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서는 기자시사에 나가지 않는 인간들마저 끼니를 거르며 한 달음에 극장으로 향할 만큼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충무로 안팎을 사정없이 술렁이게 한 <역도산>이 드디어 오늘 그 실체를 드러냈다.
물경, 1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제작비, 한.일 최고의 배우와 스탭이 어우러져 엮어낸 공동 프로젝트, 가공할 만한 몸집 불리기와 눈이 뒤집힐 정도로 살 떨리는 연기를 펼쳤다는 설경구. 별 볼일 없는 인생 강재를 통해 울컥거리는 진한 페이소스를 무자비하게 끌어냈던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 그리고 패전 후 실의에 빠져 있던 일본인들에게 긍지와 희망을 와락 안겨주며 열도를 뒤흔든 역도산의 흥미진진한 삶을 스크린으로 불러냈다는 점 등등. 관객 300~400만 명은 이미 먹고 들어간 셈이라며 일찌감치 호사가들은 <역도산>을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의 초대박 블록버스터의 계보를 이을 영화로 예약해 둔 상태다.
그래서 봤더만........
분명, 나름의 성과를 길어 올린 수작이라는 단상이 강하게 파고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뭔가 허전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게 본 필자의 허심탄회한 관람 소견이다. 따라서 당 영화를 보시기 전, 주최측의 말이긴 하다만 다음과 같은 감독의 변을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역도산>은 슬픈 블록버스터다” “떼돈 들어간 대작이구나 하는 기대의 시선보다는 영웅 역도산이 아닌 어두운 시대를 맨 몸으로 관통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 간 한 사내의 삶으로 봐달라!"
그러니까 당 영화는, 소재와 상관없이. 재미와 신파를 퍽이나 비중 있게 다룬 기왕의 블록버스터와는 적잖이 노선을 달리 하는 영화라는 사실이다. 격변하는 시대의 자장 안에 놓인 역도산의 거대 신화보다는 갈 곳 없는 비루한 신분으로 끊임없이 덧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 역도산의 비애를 쫓는다. 부침 심한 인생의 굴레 속에서 환희와 절망을 지독하게 경험한 한 사내의 이야기를 진정성 그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송해성 감독의 말마따나 <역도산>은 슬픈 블록버스터다. 때문에 당 영화에 따라 붙는 앞서 얘기한 화려한 수식어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온전한 감상에 독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