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타임 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후보에는 최근에 세계적으로 가슴뭉클한 뉴스를 전해준 33인의 칠레광부들과 거대중국의 힘을 보여주듯 후진타오 주석도 올라있고, 개인 휴대통신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스티브 잡스 또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인터넷과 사람의 관계를 여태껏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 SNS (Social Networt Service) 의 거대세력, "facebook" 의 설립자인 26살의 "마크 주커버그" 다. 그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후보일 뿐 아니라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자' 400인 중 최연소이자 65위이며 재산규모는 68세인 이건희 회장보다 4~5배가 많은 8조원, 그리고 그가 30% 지분을 소유한 facebook 의 기업가치는 25조가 넘는다.
그가 하버드에서 2004년, 불과 스무살의 나이에 탄생시킨 facebook 은 이제 전세계 인구의 1/16인 5억명을 친구로 만들었으며 facebook 프로필에서 그가 밝힌 비전처럼 단순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개념을 넘어서서 '개방과 혁명, 정보흐름, 그리고 미니멀리즘'의 중심에 서있다. CEO 이자 창업주인 주커버그 자신도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만큼 거대해져버린 facebook은 자신들의 덩치를 무기 삼아 다른 사이트들로 하여금 "facebook connect" (타 사이트에서 facebook 을 연동하는 서비스) 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며 얼마전부터는 "좋아요(LIKE IT)" 라는 소셜플러그인(Social Plugin) 버튼을 만들어 수억명의 회원들이 다른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면서 좋아한다고 (like it) 클릭한 모든 것들을 정보화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 세상 전체를 관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사회화 (Socialize)" 에 앞장 선 facebook이 이미 Google 을 무릅꿇리고 인터넷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세븐, 파이트클럽, 패닉룸, 벤자민버튼 을 만든 관람 필수 감독 중 한 명인 데이빗핀처 감독의 신작 영화 "소셜 네트워크 (Social Network)" 는 인터넷 세상의 새로운 지배세력인 Facebook이 어떻게 마크 주커버그 의 손에서 탄생되었는지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토막내어 보여준다. [소셜네트워크]는 실존 인물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전기영화'로 분류 되어야 하지만 그 실존 인물이 이제 20대 중반을 갓 넘은, 그것도 그 인물의 '삶'이 아닌 '사건들'을 중심으로 풀어간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것이 알고싶다" 로 분류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오프닝 크레딧을 멋있게 보여주는 걸로 유명한 데이빗 핀처 감독은 영화 역사상 가장 멋진 오프닝 크레딧 중 하나로 평가받는 패닉룸의 그것에는 못미치지만 인터넷 관련 영화에 걸맞게 이번 영화에서도 인터넷 검색창과 동일한 '드롭다운리스트' 방식으로 영화를 여는 재치를 선보인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마크 주커버그"라는 인물,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의 '말'에 질리게 된다. 속사포 같은 질문과 대답, 뱀 같은 언변과 바위 같은 궤변으로 이어지는 그를 참다 못해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는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보복을 당하게 된다. 여자친구에게 차인 '개인적'인 수치심에 대한 앙갚음으로 주커버그는 여친의 가슴사이즈가 작다는 내용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게 되고 그 글은 삽시간에 퍼져나가게 된다.
그 뿐만 아니라 하버드대의 모든 기숙사 서버를 해킹하여 인명부(Facebook) 를 모은 다음, 여학생들의 얼굴 모두를 웹 상에서 1:1 대결시켜 섹시한 여학생의 전체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 Face-mash 를 몇시간 만에 제작하여 대학 전체를 몸살나게 만든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괴팍하지만 천재적인 그의 능력을 높이 산 윈클보스 형제는 여자들을 꼬시기 위해 하버드대생들만 사용할 수 있는 폐쇄적인 형태의 인맥관리 사이트 제작을 부탁하게 되는데 주커버그는 그들을 따돌리고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THE FACEBOOK" 이라는 소셜네트웍 서비스(SNS)를 오픈하게 된다. (이후에 주커버그의 우상이자 최초의 음악다운로드 서비스인 '냅스터의 창시자 션파커'가 보다 '쿨'한 느낌을 위해 "THE" 를 빼라고 하면서 [facebook] 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지금의 facebook 을 존재하게 만든 갖가지 숨겨진 스토리들로 가득하다. 주커버그는 결국 지적재산권 침해로 윈클보스 형제에게 고소당했을 뿐 아니라 공동창업자 에두아르도 세버린 으로 부터도 지분 반환 청구소송을 당하게 된다. 동시에 일어난 두개의 고소 사건을 영화의 주 내용으로 구성한 다음, facebook 이라는 엄청난 '물건'을 탄생시킨 장본인들의 에피소드를 회상 형식으로 사이사이에 배치하여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는 그것은 바로 이렇게 된 것" 이라고 대답해 나간다. 하지만 두시간을 쉴 틈 없이 몰아부치는 깨알같은 대사들과 에피소드들은 제 3자의 냉정하고 공정한 시선속에 철저히 가두어짐으로서, 긴박하지만 좀처럼 달아오르지는 않는 특이한 모양새를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란하게 교차 편집되는 영상의 오선지 위로 음표들 처럼 오르내리며 화음을 만드는 대사들 의 눈부신 향연은 이 영화를 재관람 하고 싶은 욕구를 일으키게 만든다. 