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그래도 나름 기대작이기도 했고 예매권까지 당첨돼서 그냥 동생하고 둘이서 봤습니다..
어제 명불허전 급의 수위라는 이야기가 폭주해서 정말 많이 걱정하고... 너무 심하겠다 싶으면 중간에 나올 생각까지도 하고 상영관에 입장했습니다. (새벽까지 공부하고 난 후에 잘려고 했더니 걱정돼서 잠도 설치고 ㅠ.ㅠ)
∙ 일단... 마터스 급이라고 하는 말 듣고 엄청 걱정했는데(그거 보고 1주일 정도 앓았으니까..) 생각보다 수위는 안 높았습니다..(??)
그래도 영화 보면서 헉 소리 남발했습니다. 한국 영화로서는 확실히 잔혹함의 끝을 넘어서서 방점을 찍은 영화입니다. 상당한 액수의 제작비(70억 원)이 들어갔고 김지운 감독 + 이병헌, 최민식 조합인데 결과물이 이 정도 수준의 잔인함을 자랑하는 상업 영화라니.(확실히 흥행 대박은 물 건너갔습니다.) 작정하고 들어갔지만 그래도 깜짝 놀랐습니다.(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처럼... 감독의 네임 벨류를 통해서 재정적 지원은 다 받아놓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대로 맘껏 만들었다는 느낌) 등급에 맞추려고 편집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고 그로 인해 잔인함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기겁할 정도로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이 줄줄이 이어집니다.(그리고 이런 이어짐은 첫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잔인한 것도 보통 잔인한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지만 극도의 잔인함 만큼이나 영화 속 상황이 주는 비윤리적, 비도덕적 불쾌함과 정서적 충격도 엄청나게 큽니다. 보고 나면 오락 영화를 봤다고 말하기는 힘들고, 이건 그저 내면을 황폐화시키는 수준의 영화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극단적으로 취향 타는 영화죠. 취향에 안 맞는다면 이 영화는 엄청난 심리학적인 고문이 될 겁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대해서 인터넷에 돌고 있는 표현을 빌린다면... 고문 포르노라는 말이 딱 적당할 듯 싶습니다.(이런 거 잘 못 보는데... ㅠ.ㅠ) 여성분들은 웬만하면 안 보시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물론 잔인한 영화 광팬이시라면 안 말리는데... 잔인한 거 못 보시는 분들이라면 절대 보시면 안 됩니다. 중간에 나가시는 분들 계시더군요.)
∙ 장르 영화치고는 분명히 심할 정도로 과장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지만 이병헌과 최민식의 연기는 정말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차가운 이병헌의 이미지와 불타오를 듯한 최민식의 이미지의 대립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는 큽니다. 악마를 잡기 위해서 악마가 되어가는 이병헌의 차가운 모습도 정말 대단하지만, 최민식의 연기만큼은 정말 말이 안 나오는 정도입니다.(올드보이의 오대수는 이거에 비하면 정말 얌전한 고양이 같지요...) 최민식의 인터뷰 내용에서, 이 영화는 캐릭터와의 이입을 최대한 자제하고 테크니컬하게 연기했다고 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배역이더군요. 만약 그랬다면 영화를 통해서 최민식은 악마가 되었을 테니까요.(어쩌면 이미 악마가 되어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최민식을 통해서, 진정한 악마를 봤다는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닙니다.(여기에서 추격자에서 하정우의 싸이코패스는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악마, 싸이코 연기의 완벽한 예시 중 하나로 남을 것 같습니다. 걱정이 한 가지 된다면, 과연 그에게 또 다른 영화 출연 제의가 쉽게 들어올 것 같지 않습니다.
∙ 김지운 감독의 영상미도 역시 대단하더군요. 몇몇 장면은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기교도 엄청나고 모든 장면이 정말 뭔가 있어보이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영상미로 피가 넘쳐나는 잔혹함을 얼핏 포장한 것 같으면서도 그 잔혹함이 더욱 더 부각되는 것 같다는 느낌. 대단한 건 장르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식상한 장면들도 카메라워크와 조명 아래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발산되는 장면으로 변화한다는 것이고요.
∙ 영화가 너무 극단적으로 나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스릴러답게 조이는 맛과 서스펜스는 확실하게 느껴지지만 그와 동시에 영화는 엄청난 폭력이라는 옷을 입고 피칠갑을 한 상태로 통제를 벗어나는 수준으로 저돌적으로 질주합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김지운 감독님 영화 중에서 가장 안 좋아하는) 놈놈놈처럼 정말 복잡하고 산만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아니고, 김수현이 장경철에게 지독하게 복수한다는 정말 간단하고 단순명료한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놈놈놈보다도 더 긴) 2시간 20분이라는 러닝타임도 쓸데없이 너무 길었고, 그러다 보니 영화 전체가 리드미컬한 느낌이 있어도 너무나도 긴 호흡에 좀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중간에 딱 여기에서 끊고 마무리 지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장면이 한 장면 있었습니다. 초반에도 잡다하게 긴 장면들이 제법 있는데, 이런 걸 좀 줄이고 영화 길이를 20분 정도 줄였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도 체감 길이는 2시간도 안 된다고 느꼈으니 이건 뭐...)
