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든 느낌을 캐릭터별로 나눠본다면...
★몰입이 안되는 준식 ☆그나마 깊이가 있는 타츠오☺전쟁을 표현하는 종대☻연출이 적은 쉬라이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몰입하기 힘든 캐릭터, 공감하기 어려운 스토리, 재미없는 연출...+<노르망디의 코리안>
-영화 초반<경성>
★준식(장동건)은 제 2의 손기정을 꿈꾸는 마라토너입니다. 마라토너는 호흡과 보폭을 조절하며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특징인 직업입니다. 준식은 인력거 끄는 일을 하면서도 꾸준한 단련으로 몸(과 마음, 정신)을 만듭니다. 하지만 영화상에서의 준식에게 몰입이 가능한 부분은 손기정의 도움을 받아 마라톤에 출전하는 부분까지인 것 같습니다.
☆타츠오(오다기리 조)는 어릴때부터의 준식의 마라톤 라이벌로 존재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준식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승부조작을 해서 이겼을때 기분이 개운치 않음을 온몸으로 드러낼때는 그나마 의식적으로 깬 캐릭터라는 것을 은근슬쩍 보여주기도.
☺아직까지는 종대(김인권)는 그런 준식의 위치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만 존재합니다.
-<노몬한>
★전쟁에 투입되고 나서 준식은 그냥 ‘착하기만 한’ 캐릭터로 바뀝니다. 자신을 죽일뻔 했던 중국군 저격수 쉬라이(판빙빙)에게 연민을 드러내는가 하면, 다른 100여명 가량 되는 조선 징집병들을 위해 탈출을 포기하고 적의 기습을 알리려고 합니다. 오지랍도 넓군요; 타츠오에게 “이건 개죽음이야!”소리치는 장면 외에는 준식의 캐릭터의 활용은 그저 멍하니 있는 것 같습니다.
☆타츠오는 그나마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자기를 투영한듯 황제에게 절대충성을 다하는 군인으로 등장합니다. 뭐 실제로는 더 약하지만 이것을 감추기 위해 더 극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쉬라이는 그저 잠깐의 준식의 연민에 휩쓸린 캐릭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싶습니다. 차라리 이전에 당했던 것 연출이라도 했으면 나았을지도. 갑자기 준식을 위해 탈출을 마다하는 것도 어색하게 보입니다.
-<소련 수용소>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 준식은 타츠오에게 “너가 할복 지시를 내렸던 대좌처럼 너도 죽지 그래.”라고 말합니다. 오, 뭔가 강직하고 빠릿빠릿하며, 비야냥거리는 맛이 생겼습니다. 몰입이 될락말락합니다. 하지만 이후에 벌어진 격투에서 뭔가 끝을 내지 못합니다. 답답합니다; 이후에는 종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돌아가면 조선에서 인력거꾼이나 하겠냐, 난 여기가 좋다./내가 여기선 황제다!”(소련 수용소에서 완장을 차고 자그마한 권력을 누리는 종대의 말 중에서.) 이런 것에 반해 준식은 혼자 착한 (정의감에 넘치는) 척하는 것 같습니다. 종대 역할도 모르는 건 아닌것 같은데. 같이 끌려온 춘복(김희원)을 처형하는데 아무 힘도 못쓰는 종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준식은 독일의 침략이 가속화되자 소련 군복을 입고 전투에 나섭니다. 그것도 스스로 입어서 입은 것이 아닌, 종대가 입으라고 해서 입는 것입니다. 아니, 끝내 입지 않고 버티던 일본 군인이 죽고 나서야 입기 시작합니다.
☆이는 타츠오 역시 마찬가지. 황군의 신념을 부르짖던 그는 자기의 신념을 지지하는 인물들이 죽자 바로 그 신념을 버려버립니다. 이는 노다의 비야냥거림에도 스스로 아무 말 못하는 상황을 야기시킵니다.
(삶을 유지하는 것이 신념보다, 본능의 힘이 큰 종대의 몸부림은 타츠오와 확연히 대비되어 나타납니다. 주변 공기가 심상치않게 돌아가고, 소련군복이 운반되어오자, 바로 군복을 챙기라고 지시하는 종대의 모습은 전쟁에 동화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군과 전투>
★독일군과 대치한 전장에 투입되고 돌격하는 군인들은 모자란 무기와 지원에 하나둘씩 쓰러집니다. 간신히 몸을 피한 준식은 튀어나가는 종대를 붙들고 외칩니다. “이건 개죽음이야!” 준식의 이 대사는 자뭇 숭고하고 인간성이 넘치며 이성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 힘도 없고, 제대로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말로도 들립니다. 준식의 캐릭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대사.
