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더 끔찍한.. ★★★☆
접촉에 의해 전파되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위기를 그린 영화 <컨테이젼>. 그렇다면 실제로 인류의 10% 이상이 사망하는 문명의 파탄이나 또는 아예 인류가 지구에서 멸종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이며, 무엇이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계에선 행성충돌과 바이러스가 인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지구 역사를 바꿔 놓은 행성충돌은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충돌로 지구의 축은 23.5도 기울었으며, 아이러니하게 그로 인해 지구엔 생명이 탄생할 조건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두 번째 충돌은 당시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의 멸종 원인이 되었으며, 인류는 무난히 지구의 지배자(?)로 올라설 수 있었다는 게 많은 지지를 얻고 있는 가설이다. 그러므로 앞선 충돌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는 세 번째 충돌이 발생한다면, 인류는 물론이거니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사라질 것이다. 두 번 일어난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떨까? 지금까지 발견된 바이러스보다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더 많으며, 게다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변종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어떤 슈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실제 1918년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이후 2년 동안 2500만에서 5000만에 이르는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가까이는 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신종 플루 등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인류를 공포에 떨게 했었다. 어떤 조건 하에서 바이러스가 인류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주게 될까? 첫째, 당연하게도 치사율이 높아야 한다. 둘째, 특정 조건 하에서 변이가 쉽게 발생해야 한다. 셋째, 공기로 전염이 가능해야 한다. 넷째, 잠복기가 길어야 한다. 영화 <컨테이젼>에서의 바이러스는 이 중 세 가지 조건을 구비했지만, 잠복기가 짧아 발생지역과 감염된 사람에 대한 즉각 조치가 가능해 전파를 어느 정도 억제하고 차단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바이러스가 잠복기가 길었다면 쉽게 막아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어떠한 바이러스도 자신이 살기 위해 숙주를 100% 죽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쨌거나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멸망에 이를 가능성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영화는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둘째 날부터 시작한다. 둘째 날부터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떻게 바이러스가 감염되기 시작한 것인지, 그 첫째 날을 찾아나가는 일종의 미스테리적 요소를 영화가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홍콩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감염은 비행기를 탄 승객에 의해 전 세계 주요 도시로 급속하게 전파된다. 영화는 바로 이 감염의 과정과 이에 대한 공식적 기구들에서의 대처 과정, 바이러스 창궐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이러스의 희생자들, 감염의 원인과 대책을 세우려는 사람들,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 온갖 음모론과 끔찍한 상황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자, 만약 바이러스에 의해 인류가 위협받는 영화라고 한다면 뭐가 떠오르는가? 감염을 의미하는 <컨테이젼>을 영화 제목에 그대로 사용한 <컨테이젼>처럼 바이러스의 창궐을 의미하는 단어를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한 <아웃브레이크> 또는 <12 몽키스>와 같은 바이러스 영화들은 대체로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관계없이, 바이러스 발생 또는 전파 과정에 누군가의 음모가 있거나 영웅의 등장으로 위기가 해소되는 과정을 겪는다. <컨테이젼>이 기존에 등장했던 바이러스 영화들과 구분되는 가장 명확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네스 펠트로우를 등장한지 10분 만에 죽여 버리고는 머리를 열어젖히고, 감염 원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케이트 윈슬렛 역시 비닐백에 넣고 묻어 버린다. 마리온 코티아르? 백신을 원하는 가난한 자들의 인질이 되어 한 동안 영화에서 사라진다. <컨테이젼>에 출연한 그 화려한 배우들의 면면은 사실 아무도 모르는 무명 배우들이 맡았다고 해도 무관한 그런 역할들이다.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우, 케이트 윈슬렛, 주드 로, 마리온 코티아르, 로렌스 피시번 같은 배우들이 무더기로 출연하고 있음에도 <컨테이젼>엔 일반적 의미의 극 영화적 전개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감염됐지만 병과 싸워 이기는 캐릭터도 없고, 천재적인 직감으로 백신을 만들어 인류를 구해낸 영웅도 없다. 감염의 원인은 미국을 공격하려는 테러 세력도 아니고, 전파와 백신 개발 과정에 어떠한 음모도 개입하지 않는다. 물론, 스티븐 소더버그의 이전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컨테이젼> 역시 화려한 카메라 워킹을 자랑하기는 한다.
극 영화적 재미를 거세한 채 거의 다큐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이건 그 공포가 미지의 공포가 아니라 현실의 공포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체험이다. 본능적으로 자주 얼굴을 만지는 손,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의례적으로 나누는 악수, 누군가는 만졌을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것 등의 다양한 행동들로 인해 바이러스가 감염되고, 이것이 결국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구경거리다. 그래서인지 극장을 나온 사람들이 제일 먼저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행동일지 모른다.
이보다 더 끔찍한 건, 현실적인 공포가 인류 앞에 드리워졌을 때, 과연 인류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보여준다는 점에 있다. 위기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을 때 나름 질서를 유지하던 사회는 위기가 현실화되자마자 마치 얇은 유리그릇처럼 쉽게 깨져 버리고, 무자비한 야만이 판치는 원시시대로 급속도로 회귀해 버린다. 수천 년을 쌓아왔던 문명이 과거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달이다. 어쩌면 인류는 행성충돌, 바이러스가 아닌 인류 스스로의 자멸 때문에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이식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이러스 발생의 원인 자체가 바로 인간의 파괴와 개발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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