∙ 단순명료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단순하게 하는 만큼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예상대로(?) 정말 간결하더군요. 악마가 되기 위해서는 악마가 되어야한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고 복수를 성공하더라도 결국 복수 하는 사람도 파괴된다. 고로 복수는 허망하고 복수 역시 돌고 도는 순환 고리를 형성한다. . 이 정도... 비주얼이나 캐릭터, 블랙 유머 등등 박찬욱 감독님의 복수 삼부작이 떠오르긴 하지만.. 거기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김수현이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고뇌가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캐릭터 자체에 대해서도 도대체 왜? 라는 질문 자체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장경철과 같은 악마에게 그런 게 왜 필요합니까?) 그들에게 더 쉽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공감이나 이해보다는(약혼녀를 잃은 내면의 상실감이나 고통은 정말 조금밖에 느낄 수 없어요.) 그들의 악마적인 본성과 폭력성을 이해하는 게 더 편해요.(그리고 그건 정말 불쾌한 일입니다)
- 스포일러성 내용이 있습니다 -
잡아서 엄청난 고통을 준 다음에 놓아주기를 반복하는 김수현의 복수 방식에 대해 인간의 폭력성이나 복수심이 극한을 넘어서서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복수의 방법에 대해 납득이 안 돼요. 뭐랄까.. 계속 김수현은 린치를 가하고 장경철은 김수현의 상대도 못 되고 계속 죽도록 맞기만 하고 김수현이 장경철을 몇 차례 완벽하게 제압을 하지만 김수현은 절대 이 정도 수준에서 복수를 끝내려고 하질 않습니다. 장경철도 임팩트 있는 반격을 가하지만, 그래도 결국 비인간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정말 엽기적이고 짜증나기 그지없는 방식으로 복수를 마무리합니다. 근데 이렇게까지 처절한 복수가 필요했을까요? 김수현은 계속 장경철을 잡고 나서 반죽음 상태로 패고 놔 주는 행위를 계속 하고 보는 이들은(심지어 극중 인물들도) 자꾸 “그만 하면 됐지”, “이 정도 했으니까 그만 해라” 이러고 있는데 김수현은 계속해서 극단적으로 밀어붙입니다. 이런 복수를 통해 결국 김수현은 모든 걸 잃고 장경철 급의 지독한 악마가 되어버리고 이에 대해 스스로도 괴로워합니다. 근데 이러한 복수 방식을 통해서 장경철이 극한의 고통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어요. 계속 욕지거리 퍼붓고 “재밌네” 이러는 100% 순전 무결한 완벽한 악마인데 손목을 부러뜨리고 메스로 아킬레스건을 뚫어 버린다고해서(이 정도 말에도 기겁하시는 분들은 절대로 보면 안 됩니다.) 과연 장경철이 김수현이 의도했던 고통을 과연 제대로 느끼기나 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다는 거죠. 결국 장경철에 대한 복수는 성공했더라도 모든 걸 다 잃고 파괴된 사나이가 되어버린 김수현을 보고 있노라면 복수는 성공했더라도 장경철에 대한 완벽한 승리라는 말은 나오지 못할 겁니다. 오히려 이건 내면이 완전히 파괴된 김수현을 상대로 완벽한 악마 장경철이 거둔 완벽한 승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 되겠지요. 극중에서 김수현은 스스로 이 복수에 대해서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p.s 1. 이 영화 보면서 다크 나이트가 불현듯이 떠오르더군요. 겉으로는 김수현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김수현의 패배라는 점에서 그 점이 크게 느껴졌달까요.
2. 이 영화 보면서 요즘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이 떠올랐습니다. 납치, 성추행, 연쇄 살인 등.. 이 영화에는 그 모든 것이 담겨있고, 그 수법이라든지, 살인이 일어나는 과정 등.. 정말 모방범죄를 우려해야하는 수준까지 갑니다.(이런 반응이 오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분명히 계시겠지요...)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사회 속에 널리 퍼져있는 학원 셔틀 버스와 공공 택시에 대해 두려움이 약간은 생길 겁니다. 물론 실제로 이와 같은 범행이 안 일어나야겠지요.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분간은 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겠어요. (설마 이런 일이 있겠어요.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 말(?)도 있듯이) 만약에 영화 보고 이거 괜찮겠는 걸 이러면서 영화 속에 나오는 악마적인 범행을 즐기는 사이코들이 생겨난다면... 앞으로 김지운 감독님은 영화 못 만들게 되실 지도 모릅니다.
3. 심의를 통과한 영화가 이 정도인데 무삭제 버전은.... 말 다 한 것 같습니다. 제한 상영가 판정을 해서 영진위를 뭐라 비방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히려 이게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야 이러면서 흥분하시는 분들이 제법 계실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 무삭제판 DVD를 기다릴 겁니다.(그러면서 정서적인 쇼크를 또 먹고.. 또 멍해지고.. 이러겠지요.. 잔인한 영화 못 보면서..)
근데 잘라낸 장면이 1차 때 8~9분, 2차 때에는 1분 30초 잘라냈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그럼 이 영화의 정식 길이는 2시간 30분이 넘는 겁니까...??
4. 이병헌과 최민식 중 누가 더 악마같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저는 두 배우보다도 이렇게 잔인한 장면의 디테일을 정말 사실적으로 살려낸 김지운 감독이 더 악마라고 하고 싶습니다. 확실히 반칙왕 떄 김지운 영화가 더 좋았어요.
5. 마지막으로 덧붙임 하나 더. 영화 전체적으로 김지운 감독의 전작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제법 많습니다. 가령 택시 살인 장면에서는 놈놈놈이 떠오르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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