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믿고 땅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들의 표정이 눈부시다.. ★★★★
도시민들이 농촌 또는 시골을 떠올릴 때 가지게 되는 판타지가 있다. 유유자적하는 일종의 안빈낙도의 삶. 물론 잠깐 놀러가는 게 아니라면, 많은 돈이 있어 이자만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면, 농촌에 산다는 것은 곧 엄청난 노동의 현장에서 매일매일 견뎌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대부분은 알고 있다. 대학생 때 짧은 농활 경험만으로도 솔직히 농촌에서 살고 싶다는 염원(?)을 품어 본 적은 없다.
권우정 감독이 세 명의 귀농 여성 - 소희주, 강선희, 변은주 씨를 만난 건 지난 2005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위한 홍콩 원정 투쟁에 영상단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대체 감독은 어떠한 질문과 대답을 듣기 위해 이 세 명의 여성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을 했을까. 또는 무엇이 담기리라 기대했던 것일까. 분명한 건 도시사람들이 염원하는 판타지로서의 삶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땅의 여자>는 딱히 특별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는다. 카메라가 담는 건 세 명의 귀농 여성의 평범한 일상에 가깝다. 농사를 짓고 싶었지만, 막상 시골에 와서는 농사가 아닌 동네 아이들 공부방을 꾸려 나가기도 하고, 농사일이 서툴러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타박을 받기도 한다. 고부간 갈등도 있고, 남편과의 갈등도 존재하며, 농사일과 농민운동가로서의 삶 사이에 고민도 커져만 간다.
이런 점에서 강선희 씨의 이야기는 상당히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냥 추측하건대 감독이 처음 홍콩에서 이들에게 흥미를 느낀(?) 건 아마 강선희 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면 강선희 씨와 시어머니가 같이 홍콩 시위대에 참가함으로서 당시 꽤나 주목받았기 때문이다.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고부간에 동지로서 같은 일, 그것도 농민운동을 해 나간다는 건 쉽게 목격하기 힘든 현실일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농민운동에 헌신했었던 남편이 몸이 아파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서 강선희 씨는 민주노동당 소속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 출마를 결정하게 되고, 아들의 깊어진 병세로 며느리의 출마에 부정적이었던 시어머니는 그럼에도 열심히 선거운동을 돕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편이자 아들은 세상을 떠나고, 그 누구보다 가까운 동지였던 강선희 씨와 시어머니의 관계는 서먹해진다.
잘은 모르지만, 사실 다큐멘터리는 미리 대본을 써놓고 진행할 수 있는 장르가 아니라 촬영 도중 대체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마무리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다. 어쩌면 처음 계획과 달리 딱히 담을 만한 이야기가 없어서 촬영을 포기하게 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다큐멘터리가 가장 빛나는 건 우연 또는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고스란히 담길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액션감독이었던 고 지중헌 감독의 사망이라는 돌발적 사건이 없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액션배우다>의 두께는 상당히 얇아졌으리라. <땅의 여자> 또한 마찬가지다. 안타깝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남편의 죽음과 서먹해진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극복하고 농사를 짓고 농민운동을 지속해 나가려는 강선희 씨의 모습은 진정 이 다큐멘터리가 목격한 가장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
※ <땅의 여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마냥 무겁고 어둡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땅을 사랑한 세 여자의 밝고 건강한 웃음과 유머는 이 영화의 색채를 유쾌하고 아름답게 기억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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