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우리 스릴러를 보고 짜릿한 희열과 함께 무섭도록 섬뜩한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곳곳에 함정을 파두고 뿌려진 미끼를 피해 결말을 예상하려 두뇌싸움을 걸었지만 사정없이 찟기고 갈려진 결말에 놀랄 뿐이고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가는 탄탄한 스토리는 한치에 방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예상은 할 수 있지만 그 예상은 여지없이 틀렸고 영화에서 말하려는 용서할 수 없는 결말의 참혹함은 섬뜩하리만큼 차가운 전율을 온 몸에 휘감아 던집니다.
<세븐 데이즈>가 탄탄한 스토리와 감칠맛 나는 연기자(특히 박휘순)들의 연기로 큰 성공을 거둔 것 처럼 <용서는 없다>에도 배우들의 인물 설정과 한국 정서에 잘 맞는 요소를 배합하여 또 하나의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우선 <해운대>에서의 묵중한(?) 중량을 대폭 줄여 전문 부검의 샤프한 이미지와 함께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 준 설경구는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처럼 납치된 딸을 구해내기 위해 강한 아버지의 모습과 달리 무수한 주먹질을 당해가며 범죄 앞에 무기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시크릿>처럼 범인을 은폐하고 범죄자를 빼내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지요. 약간 <공공의 적>, <강철중>의 이미지가 오버랩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본 연기 중 최고의 연기를 보여 준 작품이었습니다.
살인 죄를 짓고 거기에 강민호의 딸까지 납치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범죄자 이성호(류승범)는 <모범시민>처럼 자기를 빼 내 달라며 오히려 거래를 요구합니다. 류승범의 대사는 약간 서툰 연기자처럼 들리나 차가운 피가 흐르는 냉혈한 연기와 합쳐져 대사 혹은 지팡이 소리마져 섬뜩한 느낌을 줍니다. 이번 작품에 가장 큰 비밀을 간직한 인물인 그는 드디어 밝혀진 결말 부분에서의 드러난 진실은 누가 진정 용서를 구해야 하는 범죄자인지를 고민하게 만들며 이전 <올드 보이>에서 최미식과 류지태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극적인 사건의 발생 뒤 마지막 희생자를 자처하는 범죄자의 모습은 흡사 <세븐>의 결말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보여 준 브레드 피트와의 긴장감 넘치는 엔딩을 떠 올리게 되지요.
성지루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곁들여진 연기가 시종일관 무거운 영화 분위기를 조금은 부드럽게 해 주며 간간히 웃음을 선사합니다. 특히 신참 형사인 한혜진과 티격태격, 주먹구구식 수사는 씁쓸한 웃음을 주기도 하지요. <세븐 데이즈>에 박휘순이 있었다면 <용서는 없다>에는 성지루가 있다면 과장일까요? 또 영화 세계에 발을 딛게 된 한혜진도 안정되고 신선한 연기로 앞으로 영화배우로서의 기대감을 갖게 합니다.
김형준 감독은 시사회 인사말처럼 영화는 무겁고 잔인한 스릴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연출은 분명 다른 차원의 연출입니다. 뭔가 알것 같아지만 다른 새로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정해진 시간안에 상황을 해결해야하는 긴박함은 다른 영화에서의 긴장감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지가 잘린 6토막의 시체, 강민호가 부검하는 장면은 지금까지와 달리 지나치게 세밀하게 보여주며 차라리 눈을 돌리고 싶을 정도였지만 모든 것엔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소름끼치는 결말에서야 비로소 속 시원히 밝혀집니다. 6토막의 시체와 강민호가 부검의라는 인물 설정이 이렇게 무서운 결말로 이어지다니... 정말 충격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왜....? 도대체 이유가 뭘까?"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게 하는 감독의 연출은 거대 자본의 힘 앞에 무너진 양심이 초래한 무서운 결과는 이렇게 비참하다는 비유적으로 표현합니다.
'용서는 죽는 것 보다 어렵다. 너무도 오랜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라는 마지막 대사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힙니다.누가 진정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인가 그리고 용서는 정말 가능한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용서는 없다>는 근래에 본 우리 스릴러 영화 중 최고로 꼽고자 합니다. 정말 최고였습니다. 한동안 결말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악몽을 꿀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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