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으로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샤말란. 그러나 후속작은 이미 높아진 관객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반전으로 인생의 반전을 꿈꾼다.
" 너무 일렀던 마스터피스(Masterpiece)"
관객들에게 가장 큰 반전을 준 영화를 꼽는다면 어떤 영화가 꼽힐까? 답은 여러가지일 수 있지만 아마 <쏘우>와 <유주얼 서스팩트> 그리고 <식스센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3가지 영화 중 최고의 반전으로 기억되는 영화는 무엇일까를 내게 묻는다면 주저없이 <식스센스>를 꼽고 싶다. 다른 2편의 영화도 충격의 반전을 준 영화임엔 틀림없지만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갔던 스토리를 완전히 뒤엎는 충격의 반전으로 기억되는 <식스센스>는 단연 최고의 반전이다. 이 영화로 무명이던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일약 최고의 영화 감독으로 인정받고 그의 후속작은 전세계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이번엔 어떤 반전을 줄지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이미 평생을 두고 만들 인생 최고의 작품(Masterpiece)을 만든 감독에게 전작 이상의 반전을 주는 작품은 없었고 점점 관객들의 기대치를 맞추지 못한 작품들로 샤말란은 관객들의 뇌리에 '최고의 반전으로 성공했으나 반전에 집착해 실패를 거듭한 감독'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말았다. 거듭된 반전 영화의 실패 때문이었을까? 샤말란은 뜬금없이 <에어벤더>라는 환타지를 들고 관객들에게 다가왔으나 완성의 실망을 안기며 이제 샤말란의 시대는 끝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비평가와 관객들의 뇌리에서 그렇게 서서히 잊혀지려할 때 샤말란은 자신이 만든 최고 스토리 3편을 엄선하고 이를 역량있는 신예 감독과 함께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이름하여 '나이트 크로니클'. 자신의 인생의 반전을 꿈꾸는 영화 <데블>은 나이트 크로니클의 첫번째 이야기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베드로 전서 5:8"
악마가 삼킬자를 찾는다는 구절을 인용한 자막으로 앞으로 이번 영화가 벌어질 상황과 대략의 스토리에 대해 대략의 설명한다. 영화 시작과 함께 묵주를 든 누군가의 35층 높이에서 투신이나 그 빌딩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 승객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는 모두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두명의 여자와 세명의 남자. 그들은 서로가 누구인지 모른채 익숙하지만 폐쇄된 낯선 공간 속에 함께 한다. 긴장되지만 곧 조치가 될 것이란 생각과는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공포로 바뀌고 불이 꺼지는 순간마다 누군가가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상황이 발생하자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며 살려는 발버둥은 좁은 공간 속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채우지만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는 그 곳은 그야말로 지옥으로 변하게 된다.
게다가 그들을 도우려는 주변 사람들은 악마의 이야기에서처럼 방해하는 선량한 사람조차 용서하지 않는 악마로 인해 사고로 이어지고 만다. 완전히 고립된 채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밀실의 공간. 5명의 승객안에 인간으로 변한 악마는 과연 누구이고 그들은 어떤 이유로 그 엘리베이터 안에 모이게 된 것일까? 만약 함께 있는 그들이 왜 모이게 되었는지를 알면 누가 인간의 모습을 한 악마인지 알 수 있겠지만 <데블>은 그 퍼즐을 풀기위한 단서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조금씩 벌어지는 상황을 통해 관객들에게 결말이 밝혀지기 전 풀어보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던 <스피드>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금전적 보상을 이유로 그들을 가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연 악마는 누구일까 그리고 숨겨진 이유는 무엇이기에 악마가 이들을 심판하기 위해 한 곳에 모이게 한 채 하나씩 심판을 하는 것일까? 이 퍼즐을 풀기 위해선 처음부터 등장인물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우리 중에 악마가 있어..."
