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경의 영화.. 강우성은 단지 거들뿐...★★★☆
때는 명나라. 800년 전 절세무공의 경지에 올랐던 라마의 유해를 얻은 자는 강호를 지배할 수 있다는 전설에 따라 라마의 유해를 차지하기 위해 고수들이 모여든다. 흑석파의 자객인 세우(양자경)는 한 재상의 집에서 찾아낸 유해 반쪽을 사찰에 맡긴 뒤, 속세를 떠나 얼굴과 이름(증정)까지 바꾸고는 비단장수로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한 삶을 살게 되고, 흑석파 우두머리인 왕륜(왕학기)은 거액의 보상금을 걸고 전국으로 자객들을 보내 증정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한편, 증정은 같은 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지앙(정우성)의 순수한 마음에 이끌려 결혼을 하게 되지만, 어느 날 은행에서 강도를 만난 증정이 남편을 구하기 위해 무술을 사용함으로서 증정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한다.
예전부터 오우삼 감독은 정체를 숨기고 뭔가를 도모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길 좋아했고, <검우강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검우강호>를 보면서 <페이스 오프>같은 영화가 떠오르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물론 <검우강호>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는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홍콩 무협 액션 영화이며, <검우강호>는 이에 대한 로망으로 가득 차 있다.
대게 강호를 배경으로 고수들이 대결하는 영화엔 숨겨진 비급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이걸 차지한 사람이 강호를 지배한다는 그 비급. 예전 영화에 등장하는 비급은 대부분 절대고수가 전수하는 무술의 비밀이었지만, <검우강호>에선 라마의 유해이며, 대체로 이들 비급은 영화에서 일종의 맥거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니깐 <쿵푸 팬더>와 마찬가지로 사실 그 비급엔 아무런 내용이 없거나 악인이 보기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채워진다. 그래서 영화엔 고수들이 비급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혈투는 보여주지만 비급을 차지한 이후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악인은 비급을 차지했더라도 결국 패망한다.
어쨌거나 <검우강호>엔 절대무공을 가져다 줄 비급이 존재하고, 이 비급을 차지하기 위한 고수들의 대결이 펼쳐진다. 죽음, 복수, 배신, 연마, 비급을 차지하기 위한 합종연횡, 사랑 등 <검우강호>는 오래 전 홍콩 무협 액션 영화에 등장했던 요소들을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 놓는다. 화려한 CG를 동원한 판타지 무협 블록버스터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조금 심심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오랜만에 강호를 배경으로 하는 무협 액션 영화에 흠뻑 빠져들 기회였다.
한편, <검우강호> 속 인물들이 악인을 없애고 강호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는 등의 의리나 대의명분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배신하는 모습은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린 마카로니 웨스턴 속 인물들과 닮아 있어 매우 흥미로운 데, 왜냐면 자칫 단선적일 수도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풍부화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흑석파 두목인 왕륜 캐릭터는 그 중 가장 풍부하다. 현실에선 자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까지 머리를 굽실거리는 비루한 삶이지만, 얼굴에 수염을 붙이고 복면을 하고 목소리를 굵게 하면 강호를 호령하는 영웅으로 변신하는 그의 캐릭터는 마치 현실 속 힘 없는 직장인들의 롤 모델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검우강호>는 단적으로 말해 양자경에 의한, 양자경을 위한, 양자경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양자경은 평범한 삶을 사는 여인네의 모습부터 자객으로서의 카리스마, 거기에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네의 모습 등 다채로운 빛을 발산함으로서 관객을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거기에 비해 정우성은 캐릭터의 단순함과 중국어 연기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역할에 비해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어떻게 보면 정우성은 단지 거들뿐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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