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한 밤을 틈타 혼자 영화<악마를 보았다>를 보고 왔습니다. 재미있지만 잔인한 영화라는 말들이 많아서 그런지 집에 애인들 두고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남자들도 제법 많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확실하게 잔인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말이죠. 충분히 논란이 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복과 직위에 약한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악마 감독은 영화의 시작과 함께 눈이 내리는 어두운 도로를 천천히 빠져들 듯 지나는 장면을 통해 관객들을 이 잔혹한 이야기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동차 백미러에 천사의 날개를 단 악마 최민식의 등장은 친절함으로 포장한 우리 주변의 위험요소들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가 몰고 있는 차량은 학원차량으로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안전하다는 사람들의 심리적 맹점을 꿰뚫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은 역할이 담긴 제복에 이성적으로 취약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데요. 눈앞에 존재하는 상대의 본질을 보는 것이 아닌 그의 제복 혹은 직위에 드러난 역할적 이미지만을 보고 앞서 판단하게 됩니다.
그 예로 한 심리학자가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한 일반인에게 의사가운을 입혀놓고 환자나 간호사에게 정말 말이 되지 않는 지시를 내리는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충격적인 점은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 소양이 있는 간호사들 조차도 환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의사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려고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해당 간호사들은 많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시를 따랐죠.
악마 최민식은 그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 학원자동차였다는 것이죠. 이러한 점은 악마가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여성을 납치하는 장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다른 장면에서 등에 십자가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악마 최민식의 폭력적인 모습은 도식적으로까지 자리잡은 사람들의 안일한 ‘제복 의존증’에 경고를 던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오버일까요?!
음악을 통한 스릴러의 완성 영화 초반에는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높습니다. 음악스릴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초반부는 음악과 효과음이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주는데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약혼자의 주검과 마주하는 초반 클라이막스 부분에는 소리를 거의 배제한 연출로 이병헌의 절망감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이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담배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심리적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담배로 표현 보다 처절한 복수를 위해 다시 풀어준 악마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난 악마를 다시 잡아들인 이병헌은 그의 심리상태를 다비도프 담배를 흡연하는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담배가 기형적으로 타 들어가는 모습인데요. 극중 캐릭터의 당시 스트레스를 담배 하나로 절묘하게 표현해 낸 것이죠.
담배 피는 스타일만 봐도 캐릭터가 보인다
두 캐릭터의 흡연 장면을 살펴보면 각각의 캐릭터의 특성에 따라 흡연 스타일이 다릅니다. 악역이면서 복수의 대상인 최민식은 살인을 할 때나 살인 후에 던힐을 흡연하는 모습이 나오는데, 마초적인 살인마의 모습답게 흡연 스타일 또한 굉장히 거칠게 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필터를 강하게 빨고 빨리 태워버리는데 꽁초를 버릴 때도 홱 내팽개쳐버립니다. 이병헌은 국정원 요원답게 유럽의 명품담배라 불리는 다비도프를 피고, 흔히 간지흡연이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흡연 장면은 담배를 피는 남자분들이 보면 흡연본능을 일으킬만한 멋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담배 피는 스타일로도 악마적 싸이코패스 VS 전직 엘리트라는 캐릭터를 표현해냈습니다.(이제 김지운 감독도 김테일로 불려야겠군요)
얼굴을 지진 담뱃불은 꺼지지 않았다?! 이병헌이 피와 땀 그리고 물(?)로 흥건하게 젖은 최민식의 얼굴에 담배를 지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담뱃불의 표면온도는 300도가 넘습니다. 물론 그 안은 800도 가까이 되고요. 악마 최민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는 애연가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실 겁니다. 하지만 최민식의 얼굴에 흐르는 물 때문에 담뱃불이 금방 꺼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는데요. 악마 최민식의 얼굴을 그렇게 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졌던 담배를 옆으로 던지는 부분에서는 담뱃불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옥의 티일까요?! 허허~
살인자와 피해자 그네들 아버지들의 흡연 영화에서는 딸을 살인자에게 잃은 아버지가 처량하게 벤치에 앉아 담배를 태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곤 미안하다는 말을 되뇌며 슬픔에 잠기죠. 또 다른 반대편에서는 악마 최민식의 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원망 어린 푸념을 내뱉으며 담배를 물어 피웁니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아버지의 마음을 마치 담배연기에 실어 보내듯이 말입니다.
완벽한 복수의 완성 길로틴?! 이병헌이 복수의 완성을 위해 마지막으로 쓰이는 도구가 바로 길로틴입니다. 유럽의 사형 도구였던 길로틴은 영화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요한 요소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비주얼적인 측면에서만 잔인할 뿐 실제 처형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는 의견들이 많습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죠. 이건 패스 ~ 루이 16세는 길로틴을 두고 ‘인간을 처형하는데 품위를 유지시켜 주는 매우 훌륭한 기계’라고 극찬한 바가 있는데요. (뭐 종국에는 그 역시 길로틴으로 죽임을 당하지만 말입니다) 그만큼 길로틴은 사람을 ‘단번에’ 처형하는데 가장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병헌을 악마 최민식에게 단번에 죽을 수 있는 자비를 내려 줬을까요.
유럽의 사형 방법은 인간을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도록 고안되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네들은 단번에 죽이는 것을 ‘자비’라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화형 장면은 불에 타 죽는 것이 아닌 연기에 질식해 죽는 것이고요. 귀족들에게 쓰인 방법입니다. 실제 화형은 발 밑에 숯을 놓아 아주 천천히 타 들어가며 최대한의 고통을 이끌어내며 죽였습니다. 물론 지혈효과도 있고요. 이 밖에도 배위에 쥐 4마리를 가둬놓고 통 위에 불을 지펴 쥐들이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파고들도록 만든 방법도 있습니다. ㅜㅜ
때문에 이병헌이 죽음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생각했다면 절대 길로틴은 쓰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병헌은 길로틴을 썼을까요.
악마 최민식이 이병헌에게 말합니다. “니가 나한데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너는 이미 졌어. 알아?!” 이에 이병헌은 최민식에게 “나는 네가 죽어서도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참고로 길로틴은 순간 내려치는 가속도가 엄청나 길로틴에 의해 몸이 분리된 뒤에도 짧게는 5~6초 길게는 10초까지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그 기록이 맞다면 길로틴에 의해 잘려나간 악마 최민식의 머리는 그 순간에도 ‘무언가’를 보게 될 겁니다. 이 이상은 강한 스포일러라 더 이상의 상황묘사는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허허~
아무튼 제 생각으로는 이병헌이 말한 ‘죽은 뒤의 고통’은 최민식이 생물학적으로 죽은 뒤(목이 잘려나갔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보게 될 ‘그것’을 의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승자도 패자도 없는 복수의 결말에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더군요. 다른 남자들도 저와 같은 생각인지 영화관을 나서자마자 모두 일제히 담배를 물어 피워 살짝 웃음이 나오긴 했습니다. 크하~
음, 이 밖에도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묘사된 ‘살인자와 음악과의 상관관계’나 ‘사이코 패스의 우정’ 등에 대해서도 다뤄드리고 싶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다음기회로 미루겠습니다. 댓글 많이 달아주시면 또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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