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그의 눈빛에서 <300>의 섬광을 보았습니다. 흐뭇한 눈으로 사랑하던 딸을 바라 보다 사랑했던 가족이 사라져 가는 참혹한 광경을 지켜 보아야만 했던 순간과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었던 법 마저 그를 외면한 채 범죄자와 부여 잡은 정의에 손을 바라 보는 그의 눈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모범시민>의 클라이드(제라드 버틀러)는 평범한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살다가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보통 시민들이 그러하듯 법에 호소하여 그들의 처벌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부족한 증거와 승률을 높이기 위한 검사의 야망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짓밟으며 더욱 무력감에 빠트려 좌절시키죠. 자신의 몸 속으로 파고드는 칼의 느낌과 눈 앞에서 겁탈 당한 뒤 살해 당한 아내와 어린 딸의 죽음을 분명히 지켜 보았지만 법은 그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며 등을 돌렸습니다. 게다가 그날 범행을 자행한 두 명중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죄인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변호사를 선임한 자는 법의 테두리안에서 야합하여 살아나가 검사와 손을 잡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끓어 오르는 분노를 곱씹으며 돌아선 모범시민은 지난 착한(?) 삶을 버리고 처절하고 끔찍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클라이드의 복수는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씩 잔인하게 처단합니다. 마치 썩은 제도를 가지쳐내듯... 범인 두 사람은 사형장에서 살인을 당하고 모든 죄를 지은 채 유유히 빠져 나간 또 다른 범인은 사지가 잘려 나가는 동안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죄를 똑똑히 반성시키기 위해 눈을 감지도, 기절하지도 못하고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서서히 죽어 갑니다. 그런 뒤 클라이드의 복수는 정의란 가혹한 것이라며 범죄자들과 손 잡았던 닉 검사와 또 다른 거래를 해가며 범죄자를 풀어주고 죄를 감해준 관련자들에게 철퇴를 날립니다. 모두 클라이드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더라면 능히 막을 수 있었던 생명이지만 모두들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했다는 변명을 내세우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꺼져 가지요.
분명 자신을 도와 줄거라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에 대한 복수는 충분한 공감이 있었지만 점점 그 대상이 확대되면서 그의 행동에 대해서는 조금씩 의문이 쌓여 갑니다. 왜 저들이 다음 대상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먼저 죄값을 물어야 할 닉(제이미 폭스)은 살려 두는 건가... 그가 행하는 복수로 정작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인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복수 뒤에 진정 원했던 것을 뒤늦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썩고 불합리한 제도의 오류는 착한 시민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며 이를 해결하지 않고 방치하면 모두를 위험하게 할 수 있음을 직접 보게하고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를 몸서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이 아닐까요? 죄없는 사람이고 자신의 맡은 일을 했던 그들도 억울한 상황을 직접 당해 보며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을 하나씩 처형해 가면서도 닉은 쉽게 죽이지 않은 채 자신의 어떤 잘못을 저릴렀는지를 뼈저리게 뉘우치도록 죽음보다 가혹한 형벌을 내렸습니다.
진짜 평범한 시민이 아닌 두뇌플레이의 대가의 복수이긴 하지만 그가 보여준 행동은 충분히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합니다. 굳이 여러가지 의미를 담은 복잡한 해석을 제외하고 복수라는 내용을 다룬 오락 영화로만 보더라도 박진감과 스릴이 충분히 재미를 주는 잘 만들어진 영화로 제라드 버틀러의 매력을 간만에 만끽했습니다. <이탈리인 잡>에서 보여 준 F.게리 그레이의 연출력과 제라드 버틀러가 직접 제작에 참여 했기 때문이겠죠.
- P.S. - 이 영화에는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I. <다우트>에서 아카데미 주연상에 빛나는 두 주연 배우 (메릴 스트립,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들의 불꽃 튀기는 연기 대결 사이에 잠깐의 출연으로 관객에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은 배우가 출연했습니다. 바로 이번 작품에서 필라델피아 시장으로 출연한 비올라 데이비스죠. <다우트>에서 신부님이 성추행한다고 생각한 아이의 엄마로 등장했던 그녀가 시장으로 출연해 여전한 연기실력을 발휘하며 달라진 위상을 뽐내고 있습니다.
II. <쇼퍼홀릭>에서 외모는 빼어나지만 백치미의 악역으로 출연한 사라 로웰이 이번에는 검사의 조력자로 일하다 비운의 결말을 맡는 역으로 출연합니다. 전작에서의 역할이나 비중에 비해서 사라 로웰도 놀랍도록 발전했네요.
III. 조나스 국장을 맡은 브루스 맥길은 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해 꽤 알려진 배우이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때는 아마도 TV시리즈 <맥가이버>에서 맥가이버의 친구로 나왔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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