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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빛을 발하는 목소리 하모니
jimmani 2010-01-15 오후 8:33:05 1203   [0]

 

음악이나 춤, 스포츠에 대해 이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은 다른 학문들과 구분지어 '예체능'이라고 뭉뚱그려 얘기하기도 하지만 사실 이들은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활동들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즐거움을 위한 활동으로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여기에 빠져드는 이들은 이것이 단지 즐거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인원의 사람들이 모여서 성과를 만들어나갈 때 그 의미는 더욱 커진다. 그저 즐거움으로 다가오던 노래나 춤, 스포츠는 곧 그들에게 사람을 가르치고, 사랑을 가르치고, 삶을 가르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성취물을 만날 때에는, 그 성과의 아름다움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내용의 음악 영화나 스포츠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매번 우리는 거기에 감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인 <하모니> 역시 이런 컨셉트에 속하는 영화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과거 다른 영화들에서 숱하게 봐 온 설정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하모니>가 가질 수 있는 약간의 차이라면, 그들이 만들어가는 합창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보다는 그들이 서로의 아픔을 치유해 가는 과정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교도소라는, 어쩌면 영화 속에 등장할 수 있는 가장 절망적인 장소 중 하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아픔은 어떻게 보면 이런 내용을 지닌 다른 어느 영화들에서보다도 무거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눈여겨 봐야 할 점은, 으레 이런 영화에서라면 등장할 수 있는 '절대적인 스승'의 존재가 희미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유독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들이 각자의 아픔을 누군가의 압도적인 도움 없이 스스로 다스려나간다는 것이다.

 

청주여자교도소에는 여러 사연을 지닌 복역수들이 있다. 폭력남편을 우발적으로 살해한 죄로 10년형을 선고받은 정혜(김윤진)는 교도소 복역 중 아들 민우를 낳는다. 교도소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정혜는 사형수인 문옥(나문희), 푼수 기질이 넘치는 화자(정수영)와 연실(박준면) 등 동기들과 나영(이다희) 등 교도관들의 도움으로 민우를 최선을 다해 키우고 그 정성을 알았는지 민우도 한없이 밝게 자란다. 하지만 10년동안 아이가 교도소 안에서만 살 수는 없기에 언젠가는 입양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교도소에 위문공연을 온 여성 합창단들의 노래에 큰 감명을 받은 정혜는 폭탄과 같은 음치 실력에도 불구하고 교도소장에게 직접 교도소 합창단 창설을 제안하고, 설득 끝에 합창단 일을 맡게 된다. 그리고 합창단이 잘 되면 민우와 특박까지 나갈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된다. 문옥이 지휘자로 나서고, 다른 동기들과 더불어 슬픔이 많아 보이지만 출중한 노래실력을 지닌 신입 복역수 유미(강예원)까지 합세하여 합창단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그들은 열심히 연습에 임하고 다행히 차차 결실을 보게 되지만, 정혜가 민우와 이별해야 할 시간은 결국 찾아오고 만다. 그리고 4년 뒤, 노력의 결과로 교도소 합창단은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여성합창단 대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 그동안 헤어졌던 가족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 정혜는 헤어진 민우와 만날 수 있는 단 하루의 기회가 온 것이다.

 
 

미국 활동에 여념이 없는 김윤진의 3년만의 국내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실은 그보다도 많은 여배우들이 이루는 조화로운 연기가 더 눈에 띄는 영화다. 이 영화 속 합창단 주요 멤버들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이런 설정(비전문가인 개개인이 모여 노력 끝에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음악, 스포츠 영화들)의 영화들에 나오는 숱한 캐릭터의 구조를 유사하게 따르고 있다. 조직을 이끌어나가는 활동적인 주인공, 정신적 지주가 되는 연륜 있는 인물, 웃음을 책임지는 만담 콤비, 삐딱선을 타지만 출중한 실력을 지닌 문제아, 이런 식의 구조 말이다. 다소 전형적인 구조이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는 형식적이지 않기에 관객들은 기분좋게 빠져들 수 있다.

