 어깨가 기댈 수 있는 작은 여유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녀는 조셉과 그의 친구들, 바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소외된 영국 노동계급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그녀가 영화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친근한 미소를 짓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조셉 친구의 장례식 뒷풀이 장소, 영국 하층민들이 우글대는 곳이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디어 한나>는 배우들의 영화다. 깊은 주름 하나만으로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대변해주는 피터 뮬란이나 코미디 연기를 주로 한다는 올리비아 콜맨, 거기에 조연배우들까지도 정말 영화가 아니라 현실 속 그 인물인 것 같은 기시감을 선서해준다. 누구 말마따나 영국 대중문화의 절대 우위는 락 밴드와 배우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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