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갖고 있어 성공의 길도 멀지 않아 보이는 줄리어드에 입학했지만 노숙자가 된 나다니엘(제이미 폭스)과 LA 타임즈 칼럼기자 스티브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감동 실화를 영화로 옮긴 <솔로이스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가 실화라는 리얼리티 속에 빛을 발하는 작품을 통해 어쩌면 나다니엘처럼 노숙자는 아니라도 하루 하루 힘겨운 생존 경쟁을 통해 외로운 삶에 지쳐가는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것이겠지요.
<솔로이스트>엔 두명의 외로운 두명의 남자가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갖고 있어 경쟁이 유독 덜할 것 같아 연주한 첼로는 쉴 새 없는 연습을 통해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으로 인정받지만 정신 분열이라는 장애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수 없게 만들어 쉴새없이 쏟아내는 말과 첼로의 선율만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나다니엘. L.A타임즈의 유명한 칼럼기자인 스티브 로페즈는 그의 칼럼으로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늘 새로운 기사거리에 쫒기고 사랑하는 아내와는 헤어져 역시나 혼자라는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도 외로움은 유일한 친구인지도 모릅니다.
이들처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매일을 살아가지만 늘 외롭고 힘든 하루를 살고 있는 우리도 우리 인생을 외롭게 연주해가는 솔로이스트가 아닐까요.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 삶을 살아가면서 매 순간들은 누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라지만 태어나면서부터 혼자이고 죽음도 혼자 맞이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슬픈 운명이기에 우리는 매 순간을 인생이라는 악기를 홀로 연주하며 살아가는 연주가가 됩니다.
제이미 폭스는 나다니엘이 되기 위해 우스꽝스런 머리스타일과 지저분한 노숙자가 되기를 꺼리지 않았고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직접 첼로를 연주하는 열의도 보입니다. <아이언맨>의 성공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자신이 연기 해야하는 캐릭터의 매력과 조 라이트 감독의 열의에 출연을 결심하여 두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의 조화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거기에 최근 <제노바>에서 사별한 남자친구와의 우정어린 명품 연기를 보여주는 캐서린 키너의 안정된 연기가 주연 연기자들과 함께 조화된 연기를 보여주며, LA 필하모닉의 유명 지휘자인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직접 출연하여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점 또한 주목할만 합니다.
그러나 <어톤먼트>, <오만과 편견>을 통해 인간의 감성적인 면을 부각시켜 감동을 이끌어 낸 조 라이트감독의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다소 둔감해진 느낌입니다. 첼로 특유의 선율로 '무반주 첼로 조곡'이 연주되지만 나다니엘의 슬픔과 힘들었던 과거를 그대로 전달하지 못해 연기와 연주가 합쳐지지 못합니다. 이야기 전개도 불확실함이 너무 많고 감독도 사실만을 나열할 뿐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에 핵심은 관객이 찾아주기를 바라는 듯 합니다. 가령 왜 정신분열 증상이 있었을 때 가족은 치료를 받게하지 않았는지, 자신의 대사처럼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는데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게다가 노골적으로 개선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에서는 감독도 이들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마져 들게 합니다.
마지막 엔딩 자막은 미국에도 수많은 노숙자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그런데 만약 스티브가 나다니엘이 줄리어드를 졸업하지 않은 그냥 평범한 노숙자라도 그렇게 도와주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설령 그가 도와준다고 그 사실이 칼럼에서 인기를 얻어 책으로도 출간되고 영화에까지 옮겨졌을까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음악가가 노숙자가 되었기에 우정어린 도움을 받았다는 영화 속 이야기는 그런 재능이 없는 노숙자들에게 도움은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현실을 다시금 느끼게 되자 애초에 생각한 감동을 찾기란 무리였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노숙자가 되기까지 한분 한분 모두 한창인 시절을 갖게 있는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남편인 소중한 분들임에도 ... 우리는 더이상 그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나치지 않기에 이런 영화에서까지 감동을 찾으려 한 것이겠지요.
전 이 작품에서 나다니엘이 완전히 정상인으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첼로로 멋들어진 연주를 관객들에게 한 곳 정도는 제대로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연주하는 곡이 무반주 첼로 조곡이라면 더 없이 행복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역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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