 

물론 이 속에서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윤진과 나문희씨의 연기는 단연 돋보인다. 김윤진은 이 영화에서 그녀의 영화 경력 중 가장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그녀의 코믹 연기가 때론 다소 과장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꽤 잘 어울리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가 드러나는 부분은 코믹연기보다 어머니의 애끊는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감정연기 부분이다. 몇몇 영화들에서도 봤지만 김윤진은 예쁘게 울 줄 아는 배우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은 관객들로 하여금 예쁜 것 따위는 신경쓸 겨를이 없을 정도의 슬픔으로 가득찬 인물의 감정에 더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영화에서도 그녀의 눈물연기는 관객들의 눈물도 즉시 뽑아낼 만큼의 폭발력을 지녔다. 펑펑 우는 울음이 아님에도 넘치는 활기 끝에 결국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아픈 상황 앞에서 눈물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정혜의 슬픔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음대 교수였으나 한 순간의 비극으로 사형수가 된 문옥 역의 나문희씨는 우리가 종종 잊게 되는 중견배우들의 위대함을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녀가 연기하는 문옥은 같은 방을 쓰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수십년을 좁은 감방 안에서 살아온 인물로, 점점 멀어지는 가족과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처럼 둔감해져 버렸다. 이러한 문옥의 성격이 반영된 나문희씨의 연기는 실제로 다소 감정적인 다른 배우들에 비해서 감정 표현이 절제되어 있지만, 그러한 무덤덤한 표정이 종종 가슴을 턱 막히게 하는 위력으로 다가온다. 본인이 지닌 슬픔에 대해서는 무뎌졌으면서도 타인에게는 그런 모습을 좀체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꿋꿋이 합창단을 일궈나가려는 그녀의 모습은 외적인 폭발이 없이도 존재감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을 보여준다. 우리는 중견배우들을 하루에도 몇번 씩 TV를 통해 만나기 때문에 그들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할 테지만, 가끔씩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쫄깃하게 조화된다. 이 영화는 후반부에 눈물 폭탄을 떨어뜨리기 전에는 생각보다 코믹한 부분이 많은데, 이를 박준면과 정수영이 콤비가 되어 훌륭하게 담당했다. 연실 역의 박준면은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헤드락 걸다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는 사연부터 어딘가 웃긴 캐릭터로 이목을 끌고, 화자 역의 정수영은 드라마에서 보여준 감초 연기의 위력을 여전히 과시하지만 한편으로는 두 딸을 둔 어머니로서 종종 애타는 모성애를 짧게나마 호소력 있게 보여주기도 한다. 아픈 과거때문에 마음을 닫고 사는 신출내기 유미 역의 강예원은 실제 성악과를 전공했음에도 성대 결절로 인해 실제 목소리가 삽입되지 못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해운대>와는 180도 다르게 아픔을 품고 사는 유미의 거칠면서도 안타까운 내면을 꽤 잘 표현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교도소 합창단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선량한 교도관 공나영 역의 이다희와, 복역수들을 사회악으로 여기며 철저히 교화해야 한다면서도 합창단의 모습에 조금씩 감화되어가는 양 과장 역의 장영남이 보여주는 묘한 앙상블도 볼 만하다.

 
 

이와 더불어 이 영화에서 발견이라 할 만한 배우가 있는데, 바로 민우 역의 이태경 군이다. 외모부터 아주 꽃미모를 지닌 이 아기는 영화에서 생각보다 더 똑부러지는 연기를 보여주며 '왕석현의 뒤를 잇는 아역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엄마 정혜가 칠판 긁는 듯한 목소리로 자장가를 부를 때면 귓구멍을 후비며 울음을 터뜨리는 모션부터, 홀로 웅크린 유미에게 허물없이 다가가 안아주는 모션까지, 매 등장하는 장면마다 엄마미소 아빠미소를 유발하면서 영화의 대단한 활력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대견한 아기의 연기는 그만큼 후반부에서 부각되는 정혜의 절절한 모성애에 더 큰 무게를 심어주기도 한다.

