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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함마저도 원작에 대한 수치다 무적자
sh0528p 2010-09-26 오전 2:43:04 511   [0]

어쩌면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면 좀 더 빠져들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긴 명작이기에 이정도로는 그 감동의 깊이를 담아낼 수 없었다.

 

 

"홍콩 느와르를 화려하게 연 전무후무한 원작"

<영웅본색>이 개봉한 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날 정도로 대단한 영화다. 영화가 개봉할 때만해도 화양, 명화, 대지 극장등 소위 비주류 극장에서 개봉한 그리 주목받지 못한 영화였다. 그도 그럴것이 홍콩 영화에 대한 인기가 정점을 찍고 조금씩 하락세였던 시절이고 이들이 말하는 강호의 의리나 무차별적인 총싸움이 생소하던 상황이라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개봉 후 입소문을 통해 이 영화의 진가는 퍼져나갔고 개봉관 확대라는 당시만해도 놀라운 상황으로 발전했다. 물론 그렇다고 주류 극장가에서 개봉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멀티극장이 아니던 때 동네마다 있던 극장들 사이를 무섭게 퍼져나가며 학생들의 몰래 관람이 활개치고 주윤발의 패션은 남자들사이에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을 정도의 인기몰이를 시작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국내엔 거의 인지도가 없었던 적룡과 주윤발, 장국영은 국내 여배우들 사진을 코팅하며 가지고 다니던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며 동네 문구점을 휩쓸어 버렸다. 우리에겐 다소 낯선 강호의 의리나 피비린내나는 무차별적인 총싸움이 벌어지는 영화가 홍콩 반환이라는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를 담아내며 무겁게 그려지고 있지만 엇갈린 형제의 운명과 남자라면 한번쯤 꿈꾸는 모습을 잘 포장해 문화와 생각이 다른 국내에서도 큰 획을 긋는 명작으로 남겨졌다. 이런 큰 성공으로 인해 죽었던 주윤발을 쌍둥이라는 다소 황당한 설정으로 살려내면서 속편이 등장했고 이와 유사한 아류작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게 되지만 <영웅본색>의 아성에는 턱없이 모자란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관람하는 동안 이들의 상황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슴조리게 했고 주윤발이 장국영을 꾸짖다 죽는 장면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마지막 복수를 위해 형에게 자신의 총을 건네는 마지막 장면에선 감동의 눈물을 흘렸던 <영웅본색>은 2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작품으로 남아있다.

 

 

"분단의 아픔으로 새롭게 해석한 리메이크의 도전"


최근 우리 영화는 말그대로 남자들이 영화를 주름잡는 상황이다. <아저씨>를 비롯해 <해결사>나 <악마를 보았다>처럼 극장을 주름잡는 영화 대부분은 남자들이 점령했다. 이렇게 남자들이 흐름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무적자> 역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이라는 우리 영화에 인기 남자 배우들이 4명씩이나 출연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영웅본색>을 어떻게 리메이크 했을지에 대한 관심이 눈길을 모은다. 당시보다 제작 기술이나 제작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우리 영화에 다양성만큼이나 기획력이 눈부신 성과를 이루는만큼 <영웅본색>이 어떻게 <무적자>로 새롭게 변했을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원작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순간 원수가 되어버렸다면 리메이크는 남과 북이라는 분단 상황으로 인해 형제가 원수가 된다는 설정이 차이가 있고 등장인물 일부 (가령 이경영이 연기하는 박경위) 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원작의 기본 흐름은 동일하게 이어가면서 새로운 시도로 차이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가 보인다. 특히 엔딩은 원작과는 다른 결말로 분단의 아픔을 아우르려는 감독의 의도는 원작을 모방하려는 수준이 아닌 원작을 바탕으로하여 원작과는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려는 듯 보인다. <파이란>으로 남자 관객까지도 눈물 흘리게 만들었던 송해성 감독이라면 분명히 욕심 낼 만한 부분이기도 해 보이지만 워낙 걸출한 원작이다보니 너무 위험해보이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었다.

 

 

" 4명의 등장인물이 보여주는 4가지 색깔로 또 다른 영웅 이야기를 꿈꾸다"


<영웅본색>은 적룡, 주윤발, 장국영이 만든 3명의 영웅 이야기이다. 악역 아성을 연기한 이자웅이 있지만 이들의 존재감에 미치지 못하기에 원작은 3명의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4명을 꼽자면  장국영의 아내로 등장한 주보의를 꼽는 것이 옳을 듯하다. 왜냐하면 주보의 또한 빼어난 미모로 뭇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하며 많은 인기를 모았으니까. 그에비해 <무적자>는 4명이 등장하는데 적룡역에 주진모, 주윤발역에 송승헌, 장국영역에 김강정 그리고 아성역에 조한선이 그들이다. 굳이 원작의 인물과 비슷하게 인물을 꼽지않고 (그럴 이유도 없지만) 새로운 인물의 스타일을 만들며 또 다른 영웅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한다.