주커버그가 마치 글을 써내려 가듯이 코딩하는 모습이나 펄스크립트(pearl )를 수정해가며 동시다발적으로 서버들을 스피디하게 해킹해 가는 모습에 필자를 포함하여 IT 업계에 몸담은 전세계 모든 이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facebook 의 진짜 아이디어는 소송 원고인 윈클보스 형제의 머리에서 나왔고 주커버그는 단지 그것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슬쩍 폄하하는것 같지만, 주커버그라는 인물이 아이디어를 실행 가능한 것으로 구현하는데 있어서는 탁월했다는 점 또한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 [소셜네트워크]은 그들의 열정만큼은 충분히 뜨거운 그릇에 담아 식지 않게 하면서도, 결코 그 누구의 편에 치우치지 않는 냉정함을 유지함으로서 관객들로 하여금 보다 주체적으로 사건들을 받아 들일 수 있게 한다. facebook 이 추구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영화 [소셜네트워크]는 관객 지향적이되 최대한 개방되고 미니멀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인터넷의 사회화(Socialize)" 가 화두인 이 시점에서, 그 첨병의 역할을 하고 있는 facebook 의 창업자 자신들은 어떤 방식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셜네트워크]는 올해 개봉한 그 어떤 영화보다도 hot 하다.
"5억명의 친구를 얻기 위해서는 소수의 친구를 잃을 수 밖에 없다"는 광고 문구처럼 주커버그는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해 사랑과 우정 모두 버리고 배신한다. 5억명의 온라인 친구와 소수의 오프라인 친구들 중에 어떤 쪽이 더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영화는 말을 아낀다. 다만 아직도 헤어진 여자친구가 자신의 facebook 친구요청을 수락했는지 여부를 계속 업데이트 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의 거대한 인터넷 제국 안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소중한 그 무엇'을 떠올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facebook 의 공동창업자이자 하버드 기숙사 동료들인 크리스 휴즈, 더스틴 모스코비츠, 에두아르도 세버린 세명 모두, 인터넷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문학, 역사, 경제학 전공자들이었고 주커버그 역시 심리학 을 함께 전공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facebook 이나 아이폰 처럼 시대의 흐름을 바꿀 만한 거대한 성공은 인간과 인문을 충분히 이해하고 사람들의 심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지적 토양이 전제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싸이월드의 해외진출 실패원인에 대한 분석이 분분했고 아이러브스쿨의 창업자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는 최근 기사를 보면 최고의 IT강국 이었던 우리나라가 2000년대 이후에 이렇다 할 무엇인가를 내놓지 못하고 끌려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력이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는 금새 지나가버렸다. 어린 세대들의 독서량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혁신과 금기가 충돌하고, 기업이나 대학 할 것 없이 지적 다양성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세태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facebook 이 한국에서 탄생할 가능성은 요원하다.
Filmania cropper, 원성백 ====================================================================================================
ps)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의 업적에 논란을 제기한 이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facebook 의 직원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자신이 하버드재학시 즐겨입던 옷이나 face-mash를 만들던 기숙사 풍경들의 사실감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자신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facebook 을 만든것은 아니며 영화에서 그리는 이성에 대한 자신의 태도는 사실과 많이 달라서 상당히 불쾌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면에 윈클보스 형제들은 영화에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영화 개봉 후 주커버그 개인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지자 오프라윈프리 쇼에 출연해서 1억달러를 공교육을 위해 기부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그를 향한 삐닥한 시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70억달러(약 8조원) 의 재산을 가진 그는 회사 근처 (실리콘 밸리가 있는 팔로알토 지역)에 중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월세로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린 바와 같이 그는 진심으로 facebook 을 이용하여 돈을 벌 생각은 없어보인다. 처음부터 facebook 에 광고를 싣는 것을 거부한 것부터 2005년 이후 수차례의 거액(10억달러) 인수 제안을 거절해 온것 이나 엄청난 부를 안겨줄 주식시장 상장에도 아직 시큰둥 한 걸 보면 그가 늘 얘기해왔듯 facebook 은 주커버그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큰 장난감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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