 

<하모니>는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극으로 보일 수 있고, 합창단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음악 또는 뮤지컬 영화로 비칠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휴먼드라마에 가깝다. 복역수의 인권 문제,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 등을 잠깐씩 내비치기는 하지만 이런 것들에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기보다는 인물들의 기구한 삶을 부각시키는 수단으로 더 크게 작용한다.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시선을 확 사로잡을 만큼 화려한 정도는 아니고,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 영화는 인물들이 노력 끝에 펼치는 무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보다는, 그 무대를 만들어내기까지 겪게 되는 인물들의 때론 아프고 때론 기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이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무게를 잡으며 어둡게 이끌고 가지 않는다. 복역수들은 대부분이 살인이라는 무서운 죄목을 지니고 있지만 그 과거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암시 정도에서 멈추고(그래서 12세 관람가다), 교도소 내부의 모습도 모두가 의기소침하고 인간적으로 황폐화되어 있기보다는 대다수가 활기 넘치고 서로 잘 어울리는 학교와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전반부 웃음과 후반부 눈물이라는 전형적인 한국영화의 공식을 활용하고 있지만 유머나 눈물 코드가 억지스럽거나 자극적이지 않기에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보통 염치없는 영화들은 전반부에서 인간의 존엄성까지 위협하며 웃기려 들다가 후반부에 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숭고한 척하며 울리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다행히 <하모니>는 웃음 또한 교도소 내 복역수들 간의 훈훈한 인간 관계 속에서 발현되고 눈물 또한 인물들을 이해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까지 밀어붙여 가며 이끌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깔끔한 느낌을 준다. 이미 무대가 되는 곳과 인물들 자체가 무거운 사연들을 지니고 있기에, 영화까지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굳이 고스란히 이어받을 필요가 없다고 느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회에서 겪는 숱한 문제들에 힘들어하는 이들과 달리, 이 교도소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살인이라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 절망의 정도가 어찌 보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결코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서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순간의 잘못으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얻고 사랑하는 이들과도 생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독특하게도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이들을 이끌어줄 절대적 스승을 누구 하나 내세우지 않는다. 지휘자인 문옥이 그나마 그 역할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지만, 그녀 역시 처음부터 주도적 역할은 아니었기에 완전히 그런 역할이라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누구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보다, 서로를 다독여주며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한다. 어제 누군가를 일으켜주었던 사람이 오늘은 그로부터 부축을 받기도 한다. 정혜는 합창단 결성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다 가까스로 지휘자로 모신 문옥을 엄마처럼 따르게 되고, 동기들의 배려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합창단에 합류하게 된 유미는 어느 순간 음치인 정혜에게 노래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처럼 어떤 특정 인물로부터 수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체가 되어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합창단 단원들의 모습은 흔히 봐 온 '스승-제자' 구조의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덜 세련되어 보일지라도 보통 사람으로서 더 마음에 와닿는 감동을 안긴다.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결국에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는, 이 영화가 그렇게까지 인간의 가치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선량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요즘 사회적으로 인면수심의 범죄들이 눈에 많이 띄는 상황에서 이 영화 속 복역수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감싸는 영화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연을 안고 있는 합창단 단원들은 영화 속에서 단순한 범죄자라기보다는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밑바닥까지 온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가깝다. 비록 살인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지만 그것이 그들이 의도하고 저지른 흉악한 범죄라기보다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을 것이라는 시선으로 인물들을 따스하게 감싸안음으로써, 영화는 그래도 인간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만들어지는 비단결과 같은 목소리처럼, 벗어날 길 없는 듯한 절망 속에서도 결국 인간의 아름다움은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풍성한 웃음과 절절한 눈물을 겸비한 영화라는 점에서 <하모니>는 관객들을 쉽게 사로잡을 만한 전형적인 상업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그렇고 그런 상업영화라고 치부하기엔 좀 아까운 이유는 가장 하잘 것 없는 사람들이 눈부신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을 통해 얄팍한 눈물보다는 결국 스스로 일어서고야 마는 강하고 멋진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눈물은 더 슬프라고 꼬집어가면서까지 쥐어짜는 강요된 눈물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씩은 품고 있는 아픔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주며 흘리는 공감의 눈물이다. 누구나 힘든 삶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누구나 결국에는 스스로 일어설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아서, 이 영화에 정이 간다.


(총 1명 참여)
hssyksys
잘봤습니다^^*   
2010-04-16 00:35
onesik
잘 읽었습니다   
2010-02-14 07:24
noh0ju
감상평이 참 대단합니다   
2010-02-03 14:01
ghkxn
감동이라   
2010-01-19 09:04
naredfoxx
감동적인 영화일 것 같아요. ㅋ   
2010-01-17 12:52
sdwsds
따뜻한 영화일듯   
2010-01-17 11:49
snc1228y
감사   
2010-01-17 02:39
moviepan
슬펐던   
2010-01-16 21:06
hooper
대단   
2010-01-16 20: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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