☺하지만 종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신경 쓸 수 없습니다. “너에게는 개죽음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아냐!” 결국 종대는 빗발치는 총탄에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인간성을 지킨다는 게 아닐까요... 자신을 보는 준식을 죽어가면서까지 위합니다. (종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의 종점을 찾는 것 같습니다. 개죽음이지만 개죽음이 아닌 것.-죽음과 삶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정착지를 찾는다는 걸까요...)
☆타츠오 역시 마찬가지. 신념없이 그저 본능에만 몸을 맡기고 총을 차지하려고 노다와 싸움을 벌입니다. 노다도 신념없고 살고만 싶은 인간인 타츠오를 비웃으며 살고자 합니다. 결국 살아난 건 타츠오지만.
결국 살아난 타츠오와 준식. 그저 살기 위해 독일군복을 입고 산맥을 넘어갑니다. 이러면서 갑자기 친구가 된 두 사람;;;(?)
-<노르망디에서>
세월이 흘러, 헤어졌다가 다시 타츠오와 만난 준식은 고향을 그리며 기회를 노립니다. 하지만 연합군의 상륙작전이 시작되고 계획은 어그러지게 됩니다. 패색이 짙은 노르망디 전투에서 준식과 타츠오는 어렸을때처럼 질주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준식은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의 위기를 맞자, 타츠오에게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쓰라고, 조선인임을 밝히라고 말합니다.(착한 남자 종결자) "여기서 고향까지 얼마나 걸릴까, 우린 너무 멀리왔어." 이런 대사 말고 좀 의지적인 모습이라도 있길 바랬는데.
☆전쟁이 끝나고 김준식의 이름으로 살게 된 타츠오가 올림픽에 출전해서 달립니다. 이후 준식과의 만남과 대결을 회상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근데 정말 이게 끝인가;;;
영화를 되짚어보며...
-어디에서 두 사람의 우정을 느낄 수 있나요. 어디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이 하나되는 것을 느낄 수 있나요. 어릴 때 두 사람의 달리기? 극 전체에서 두 사람의 우정과 교류는 없는거나 마찬가지인데. 정신적 교감도 눈에 확 띄게 드러나는게 없고. 친해졌다가 서먹해졌다가 다시 친해지는.
-태극기 휘날리며 만큼의 연기의 아우라도 없고, 광기도 없고, 그렇다고 가슴절절한 사연도 남는게 없고... 끝이 너무 허무합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래도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형과 그 마음을 몰라준 어린 동생'의 이야기로 함축될수 있는데 이 마이웨이는 '신념'이라는 애매모호한 주제만 보입니다; 그것도 '준식'이 아닌 '타츠오'에게 국한된.
-준식은 왜 그렇게 남에게 이끌려다니기만 하나요. 마라톤선수 맞나요. 강인한 몸이나 정신이나 다 어디다 두고 온거죠. 거기다 오지랖까지 넓고. 인력거 끄는 가장 역할 하는 게 신기합니다.(연기도 그렇고.) 차라리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태만큼이나 강인한 아우라가 있었다면 말은 안하겠습니다; 아버지 역할을 맡은 천호진씨나 동생 은수 역을 맡은 이연희씨가 더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오다기리 조가 연기한 타츠오가 사지로 몰아넣는 순간을 회상할 때 왜 교차편집을 쓰나요. 차라리 음성만 교차시키지. 아니면 소련 군복을 입은 타츠오를 넣던지. 그나마 다면적인 모습을 보인 캐릭터니까 더 아까워보임. 그래도 신념과 현실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괜찮게 보이기도.
-김인권이 맡은 종대의 캐릭터가 가장 확실한 캐릭터. 극의 진정한 주인공은 종대. 전쟁의 비참함과 비인간성을 알리면서 몰입이 가장 잘 되는 캐릭터. 가장 현실적이며 다면적으로 접근과 몰입을 가능케 하였던 인물. 김인권의 독기어린 연기또한 그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전투 장면이나 카메라웍같은 경우는 딱히 흠잡을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박진감있는 카메라 동선은 정말 괜찮아보이기도. 하지만 음악같은 경우 너무 진중하게 흐르는 감이 없지않아 있는 것 같았고...
간단평에도 적었지만 이번 강제규 감독님의 영화는
<화면은 멋있었지만 이야기는 별로 재미가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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