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느다란 눈매와 텍사스식 콧소리에선 애교가 살살, 볼빨간 뽀얀 피부에선 귀염성이 폴폴 풍기는 매력적인 여배우 르네 젤위거. 그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빛이날 영화로, 아마도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주저할 사람은 없을 것같다.
미(美)에 대한 치열한 경쟁과 질투가 들끓는 할리우드에서 <몬스터>의 샤를리즈 테론에 살짝 밀리긴(?) 하겠지만, 10kg 이상 증량을 단행하며 완벽한 ‘브리짓’으로 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것은 물론, 전형적인 영국인 발음을 위해 신경줄 꼿꼿이 세웠을 르네 젤위거. 그녀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많은 이들-특히 여성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영화가 됐다.
그녀가 또 한 차례, 브리짓이 되기 위한 반복적인 고됨을 거친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은 알려진 대로 전편으로부터 4주 후의 이야기다. 또, 헬렌 필딩의 소설 두 편 중 그 두 번째를 원작으로 한 것.
'All by myself'의 처절한(?) 선율, 열량 핵폭탄격인 아이스크림 한 통, 줄담배, 토끼 코스튬 등 브리짓의 표정과 동작을 포함한 갖가지 아이콘들이 귀엽게 뭉쳐 파노라마처럼 쉬익 흘러가는 전편에 비해, 우선 속편 <열정과 애정>은 보고 난뒤, 마음에 강렬하게 남는 요소들이 미미한 편.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의 ‘에비’만큼이나 전문적이고, 똑똑하다고 하면 약간은 거짓말이고, 내뱉는 말속에 무시못할 재치와 총명함, 냉소 등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전편의 브리짓은 객관적인 매력은 떨어져도, 이 땅의 노처녀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사랑할 만한 캐릭터였기 때문. 한없이 망가져가는 몸매에 머리만 커져가지만, 때때로 보이는 푼수짓, 외로움떨기, 연애 상대 헛다리 짚기 등 일련의 행동들은 동서양의 평범한 독신 여성들이 감정 동화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거기엔 잡힐 듯 말듯한 그녀의 ‘사랑’이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측면이 있었던 것. 허나, <열정과 애정>의 출발은 사뭇 다르다. 브리짓이 초반부터 그녀의 남자친구가 된 ‘마크(콜린 퍼스)’와 깨소금 쏟아지는 연애 생활을 펼쳐보이니, 전편에서 콩깍지 쓴듯 사랑스러웠던 퉁퉁한 몸매가 왠지 거북하게 다가선다(로맨틱 코미디에서 익숙한 미남-미녀 버전의 감상 기법이 되살아났기 때문일까).
그러다 예의 코믹하고 예민한 브리짓을 감상할 수 있는 스토리, 즉, 마크의 곁에 있는 인턴을 연적으로 의심하면서 벌이는 브리짓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는 속편에서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번지게 한다. 변함없이 음주와 흡연을 사랑하고, 출렁거리는 살들과 벗삼은 그녀가 가녀린 얼짱 인턴에 맞서 사랑을 지킬 것인가. 뭐, 그런 궁금증이 흥미롭게 번져가는 것.
‘아, 그래도 좀 당당했으면 좋으련만’하는 심정이 들게, 질투와 의심으로 번민하는 브리짓은 여성 관객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면서, 전편보다는 그 귀염성과 사랑스러움을 잃고 만다. 물론,‘다니엘(휴 그랜트)’이 다시 나타나 이제 믿음직한 남자가 되겠다며 브리짓을 뒤숭숭하게 하니, 영화의 긴장감은 어느 정도 늘어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니엘의 유혹을 받는 태국에서의 장면들은 마약소지자로 오해받아 그녀가 철창 신세를 지는 사건으로 이어지며, 알 수 없는 심드렁함을 일으킨다. 의기소침할 쏘냐, 감옥 안에서 마돈나로 변신, 춤/노래 믹스된 ‘라이크 어 버진’도 가르쳐주고, 여권신장 책, 초콜릿(이건 정말 심한듯!) 등도 나눠주며 이래저래 분주히 움직이는 브리짓이지만, (영화의 의도와는 삐딱선을 타며) 그다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 할리우드 영화가 종종 무심하게 저지르는, 동양에 대한 편견이 언짢게 다가서기 때문인지도.
그.래.도 너무 속단하진 마시라. <브리짓 존스의 일기> 속편을 손꼽아 기다려온 관객들을 위해 이 영화는 깜찍한 ‘반전’과 낭만 겨울에 딱 맞는 해피엔딩을 준비하고 있으니,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마저 탐독하고픈 관객들은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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