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우연히 <마터스>란 영화를 보고,
영혼의 스크래치를 얻은 적이 있다.
한동안 극도의 혐오감과 울렁증을 동반했고, 잔혹한 장면들을 일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한 기자가 <악마를 보았다>를 <마터스>급이라고 언급한 걸 보고,
이걸 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루동안 고민에 빠졌다.
다시금 그런 영화를 보고 싶진 않은데,
김지운감독에 이병헌, 최민식 주연이란 것 땜에 안 보고 넘어갈수도 없고...
진퇴양난...
결국 오래 고민해봤자 답도 안나오고, 계속 궁금해할것 같아서 그냥 봐버렸다.
결론은 <마터스> 급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슴을 쥐어짜고, 잔인하게 괴롭히는 영화임엔 틀림없다.
영화제목에서 단번에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약혼녀를 살인귀에게 잃고 그녀가 당한 만큼의 고통을 똑같이 되갚아 주기 위해,
살인귀를 잡아서 죽도록 고통을 준다음, 풀어주고,
또 잡은 다음 고통을 주고, 풀어주고
이를 반복하는...
그 과정에서 괴물을 상대하다 보니, 자신 또한 괴물이 되어 가는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를 담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괴물, 악마가 되어가는 게
불과 이병헌 만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감독은 너무나도 철저하게 최민식을 미워죽이고 싶은 살인귀로 만들어놓았고,
이에 관객들도 정말로 이병헌만큼이나 최민식이 어떤 식으로든 응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했다.
사이코패스인 최민식이 애초에 고통이나 두려움,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패배한 마음이 든 이병헌이
최민식을 통해서가 아닌 그와 연결된 타인을 끌여들여 그들이 고통받게 함으로써
(육체적 고통이 아닌 정신적 고통)
복수를 마무리 지었을 때,
나는 저 무고한 사람들이 가슴에 지고 살아야할 멍에를 걱정하면서도
일말의 감정속에서는
이병헌이 저렇게라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그렇게라도 했으면 하고 바랬던
아주 조그만 염원,
이병헌과 똑같이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라도 복수의 대상자에게 고통을 되갚아주고 싶은
그런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난 내게도 악마가 있다는 걸 얼핏 확인했고,
정말 깜짝 놀라 그 감정을 서둘러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 감정이 일순간이나마 들었던 건 사실이다...
이 영화는 시원한 복수극이 아니다.
괴롭고, 힘든 영화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본인들의 악마를 엿보게 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어도 나에겐 그 의도가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악마가 되어 가는 과정에
내가 뛰어들게 된 것은 별로 달갑지가 않다...
물론 내가 영화관 가서 본 영화니까, 뭐라 하소연 할 수 없지만...
잔혹한 장면을 잘 못 보시는 분이나,
정서적으로 극한까지 치닫는 미움과 분노 등을 경험하고 싶지 않으신 분은
추천하지 않는다...
최민식의 신들린 사이코패스 연기와
이병헌의 우수에 젖은 눈빛 연기(이젠 좀 식상해질려고 하지만)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신 분은
가서 보시되 마음 준비 단단히 하고 가시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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