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제독 알렉산드르 코르챠크의 연대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코르챠크가 당대의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부각시키기 위해 발트해에서의 스펙터클한 전투 시퀀스를 12분 동안 보여준다. 영화 초반부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묶어두기 위한 시각적 기폭제임과 동시에 코르챠크가 담력과 지략을 겸비한 해전의 영웅이었음을 두각시키기 위한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더불어 영화는 1차 대전 이후 급격하게 변동하던 러시아 권력의 축 가운데서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해 권력의 철새로 전락하지 않은 코르챠크의 기상을 놓치지 않는다. 러시아 황제 차르의 아성은 1차 대전 이후 급격하게 쇠퇴하고 급기야는 1917년에 발생한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차르가 퇴위하고 만다. 이러한 러시아 권력의 공백기에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잠시 들어서긴 했었으나 최종적인 권력의 수혜자는 볼셰비키로 귀결된다. 옛 차르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해 망명의 길을 떠나는 것이 현명한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옛 조국의 재건을 위해 제정 러시아에 충성하는 편을 택한 코르챠크의 연대기를 통해, 영화는 코르챠크의 충성심을 안나와의 사랑과 혼합해낸다.
코르챠크의 일대기는 안나의 회상을 통해 조망하는 방식을 택한다. 초반부 안나의 회상은 영화 마지막 시퀀스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와 더불어 안나의 시선은 산산이 깨지는 와인잔과 디졸브되어 처리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깨지는 그릇이나 구슬의 흩어짐은 결합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의미와 부합되는 것으로, 이 시퀀스는 앞으로 안나가 코르챠크와 만남으로 행복한 사랑을 영위하기보다는 순탄치 않을 사랑의 행로를 걷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 장치다. 영화는 코르챠크와 안나의 사랑 가운데서 가까움과 멀어짐의 굴곡되는 과정을 놓치지 않는다. 코르챠크를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안나가 건낼 때, 가정이 있는 몸임을 자각하고 그녀의 사랑을 외면하는 코르챠크의 모습을 통해서나, 러시아 혁명이라는 파고 가운데서 제정 러시아의 복권을 위해 투쟁하는 코르챠크를 간호사라는 입장에서 멀리서만 바라보고 사랑의 심경을 고백조차 하지 못하는 안나를 통해, 멀어지거나 혹은 가까워지는 사랑의 템포를 메트로놈처럼 반복 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