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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개입으로 답은 아름답게 완성된다... ★★★☆
답이 아름답지 않다는 이유로 이미 누군가 증명한 문제를 다시 풀었던 수학자 이시가미(츠츠미 신이치)에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아마도 더 없이 완벽한 수학 공식일 것이다. 그 공식에 인간이란 존재가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역시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도 과학으로 증명하기 곤란한 문제들은 관심 밖이다. 그러니깐 사랑, 우정, 헌신 같은 것들 말이다.
원작을 읽지는 못했다. 아무튼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초반부에 수학교사 이시가미의 옆집에 살고 있는 하나오카 야스코(마츠유키 야스코), 하나오카 미사토(카나자와 미호) 모녀의 살해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 영화는 모녀의 살해 장면과 이시가미의 개입을 여과 없이 보여줌으로서 영화적 재미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다.
이러한 추리 영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관객과의 두뇌 싸움에 있어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었느냐는 것이다. 영화화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결론에 보면 포와로 형사나 관객이나 거의 똑같은 정보를 제공 받았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런 산개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그 자리에 있는 범인의 정체를 밝힐 때 우리는 감탄과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용의자 X의 헌신>의 미션은 범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알리바이를 구축했으며, 어떻게 알리바이의 허점을 찾아내는 가에 있다.(문제를 내는 것과 푸는 것, 어느 게 쉬울까?) 이와 관련한 가장 핵심 정보는 영화 후반부가 되어서야 관객에게 제공된다. 그러니깐 이시가미가 왜 이틀 연속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며, 경찰은 왜 하나오카 모녀의 알리바이 날짜를 다르게 알고 있는가. (어떻게 살해가 벌어진 시간에 실제로 모녀가 극장에 나타날 수 있는가) 이건 이시가미의 말대로 ‘기하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함수문제’인 것과 동일하며, 유카와도 이 말에 힌트를 얻어 알리바이의 허점을 파악해 낸다.
소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영화는 원작소설을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며 (소설과 비교해 영화에선 사건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쿠사나기 형사의 활약이 축소되었으며, 조언자 역할에 머물던 유카와의 비중이 높아졌다고 한다) 원작을 읽지 않은 입장에서 보자면, 추리영화로서 옆길로 새지 않고 간결하고 깔끔하게 연출이 잘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마지막의 마음을 적시는 가슴 찡한 감동까지.
사실 관객 입장에서 이시가미가 하나오카 야스코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영화 제목부터 ‘헌신(獻身)’이지 않은가. 그러니깐 이 영화를 단순한 추리 영화가 아니라 멜로나 로맨스 영화로 바라볼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 영화 제목 속 X는 이시가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유카와의 말대로 과학적 증명이 곤란한 문제들, 연정이나 우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고, 그럴 때 이러한 X의 개입 - 좀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 으로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답은 좀 더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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