5명이 갇힌 공간. 처음에는 장난처럼 받아들인 이 상황은 첫번째 희생자가 생기면서 완전히 상황이 뒤바뀐다. 등에 난 상처에선 누군가를 의심하는 수준이었지만 한명이 죽은 뒤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생존 본능으로 서로를 의심할 뿐이다. <데블>의 최대 관람 포인트가 되는 이 상황은 관객들 스스로를 추리에 끌어들이며 나름의 추리를 통해 악마를 유추한다. 그리고 불이 꺼진 뒤 다시 불이 켜지면 과연 누구의 추리가 맞았는지에 대한 정답이 공개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애초에 자신의 등에 상처를 낸 뒤 용의선상에서 가장 먼저 제외된 젊은 여자 사라일까? 아니면 덩치큰 남자들을 어쩌지 못할 힘없는 노부인으로 제외될 제인일까? 근무한지 이틀째로 폐소공포증에 시달리는 경비원 벤일까? 사람 죽이는 일에 익숙한 해병대임을 숨긴 채 가장 마지막에 탄 토니일까? 아니면 세일즈맨 빈스? 과연 이들 중 누가 한명씩 죽음으로 끌고가는 악마인가를 알아내야 살수 있다.
하지만 악마를 알아 낼 수 있는 실마리는 거의 없다. 이들의 상황을 화면으로 본 경비원들에게 보인 악마의 홀로그램과 모두 죽음을 맞은 참혹한 장면만이 보일 뿐이며 스스로 겁에 질려 핸드폰의 작은 불빛으로 악마를 보려한 것도 허사일 뿐 어떤 것도 악마를 알 수 있게 도와주는 단서는 없다. 그렇게 하나씩 죽어가는 상황에서 결국 두명이 남게 되고 서로는 다른 이를 의심하며 살기위한 생존 본능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그리고 마지막 불이 꺼지고 결국 한명이 남은 상황에서 우리는 악마의 모습을 볼 수 있는지가 <데블>의 하이라이트이자 <식스센스>처럼 반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마치 <쏘우>를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은 지금까지 모든 것을 뒤엎는 짜릿한 반전이다. 이것만으로 <데블>은 분명 관람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반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들로 인해 다소 짧은 상영시간 (80분)임에도 아쉬움은 남지 않는다.
"우리는 들을 수 있지만 저들은 들을 수 없어"
공포 영화를 보면서 강심장을 자처해 왠만한 장면에선 놀라지 않았지만 <데블>에선 몇차례 정말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그걸 모르고 봐야 진짜 놀라게 되기에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영화 시작부터 곳곳에서 방심을 허락하지 않게 만든다. 피가 튀거나 잔혹한 영상이 많지 않음에도 <데블>이 김장감을 전혀 놓을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효과를 적절히 이용하기 때문이다.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는 것에 배경 음악도 큰 몫을 한다. 영화 처음부터 배경을 채우는 음악은 마치 <조스>의 음악처럼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무겁게 만들며 영상에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효과음도 다른 영화들과 달리 놀라움을 배가시키는 큰 역할을 한다. 그런 반면 엘리베이터 안과 경비실 사이에 소리는 일방향으로만 들리도록 묵음의 상황을 만든 점은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적절한 설정이기도 하다.
"네가 날 죽이기 전에 내가 널 먼저 죽이겠다"
짧지만 군더더기 없는 영화 전개로 지루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데블>은 정말 샤말란의 뛰어난 스토리의 힘과 존 에릭 도들의 연출을 감탄하게 만든 작품이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데블>은 분명 악마가 벌을 줄 인물들을 모아 한 곳에 가둔 뒤 벌을 내리는 사건이다. 그런 이유로 한명씩의 잘못된 행동을 들려주며 이들이 왜 이곳에 모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관관계를 숨가쁘게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이유로 모이게 된 연유가 모두와 관련된 이유가 아니라는 점은 아쉽고 너무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흐름을 놓쳐버리기가 쉽다는 점이다.
거기에 마지막 한명이 남은 뒤 악마의 결정은 악마의 마지막 대사와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차라리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처럼 마지막 남은 한 명이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을 벌하는 방법을 택해 구조 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아무도 남지 않은 상황으로 만들어졌다면 애초 악마의 바램대로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악마가 애초부터 반성을 하게 만들려고 거기로 데려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구조하는 장면의 구조 위치를 보면 왜 벽을 뚫고 가르고 깨부셨는지 잘 모르겠다.
"에필로그"
'초심으로 돌아간 샤말란'이란 광고 문구가 먼저 떠오른다. 재미와 긴장감 넘치는 상황이 주는 영상은 또 한번의 반전과 함께 샤말란의 초기 작품의 향수를 전한다. 반전을 고집스럽게 샤말란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비평에도 끝까지 반전을 밀어부치더니 결국 인생의 반전을 일궈낸 샤말란을 높이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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