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65세 할머니들이 은행강도에 나섰다... 기발한 내용이긴 하지만 왠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높지 않습니다. 할머니들이 주연이라는 이유가 아닌 우리 코믹 영화에서 빈번히 활용하는 레파토리의 진부함과 뻔히 예상되는 스토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 영화에 흥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계신 나문희, 김수미, 김혜옥이 출연한다면 사정은 다를 수 있겠지요... <권순분 여사 납치 사건>부터 최근작 <하모니>까지 또 다른 전성기를 구가하시는 나문희, <마파도>를 비롯해 <청담보살>까지 거침없는 입담과 과격한 캐릭터를 무기로 영화를 종횡무진 누비고 계신 김수미, 과도한 음주 후 변기를 끼고 사시며 코믹한 의외의 모습으로 웃겨 주셨던 <킬미>의 김혜옥... 이 세분들과 함께 유일한 청일점으로 영화마다 웃음을 책임지는 임창정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은 코믹영화에선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장점입니다.
그럼 과연 영화는 어떨까요...8년간 하와이 여행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아 여행사로 송금하기 위해 은행에 입금하는 그때 은행 강도에게 모든 돈을 빼았긴 누님들이 은행에 돈을 훔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뺐긴 돈을 찾으러 간다는 대의 명분으로 피나는 훈련 뒤에 은행을 턴다는 스토리가 핵심입니다. <육혈포...>는 이 스토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의 맛깔스런 대사와 기발한 상황이 주는 폭소가 즐겁고 후반부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최근 사회에 큰 문제로 떠오르는 노인문제 살짝 건드리며 가슴 뭉클한 모습도 보여 주는 전형적인 한국형 코미디 공식 (초반 웃음+후반 눈물)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임창정이나 김수미의 애드립성 대사에 힘이 있고 영화 전반에 중심에 서시는 나문희에 안정감 있는 연기와 <킬미>보다 더 코믹한 의외에 A형 소심 캐릭터 할머니를 연기한 김혜옥의 내공의 힘은 <육혈포...>가 다른 영화와 차별화되며 좀 더 돋보이는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혈포>에는 웃고 넘기엔 무리가 따르는 설정을 이용한다는 점이 큰 걸림돌입니다. 영화 도입부 할머니들이 '쇼핑할 시간이다'라며 동네 슈퍼에서 주인 눈과 감시카메라를 전문적인 기술로 제압하고 물건을 거침없이 훔쳐간 뒤 길거리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헐값에 파는 장면은 슈퍼가 눈 나쁜 노인들을 속여 장사를 했다는 대사로 정당화 시키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은행 강도 중 경찰의 출동으로 퇴로가 막힌 누님들이 경찰의 눈을 따돌리고 도주하는 과정은 뭔가 기발한 것을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생뚱맞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탈것을 이용해 도주를 합니다. 비리 경찰을 등장시켜 노인들에게 함부로 하고 심지어 때리는 모습으로 선과 악을 만드는 구도는 애초부터 선이라고 볼 수 없는 누님들에 대해 악의 모습조차 설득력없는 과도한 설정이며 그 와중에 형사가 할머니와 대치하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임창정도 '한참 찾았다'는 대사 한 줄로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은 차라리 애교로 넘어 가야겠지요...
그래도 다행인것은 영화에서도 할머니들의 범죄를 미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선 최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서민들에겐 양날의 검처럼 힘이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는 은행의 높은 벽을 꼬집기도 하고 노인 인구가 급기야 사회 문제로 대두된 노인 문제를 그분들의 가족의 모습을 통해 비추는 장면은 조만간 우리들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반성과 대책이 시급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육혈포...>는 잘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도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는 드라마도 사회 문제를 꼬집는 다큐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로 애초에 기대치가 낮은 점을 감안해 그나마 괜찮다는 것이지 큰 기대를 갖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 영화입니다. 그런데 신문이나 홍보자료엔 뭔가 대단한 웃음과 기발한 상황이 있는 것처럼 포장해 관객들을 현혹하고 있네요. 하긴 신문기사가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것은 새삼스런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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