 

주진모가 연기하는 김혁은 조직을 이끄는 핵심 리더로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지만 북을 탈출할 때 동생과 어머니를 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는 비운의 인물이다. 한시도 그날을 잊지 못하고 살다 자신 앞에 나타난 동생에게 죄를 뉘우치며 용서를 구하고 조직을 떠나 평범하고 바르게 살려는 선 굵은 남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적룡에 비해 형으로서의 느낌이 부족한 아쉬움이 있지만 동생과의 아픔을 연기하는 눈빛 연기는 적룡 못지않게 살아있는 안정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주윤발을 연기한 송승헌은 처음엔 다소 약하지 않은가라는 느낌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주윤발의 강렬함을 따라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강점을 활용해 인물을 해석한 것은 차라리 잘 한 선택이지만 워낙 착하고 귀공자 이미지라 롱코트에 선글래스를 끼고 쌍권총을 연발해도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주윤발처럼 성냥을 무는 대신 사탕을 무는 것도 차별화를 위한 설정인지 몰라도 사탕은 연약한 이미지를 강하게 남기는데 한몫했고 너무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한 상황 설정도 불필요해 보인다.

 

장국영에 비해 남성미 강한 김강우는 원작의 인물과 다른 자신만의 색다른 소화를 보여준다. 혼자 살겠다며 어머니와 자신을 버린 사실을 용서하지 못해 목숨을 걸고 형을 찾아 드디어 만나면서 보여주는 그의 강렬한 연기는 원작에서 보여준 장국영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원작과 달리 아내가 없어 자상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없이 분노에 찬 모습만 보여주었지만 그런 이미지가 너무 강해 형과 어색하게 밥을 먹는 자리에서처럼 복잡한 심경 표현에서는 역시나 만족스럽지 못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큰 변신을 시도한 조한선은 지금까지의 착한 모습과 달리 비열한 면을 강조하며 악역에 도전했다. 자신의 야망을 숨긴채 조직 생활을 하다 급기야 반란을 시도하며 실세가 되어 지나간 은혜를 원수로 값는 태민은 <무적자>에서 매우 요한 배역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스캐스팅인듯 하다. 기존의 이미지를 깨고 악역에 도전했지만 왠지 어색하고 그의 비열함으로는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지는 못한다. 어색한 사투리만큼이나 표정연기도 태민을 소화해내기엔 무리수가 보인다. 차라리 비열한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조연이 더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원작과는 다른 느낌으로 선택된 4명이 만든 또 다른 영웅의 이야기는 새로운 인물도 만들지 못하고 기존 인물만큼의 강렬함도 남기지 못했다. 주진모는 훌륭한 역할 이해와 소화가 돋보였고 김강우는 부족해 보이지만 인물을 잘 소화해 냈지만 송승헌과 조한선은 왠지 따로 노는 듯하다. 이 두명이 비주얼을 책임지는 역할만으로 필요한 인물이라면 모를까 극을 이끌어 나가는 핵심인물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번 작품에서 좋은 평가가 나오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가 되는 점이 되기도 하다.

 

 

"용기있는 도전만 보였던 리메이크"


<영웅본색>은 후반부 총격장면에서 너무 과도한 총격 연출을 제외하고는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 명작이다. 이런 명작을 리메이크 한다는 것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모방이 아닌 색다른 시도를 통해 변화를 준 점은 높이 살만하다. 하지만 이번 도전은 감히 말하지만 실패라고 본다. 원작과 다른 분단의 아픔이라는 차별성이나 인물 성격의 변화 때문은 절대 아니다. 그보다 인물 각자는 원작에서 3명이 만들어내는 폭력과 사랑의 절묘한 하모니 없이 4인 4색으로 각자 따로 노는 분위기가 강하다. 애초에 잘생긴 훈남 4명이 연기하는 오락 영화 수준을 기대했다면 모를까 <영웅본색>은 그런 수준에 머무를 작품이 아니지 않은가?

 

원작에 분위기를 따라 했지만 디테일을 따라 잡지 못한 점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가령 영춘이 다리를 다친 뒤 복수의 칼을 갈며 조직에서 생활하는 모습에선 왠지 원작의 애잔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혁이 철이와 헤어지게 된 그날 뭔가 비밀이 있을 듯한 상황은 끝내 아무런 상황도 없었다. 장애우의 몸이지만 아직 자신은 죽지 않았다며 배신자가 땅에 던지고 간 돈을 줍고 차가운 밥을 먹던 주윤발의 비장한 모습은 영춘에게선 느껴지지 않는다. 다른 부분에서의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분단이 만든 헤어짐으로 다신 헤어지지 말자며 마지막에 보여주는 원작과 다른 결말은 <무적자>가 던지는 일종의 히든 카드지만 기대 이하의 결과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들에선 몰입도 그들의 아픔도 공감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이어진 결말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원작을 몰랐다면 이런 황폐함까지는 느끼지 못했을 거란 생각마저 든다.

 

 

"에필로그"


이 작품으로 <영웅본색>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모든 면에서 발전한 상황이지만 원작이 준 감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리를 찾아 볼 수 없는 세상에서 분단이 만들어 낸 형체의 아픔을 아우르는 한발의 총성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채 그렇게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다. 적어도 속편은 없을거란 결말을 남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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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2010, A Better Tomorrow)
제작사 : 핑거프린트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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