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도, 무엇을 보아도 맨송맨송했던 그의 가슴에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그 단어는 윤서의 아랫도리에 탄탄한 힘을 실어줄 뿐만 아니라 도리질을 해봐도 떨쳐버릴 수 없는 음란소설 창작에의 열정을 선사한다. 그렇게 윤서는 추월색이라는 필명으로 주야불문하고 음란한 세계로의 진입에 자신을 내던진다. 윤서에게 야릇한 시선과 애틋한 속내를 드러내는 정빈의 진심 또한 음란소설의 요긴한 소재로 쓰인다. 윤서와 정빈 사이에 오고갔던 그 감정이 사랑인지 욕정인지 차분하게 생각할 시간도 없이 윤서는 작가의 이기적 욕심으로 가득 차, 음부만이 꿈꾸게 하는 신묘한 세계에 모든 것을 냅다 꽂아 버린다.
오직 입소문으로만 명예를 확인할 수 있는 그 세계에서 윤서는 무섭게 등장한 신인 작가로 명성을 떨치고 반대정파의 사람인 광헌마저 삽화가로 등단시키고야 만다.
사랑과 우정 그리고 욕망이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그 안에서 지위와 신분을 막론하고 남녀 모두 열중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태동한다. 윤서와 광헌은 대중문화의 창조자로서 야릇한 도취감에 빠진다. 이 해괴한 만족감은 이름을 중요시하던 사대부에게 익명성을 부여한다. 그 안에서 얻게 된 자유는 밋밋한 일자라인 인생을 굴곡 심한 S라인으로 탈바꿈 시켜줌은 물론이다.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생긴다.
왜 광헌은 반대파 사람인 윤서의 음탕한 제안을 거부하지 못한 걸까? 한번만 스쳐 지나가도 뒤돌아 생각하게 만드는 ‘음부’라는 요염한 이 단어가 윤서처럼 광헌에게도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거라고 치부하기엔 그의 동기는 어딘가 명확하지 못하다. 광헌의 그림실력을 제대로 평가해준 윤서의 문화적 교양에 광헌이 먼저 매료된 게 아닐까? 이런 추측은 영화의 결말부에 이르면 좀 더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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