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도시에서 장점을 잃어버린 조 라이트.... ★★☆
워커홀릭 수준인 LA타임스 기자 스티브(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우연히 한 광장에서 줄이 두 개 밖에 남지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노숙자 나다니엘(제이미 폭스)을 만나게 된다. 줄리아드 음대를 다녔다는 나다니엘의 말에 솔깃한 스티브는 나다니엘에 대한 이야기를 칼럼으로 쓰게 되고, 이 칼럼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스티브는 나다니엘에게 숙소와 첼로 연주 기회를 제공하며 무대에 세우려 하지만, 나다니엘은 이를 반기지 않고 오히려 강하게 반발한다.
조 라이트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솔로이스트>는 어쨌거나 조 라이트에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일 것이다. 두 편의 전작 <오만과 편견>, <어톤먼트>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두 편의 전작은 영국의 근과거를 배경으로, 여성이 화자인 영화였으며, <워킹타이틀>에서 제작했고, 주인공은 모두 키이라 나이틀리였다. 그리고 두 편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솔로이스트>는 여성 감독보다 더 여성의 심리를 영상으로 잘 표현한다는 평가를 들었던 조 라이트 감독이 영국을 떠나 미국, 그것도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남성이 화자이고, 소설이 아닌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전작의 장점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낸다고 해서 아름다운 영상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건 그냥 멋진 그림일 뿐이다. 조 라이트의 영화에서 아름다운 영상이라고 하는 건, 그 영상이 주인공들의 미묘한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장기 중 하나는 바로 영상에 어우러지는 음악의 사용이다.
사실 이러한 두 가지 차원에서만 본다면 <솔로이스트>도 기대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는다. 당연하게도 첼로 연주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니만큼 <솔로이스트>에서 음악의 역할은 막중하며, 주인공의 첼로 연주를 배경으로 두 마리의 비둘기를 쫓아 카메라가 활강하듯 날아 LA를 공중에서 비추는 장면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이야기 전개가 전형적이긴 해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전작과 비교해 결정적으로 <솔로이스트>는 주인공들의 미묘한, 변화되어 가는 심리 묘사가 드러나지 않거나 또는 직접적으로 표출되는 우를 범한다. 전반적으로 말(!)이 많으며(전작의 경우 대사가 적은 건 아니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컷의 전환도 빠르다고 느껴진다. 여유 있고 느긋했던 화면은 조급해지고 숨 가쁘게 다가온다. 작은 진동은 오지만 결정적으로 마음을 흔들지는 못한다. 이를 조 라이트 감독의 헐리웃 적응기라고 불러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론 가급적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또는 느리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위에서 말한 아쉬운 점은 어쩌면 편집권의 문제일지 모른다. 영화가 전적으로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해도 대체로 편집권은 감독이 아닌 제작사가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우리나 헐리웃이나 비슷하다. (물론 흥행이나 작품에서 인정받고 있는 거물급 감독의 경우는 예외일 수 있지만) 아무리 자국에선 대단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헐리웃에 데뷔하는 순간,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신인 감독이며 편집권은 제작사가 가지는 것으로 계약서가 작성된다.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이 헐리웃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게 바로 최종 편집권을 누가 가지느냐에 대한 이견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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